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민정기의 서울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화가의 작업실답게 자연광이 참 좋습니다 ... | 전시,국제갤러리,전시회,미술,예술

화가의 작업실답게 자연광이 참 좋습니다.약관에는 밤도 새고 그랬는데, 이젠 그게 안 돼요. 해 지고 나면 빛이, 어우, 재미없어. 보기도 싫어요. 광량이 좀 되면 색채도 드러나고, 보고 있으면 어떤 색이 떠오르기도 해요. 이전 스튜디오에서 30년 있었는데, 천장도 낮고 어두웠어요. 중간중간 지역 예술가들을 위한 대안공간이나 입주 프로그램에 들어가도 보고, 공장형 아파트 같은 데 있어도 봤죠. 그래서 이 스튜디오를 지을 땐 채광을 좀 배려한 공간이 있어야 그림도 그리고, 운신을 좀 하겠구나 싶었어요.초창기에는 도시 풍경을 그리다가, 양평으로 이주한 후부터 자연을 위주로 작업하셨죠. 최근 신작은 다시 도시 풍경에 몰두합니다. 그리고 싶은 대상이 변화하는 데 어떤 계기가 있습니까?그땐 이런저런 이유로 서울을 떠났어요. 하지만 시골에만 있다 보면 아무래도 좀 지루하고 나태해져요. 화가가 도사가 되어버려도 큰일이죠. 특히 서울이라는 도시 자체가 인왕산, 백악산, 북한산 등 산자락이 얽혀 조성된 곳이거든요. 아무리 도시 풍경이라도, 산 없이 그린다는 건 어폐가 있죠. 도시를 이루기 위해 산이 있는 거고, 산이 있어야 도시가 돼요. 예컨대 인왕산 자락 아래 통의동이든 옥인동이든 조성되고, 역사적 건물이 있었다든가 없어졌다든가, 이쯤이 ‘몽유도원도’를 의뢰한 안평대군의 집이 있었다든가 등의 이야기들이 모두 풍경화의 주제가 되니까요. 얼마나 재미있어요, 그것도 서울을 그린다는 게. 요즘은 도시도, 건물도, 디자인이나 배색이 아주 멋쟁이예요. 한번 담아보는 거죠. 그런 걸 그림이 배제할 이유는 없는 거야.그림이 되는 장소를 그냥 보는 것과 걸어다니면서, 역사를 되짚으면서 보는 것과는 다르죠. 이번에도 전시 직전까지 답사를 가셨다고 들었습니다만.겸재 그림 갖고 될 것 같아서 시도했는데, 아닌 거예요. 결국 현실에 있는 걸 그려야 하는데, 디테일을 안 보고는 어렵죠. 옛날 식으로 소나무, 괴석 넣는 걸로는 힘들어. ‘세검정’ 같은 그림도 전부 있는 걸 콜라주한 거예요. 하지만 또 있는 걸 어떻게 죄다 그리겠어요? 그림이 되는 요소를 끄집어내야 하죠. 카센터도 넣어 보고, 가옥도 넣어보고. 집은 가까이서 봐 가지고는 드러나지 않으니 건너편 절간 같은 높은 데로 가서 망원렌즈로 당겨 찍는다든가. 그래도 요즘엔 옛 풍경을 찍은 사진들을 잘 정리해서 아카이브로 만드는 것 같아요. 이런 도시 풍경 사진을 보고 있으면 변한 것과 변하지 않은 것도 잘 느껴지고, 아주 황홀해요.2016년 금호미술관 개인전 때 “우리가 도시를 들여다볼 때 상상해야 할 것들, 사라지고 변화된 것들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하셨습니다. “이곳에는 꼭 한번 가보아야 한다”는 말씀도 자주 하셨고요. 매끈한 도시에서 정신없이 사는 우리가 도시를 상상하는 게 중요한 이유는 무엇일까요?그 자체가 의미 있는 거죠. 자신이 살고 있는 곳의 지층을 들여다본다는 게. 안 보면 아무런 의미 없지만, 보면 아무도 못 보는 이야기를 끄집어낼 수 있어요. 지리학자인 최종현 선생과 답사를 다니곤 했어요. 