Leaving Behind
한번도 런던에서 살아본 적이 없는 분들을 위해, 나는 작은 그림을 그려서 런던 생활의 요점에 가까운 무언가를 전달해볼까 한다. 지금은 새벽 6시 30분이다. 런던의 새벽 하늘은 세상의 모든 색을 잊어버리게 만들 정도로 우중충하고 어둡다. 나는 일어나 샤워를 하고 옷을 입은 채로, 분을 삼키는 중이다. 룸메이트와의 약속 때문이다. 우리는 둘 중 한 명의 몸에 불이 붙어서 오줌으로 그걸 꺼야 하지 않는 한, 아침에는 서로 이야기하지 않기로 약속한 사이다. 나중에 나가는 사람은 앞사람이 떠나고 5분이 지난 뒤에 나가야만 한다. 대중교통에서 마주쳐서 서로 이야기를 해야 하는 어색한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다. 그런 이유로 나는 지금 현관문 앞에서 모든 준비를 마친 채로 기다리는 중이다. 이웃 하나가 우편함에 테이프로 메모를 붙여놓았다. “내 생일 축하 카드에서 20파운드를 훔친 당신, 엿이나 먹어라”라고 시작하는 내용이었다. 두 단락이나 그 내용이 계속되었다. 알게 뭐람, 쯧.
현관부터 사무실에 도착하기까지 나는 ‘쯧(Tut)’ 하고 혀를 차는 사람 세 명과 마주쳤다. 런던의 ‘쯧’ 소리는 퍽 특이하다. 혼자 있을 때에는 충분히 사적으로 여겨질 정도로 조용하지만, 공공장소라면 무기가 될 정도로 시끄럽다. 첫 번째 사람은 굼뜨게 일하는 사람에게 ‘쯧’, 두 번째 사람은 지하철이 취소되어 ‘쯧’. 나머지 한 사람은 중년의 여성이었는데, 인도에서 손잡고 가는 커플이 걸음을 방해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버스정류장에서 그 여성을 보았고, 고개를 숙여 땅에 시선을 집중시켰다. 바닥에는 마치 잭슨 폴록의 페인팅처럼 닭 뼈가 흩뿌려져 있었다. 만일 내가 고개를 들어 올려다봤다고 해도 닭 뼈보다 아름다운 걸 보진 못했을 거다. 내 앞에 있던 것은 ‘공공주택’이었다. 정부가 가난한 사람을 수용하기 위해 서둘러 지은 아파트 단지인데, 언제 봐도 초등학생들이 디자인한 콘플레이크 상자를 쌓아놓은 것처럼 생겼다. 내 뒤로는 복권가게가 있었고 역시나 문간에는 닭 뼈가 널려 있었다. 버스가 도착했는데, 루시였나, 사라였나, 아니면 에비였나, 작은 구두를 신은 여자가 커다란 루이 비통 가방으로 나를 밀쳐내고 문가에 자리를 잡았다. 입 모양으로는 ‘실례한다(Sorry)’고 말했지만, 정말로 미안해했는지는 알 수 없다. 나는 ‘쯧’ 하며 혀를 찼다. 어쩔 수 없었다.
나는 이 모든 것으로부터 떠났다. 나뿐만이 아니다. 이제는 런던에 오랫동안 살고 있는 친구를 한 손으로 셀 수 있을 정도다. 왜 런던을 떠나야만 했는지에 대해서는 더 이상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앞서 얘기한 구질구질한 것들 외에도 대표적인 이유로 브렉시트를 꼽을 수 있겠지만, 브렉시트에 대해서는 더욱 말하고 싶지 않다. 왜냐하면 그것은 엄청나게 지루하면서도 결국 우스꽝스럽고 허무한 결말로 끝나기 때문이다. 런던은 스스로가 특별하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스스로를 완전히 분리시켰다.(그래서 놀랍게도, 이젠 스스로 버려졌음을 발견했다. 맥베스보다는 이카로스에 가까운 셈이다.) 나는 남아메리카를 선택했고 대부분은 더 저렴하고 패셔너블한 베를린으로 가거나, 더 싸면서 예쁜 리스본, 아니면 런던이 경험했던 지난날의 영광을(미술, 음악, 경제와 패션의 중심을 자청했던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의 런던 말이다. 적어도 토니 블레어 전 총리가 사용했던 ‘Cool Britannia’ 구호에 따르면 그렇다.) 어떠한 노력이나 자축 없이 더 쉽게 얻어낸 유럽의 다른 도시로 떠났다.
나도 잘 알고 있다. 내가 지금 런던에 대해 가혹하게 말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이것들이 비단 런던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내겐 런던을 떠나는 친구들만큼이나 런던으로 떠나온 친구들이 많다. 그들 역시 나처럼 서울, 도쿄, 파리, 로마, 제네바, 브라질리아에서 떠나야만 했던 이유에 대해서 일장연설을 늘어놓곤 했다. 우울한 날씨, 온갖 회색 어둠과 차가움, 가식, 피해 의식, 수동적인 공격들, 아무 이유 없이 괜히 모욕감을 느껴야만 한 것, 끝내주는 못생김, 미친 월세, 그리고 닭 뼈에 대해서. 우리가 이토록 끔찍한 묘사를 멈추지 않는 건 설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에게 떠나야만 한다고 이야기할 생각은 없다. 이건 내 자신을 확신시키는 과정에 가깝다. 솔직히 털어놓자면, 매일같이 런던에 대한 불평을 늘어놓으면서도 이곳을 떠나기 위해 꽤 오랜 시간을 고민해야만 했다. 런던에 사는 나의 친구들, 1백 가지의 언어, 영원히 움직이는 도시의 활력, 음악, 선택의 기회, 그리고 그리워하고 사랑할 수 있는 많은 것들 때문이 아니었다. 나를 한동안 떠나지 못하게 만들었던 건 떠나는 행위 그 자체였다.
