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이 됐을 때를 떠올려본다. 몸은 노쇠하고 직업도 없을 테지. 곁에 아무도 없을 것 같다. 아니, 온화한 얼굴로 손주들을 바라보는 걸 낙으로 삼으며 느긋하게 여생을 즐길 수도 있겠지.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신경 쓰지 말자고 손사래를 치며 생각을 끊어낸다. 인생을 곱게 살아야 좋은 표정과 얼굴을 가질 수 있다는 과학이자 낭설을 신봉하고, 연금과 상조보험이 없으면 비참한 말로가 기다리고 있다고 사회가 호도한다. 아름다운 노년을 맞이하는 건 극히 드물다고, 마치 노년기를 비극으로 100% 꽉 찬 착즙 주스인 양 선전한다. 노년이 어떤 두려움이 되었다.
어느 날 서점에 나란히 놓인 책 두 권이 눈에 들어왔다. 크기와 색상은 다르지만 같은 디자인의 양장본. 크기가 작은 책 표지에는 비닐봉지를 든 작은 체구의 노인이 허름한 동네 길목에 서 있다. 커다란 체크무늬 블레이저와 낡은 컴포트 슈즈, 코에는 커다란 사각 뿔테 안경이 걸려 있다. 그렇지만 말쑥해 보이지는 않는다. 큰 책은 캐러밴 문을 나서는 여성의 모습이 표지를 장식하고 있다. 손과 발이 보이는데 손의 주름으로 노인임을 알 수 있다.
낡은 옷을 너무 멋지게 차려입어 괴짜처럼 보이는 노인의 정체는 이스트런던에서 태어나 죽을 때까지 산 조지프 마코비치. 2007년 여름 사진가 마틴 어스본은 이스트런던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창밖을 내다보다 조지프를 보았다. 길 잃은 노인인지 홈리스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 그를 불러 세워 사진을 찍지 않겠냐며 말을 건넸다. 첫 만남 때는 그의 비닐봉지에 작은 오렌지 주스 한 팩이 들어 있다는 걸 알았고 좋은 사진은 찍지 못했다.
우연히 몇 번 마주치면서 마틴은 조지프에 관한 본격적인 기록을 남기기 시작했다. 사진가는 이스트런던 주변 부유하고 독특한 지역의 역사에 관한 책을 만들겠다는 야망을 품었지만, 모델은 동네 도서관에서 본 잡다한 지식과 80년 동안 작은 가구점이 어떻게 칵테일바로 변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기 바빴다. 마틴은 자신을 위한 완벽한 컷을 찍겠다는 마음을 버리고 평생 한 동네에서 즐거움을 찾아 살아온 한 노인의 발자취를 그저 따라가기로 했다. 기록은 전시로 이어졌고 팸플릿은 열렬한 호응을 얻어 <나는 이스트런던에서 86½년을 살았다>라는 책이 되었다.
두 번째 책 <게르트너 부부의 여행>을 열자마자 꽃무늬 테이블보 위에 놓인 쪽지를 찍은 사진이 보인다. 나로선 읽을 수 없는 문장이 세 번 반복되어 쓰여 있는데 “내 곁에 있어줘”라는 뜻이다.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 치매에 걸린 부인 엘케와 그를 돌보는 남편 로타어, 이들 부부가 일 년 동안 떠난 여행에 관한 이야기다. 고통은 전면에 드러나지 않는다. 청명한 하늘과 신선한 공기, 서로를 사랑하는 두 사람의 사진이 이어진다. 다만 그 사이 사이 손등 위의 작은 화상 상처, 다리에 붙인 반창고가 숨길 수 없는 병세를 드러낸다.
조지프는 거동을 못할 정도로 건강이 악화되어 요양원에서, 엘케 역시 여행이 끝난 후 얼마 안 지나 숨을 거뒀다. 두 이야기 모두 해피 엔딩은 아니다. 전자는 평생 풍족하게 살지 못했지만 자신의 감각대로 산 한 사람의 일대기이고, 후자는 육체적 쇠퇴의 보고서나 병상 일기가 아닌 어떤 상황에서도 삶은 지속된다는 담담한 기록이다. 책을 덮고 생각한다. 먼 훗날 무엇으로 살고 있을까 말고, 어떻게 살고 있을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