어떤 그림에 나온 데가 여기다, 하시는데 처음에는 모르겠더라고요. 자주 가보고, 자료도 열심히 읽다보면 지형이 서서히 드러나요. 건물 짓는 원칙에 벗어난 곳도 있어요. 알고 보면 사람들이 손을 댔기 때문이고, 삶의 구조나 스케일이 다 달라진 거죠. 비판하자는 게 아니라 그저 저는 그림을 그릴 뿐입니다. 물론 가끔 환경 단체에서 연락이 와요. 건축, 개발 등의 문제점을 다루는 포럼을 하는데, 작품 이미지를 빌려달라고. 그럼 빌려주죠. 그림이 그렇게 한 역할 하니, 나는 좋죠. 새삼 풍경화를 자세히 들여다본 게 얼마 만인가 싶었습니다. 가장 전통적이고, 전형적이고, 흔한 그림으로 인식되어 학창 시절에 사생대회 나간 후로는 관심 가져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40여 년 전, 혈기왕성한 작가가 왜 하필 이 고리타분하고 관조적인 그림을 선택했을까요?산수화에 대한 재미난 옛 이야기가 있어요. 족자로 산수화를 말아 다니다가 벽에다 걸어 놓고는 그림 속으로 쓱 들어간다고. 쓱 들어가니까 호랑이도 나오고.(웃음) 관조적인 게 아니라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안으로 들어가게 하고, 거닐게 하는 거죠.그럼 유화 같은 서양의 전통 매체로 흔한 풍경을 그리며 사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보신 적은요?하지만 이게 회고 취미는 아니에요. 산길, 물길, 사람길을 통해 역사와 현재를 들여다보는 거죠. 저는 윤덕영 별장과 별게 다 생긴 요즘의 다세대주택을 같이 그리는 게 얼마나 신나는지 몰라요. 그림 그리는 게 좋거든요. 물론 보이는 걸 그린다고 다 그림이 된다고 보긴 힘들죠. 그래서 나름대로 옛 그림에서 단서를 잡아보고 그럽니다.고지도나 안견의 ‘몽유도원도’, 겸재의 ‘창의문’ 등을 차용하는 것도 ‘나름’의 방식 중 하나겠군요.네, 고지도에는 고지도뿐만 아니라 수선전도(수도인 서울 지도)도 있어요. 서울을 그리다 보면 반드시 서울 명산들을 다 그리게 되어 있거든요. 고지도에서는 꼭 산성을 그리는데, 이빨 같아요. 인왕선은 또 얼마나 입체적으로 그렸는지. 지금은 없어진 한강변의 바위, 부둣가, 나루터의 사구, 산속으로 난 길, 배를 댄 곳… 이런 것들이 옛 그림의 좋은 주제였죠. 대신 저는 오늘의 것을 그릴 수 있는 재미가 있어요. 고지도는 양평에 들어가면서부터 관심 있게 봤는데 재미있더라고. 예전에는 양평을 ‘양근’이라 불렀는데, 글자에 뚝버들의 이미지가 내포되어 있어요. ‘지평’에도 숯돌같이 평평하다는 의미가 있고. 지명이 이미 시각적 이미지를 갖고 있는 거예요. 이런 것들이 고지도에서 옛날식 스케일로 어떻게 표현되었는지 살피는 게 진짜 재미죠.‘묵안리 장수대’(2007) 같은 그림은 영락없는 ‘현대판 고지도’라 일종의 추상화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특히 장수대는 여러 번 다르게 시도한 장소예요. 용문산을 바라보는데 봉미산이 뒤에 있고. 어른들 묘지는 마을 뒤로 돌아가는 데 있고, 물길이 이렇게 나 있고. 이런 걸 개념적으로 구도를 잡아 화폭에 담아보는 거죠. 이렇게 각색하고, 저렇게 각색하고. 소설가 조세희 작가 집안인 양주 조씨 집성촌이니 어떤 공동체의 구조가 드러나게도 해보고, 마을 느낌을 살려도 보고, 바위에 한글 새겼다가, 한자 새겼다가.1980년대 진보미술운동 그룹인 ‘현실과 발언’ 창립 멤버로 활동하셨어요. 