우리는 왜 끊임없이 떠나기를 갈망하는가. 누구에게나 일상은 지긋지긋하고 여기가 아니라면 어디든 괜찮을 것 같다는 막연한 희망을 이유로, 떠나는 일이 점점 쉬워지는 세상이라서, 혹은 호기심이라는 본능적인 동기 때문에? 모두 어느 정도는 사실이다. 알고 있는 것은 지루한 것이고 그것으로부터 떠나려는 것은 인간이 가진 강렬한 욕망 중 하나다. 마치 우리가 모르고 있는 것 어딘가에 지구의 운명을 뒤바꿀 중대한 비밀이 도사리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우리는 반드시 그것에 대해 알아내야만 한다. 때문에 떠나는 것은 미지의 것이고, 정말이지 두려운 일임과 동시에 무섭도록 설레는 일이기도 하다.
나 역시 마침내, 런던 히드로 공항에 앉아 산티아고로 가는 비행기를 기다리면서 아주 오랜만에 상쾌한 기분에 들떠 있었다. 공항은 우리의 현실감각을 무디게 만든다. 이곳엔 대륙과 대륙 사이의 중간 지대가 만들어내는 미묘한 분위기가 있는데, 그것은 ‘떠난다’는 말이 가진 로망과 닮아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공항에서 미모사를 마시며 아침식사를 즐기고 없는 돈을 쓴다. 공항은 언제나 이제껏 만난 적 없는 타인들로 바글거리지만 그건 출퇴근 지하철과는 다른 종류의 북적거림이다. 비행기가 이륙하는 장면은 마치 꼭두각시 인형의 줄을 잘라버리는 거대한 가위가 작동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잘린 부분이 구름 밑으로 미끄러져 떨어지면 이젠 모든 것이 끝난다. 당신은 여전히 당신이라는 하나의 사실만 제외하고 말이다. 당신의 발음, 기억, 습관, 성향, 특징, 단점, 방어기제까지, 당신에 관한 사소한 모든 것들, 스스로를 사랑할 수 있게 만드는 이유이자 바꾸기를 갈망할 정도로 불쾌한 것들만이 그대로다. 하늘에 떠 있는 그것이 어디를 향해 날아가든 상관없다. 당신은 당신 스스로를 떠날 수 없다.
물론 나는 런던에서의 일상을, 아니 런던을 지울 수는 있었다. 드라마틱하게 설명해보면 어떤 장소에서 떠나는 것은 그 장소를 없애는 것이나 다름없다. 인식론적으로 생각해보자. 침실에서 걸어 나와 더 이상 침대에 눕거나, 보거나, 침대의 냄새를 맡을 수 없을 때, 아직도 침대가 그 자리에 존재한다고 확신할 수 있는가? 누가 더 이상 거기에 ‘거기’가 있다고 말할 수 있느냔 말이다. 겨울에는 여름을 잊고, 여름에는 겨울을 잊기 마련이다. 오늘 아침, 나는 ‘아침 출근 회피 협약 2019’의 주인공인 나의 룸메이트에게 보고 싶다는 문자를 보냈다. ‘항상’ 보고 싶은 게 아닐 뿐, 정말로 보고 싶었다. 다른 사람들이 시야를 채우고 또 다른 언어가 내 입과 머릿속을 차지하면서 모든 맥락은 변화했지만 바꿔 말하면, 그건 이제 내가 지닌 것은 나 자신뿐이라는 뜻이었다. 결국 어떤 장소에서 떠난다는 게 어떤 삶에서 완전히 벗어난다는 것과 동의어라고 생각하는 것은 흔한 오해 중 하나라는 거다.
요지는 어딘가로 떠난다는 건 도망치는 게 아니라 날것의 자신을 마주보는 보는 행위일지도 모른다는 얘기다. 더 이상 내 자신을 정의하던 직업, 가족, 친구들, 언어들이 사라지고 나를 둘러싼 사회의 시스템이 변화한 지금 나는 마치 벌거벗은 듯한 기분이다. 나는 (적어도 마음 속으로는) 알고 있었다. 내가 태어난 아일랜드 깡촌의 지루한 동네에서부터 가지고 있던 것 외에 어떠한 것도 필요하지 않았다는 것을 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가만히 서 있기 위해서, 수 없는 설득과 용기와 상상을 불어넣어가면서 수천 마일을 뛰어 온 셈이다. 그래서 삶이 드라마틱하게 나아졌냐고 묻는다면, 실망스럽겠지만, 아니라고 대답할 수 있겠다. 날씨는 환상적이고 월세는 반 이상 저렴하며 삶이 아주 약간 명료해졌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