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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틀리에 에르메스가 2019년 첫 전시를 선보인다. 입체와 설치를 위주로 작업해온 작가 정지현의 개인전으로 전시의 이름은 <다목적 헨리>다. ‘다목적 헨리’에 등장하는 ‘헨리’는 영국 출신의 대표적인 현대조각가 헨리 무어(Henry Spencer Moore)이며, 제목은 글자 그대로 여러 가지 목적으로 다양한 맥락에 등장하여 도심 곳곳에서 발견되는 헨리 무어풍의 조각들에 대한 어떤 감정으로부터 유래한 것이다.
서울 도심을 한번 떠올려보라. 인파와 체증, 가끔은 아름다운 하늘과 노을. 셀 수 없을 만큼 스쳐온 익숙한 풍경의 틈새 속에 어렴풋이 남아 있는 도로 곁, 광장, 건물 앞 군데군데 놓인 조형물들. 세종대로 사거리의 충무공이순신장군상이나 청계광장에 세워진 스프링 같은 것들 말이다. 스케일은 웅장하나 실제로 그 존재감은 그리 강력하지 않다. 시부야 광장의 하치공 동상이나 홍대입구역 앞 KFC만큼도 사람들에게 인지되지 못한다.
흔히 ‘공공조각’이라 불리는 조형물은 인지하는 것보다 훨씬 더 사람들의 행동반경 안 공간을 점유하고 있다. 보여질 것을 전제로 하여 미감을 드러내며 놓여지고 특정 사건이나 인물을 기념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기능은 점차 약화되고 사람들의 시선과 관심 밖으로 밀려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존재한다.
정지현 작가는 애초의 의도와 목적을 상실하고 현대사회의 부산물이나 폐기물처럼 도시의 구석구석에 방치되고 유기되어 발견되는 조형물, 그 잉여의 지점을 주목한다. 이제 아무것도 아니게 된 공공조형물의 일부를 가져와 다른 수집물과 재조합하거나 알루미늄 망을 사용해 순간적인 형태를 잡아내 임시적이고 가변적인 형상을 만들어낸다. 버려진 조형물은 조각으로 재가공되어 전시장이라는 질서정연한 공간으로 진입한다. 과거의 흔적과 파편은 원본의 의미가 교란되어 작가의 방식대로 번복된다.
얼굴이나 손처럼 구체적인 형태를 지닌 것만이 조각일까? 입간판 또한 조각이라고 생각하는 정지현 작가는 메시지나 비판, 의미를 최대한 걷어낸 작품들을 늘어놓고 관객이 질문과 의문을 품기를 부추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