우리가 친숙하게 알고 있는 키치, 즉 대중적인 ‘이발소 그림’의 어법을 재해석한 작품 ‘돼지’ ‘포옹’ 등으로 평단과 관객의 큰 주목을 받으셨죠. 미술과 일상의 공고한 미적 경계, 제도적 경계를 허무는 급진적 시도로 지금도 회자되고 있습니다. 이 문제에 관해 쓰신 글도 읽었는데, 너무 잘 쓰셔서 놀랐습니다.(웃음)맞아요, 막 내세우고 그랬습니다.(웃음) 하지만 그렇게라도 했어야지, 그죠? 얼마나 절박했으면 돼지 그림을 그리고, 이발소에 걸린 그림을 모사하고 그랬겠어요. 그런데 그렇게라도 하고 보니 맥락이 되죠. 유신, 근대화, 산업화… 처음부터 그걸 염두에 두고 했겠어요? 계속 그리다 보니 주위에서 미술운동의 지표가 되었다고 평가해주고, 그러면, 저는 아, 그런가 보다 하는 겁니다. 그땐 추상미술, 개념미술은 너무 미약하다고 치부해버렸는데, 지금 생각하면 만만한 게 아닙니다. 구상은 민중과 인간의 삶에서 굉장히 근거 있고, 반면 추상과 개념미술은 고립된 섬에 있는 거고, 그렇게만 얘기할 수는 없는 거다 싶어요. 인간사가 복잡한 만큼, 미술도 그렇거든요.그렇다면 ‘현실을 반영하는 작가’라는 표현은 어떨까요?어떤 틀로 규정 짓는다는 게 썩 탐탁지는 않아요. 나이 들고 보니 어떤 미술이든 다 매력이 있어. 각자의 재능과 생각을 집약해 표현하잖아요? 말하자면 이런 사실적인 풍경화가 현실운동과 관련 없다고만 단언할 수도 없어요. 초기의 소위 민중미술 작가들도 세월이 지나 상황이 변하면서 자연으로 간 경우도 많아요, 자연스럽게. 그렇다고 ‘현실’이라는 틀로 가두는 것도 좀 그렇고. 개인적인 정서나 아름다움에 대한 느낌은 현실이 아닌 또 다른 곳에서 나오거든요.미술은 지극히 개인적인 영역이라는 말씀인가요?네, 그런 얘기 많이 합니다. 아주 개인적이고 자그마한 단서, 기회도 작가에게 매우 중요하다고요. 이번에 갤러리에 와서 보니 좋은 현대미술 작품들이 많더라고요. 그 찰나와 순간, 집중력과 창조력이 대단해요. 그걸 잡아내는 건 개인적인 거다 싶어요. 저 역시 그랬죠. 서울이라는 곳에 대한 저 나름의 개인적인 관심사가 그림으로 표현된 거죠.1984년에 황석영의 소설 로 작업한 판화집은 매우 귀한 자료로 남아 있습니다. 요즘은 이런 시도를 진지하게 하지 않거든요. 보는 대상에 대한 고민과 갈증이 크기 때문에 미술보다 더 폭넓고 명확한 독자를 가진 문학에 관심을 가지신 게 아닐까 짐작해보았습니다. 그래서 대학 시절, 연극무대에도 직접 서셨던게 아니신지요.텍스트를 그림으로 옮길 때 여러 가지 생각할 수도 있고, 장점이 많아요. 애써서 만들어 놓으면 나중 볼 때 재미있겠다 싶었죠. 평소에 호크니와 발튀스의 그림을 많이 봐요. 그림 보면 너무 좋아서. 재주가 참 대단하구나 싶어요. 물론 내용도 보지만, 내용이 솜씨로 표현되는 거니까. 특히 발튀스는 소설 삽화도 그렸는데, 지금 봐도 참 잘 그렸어요. 보세요, 좋잖아요? 이렇게 그림 그리면 되는 거죠, 뭐. 그 시절엔 이 양반들이 연극 무대 장치도 만들고 그랬더라고요. 언제 가장 즐거우세요? 그림 그리실 때인가요?정답은 그런데, 그렇게 얘기하면 안 돼. 내 답은 그림 안 그릴 때.(웃음) 사실 구상할 때가 괜찮죠. 뭘 생각할 때. 이렇게 하면 되지 않을까? 그럴 때. 그런데 실제로 해보면 꼭 난관이 있어요. 아휴, 괴로워요. 그러다가 조금 나아졌다, 다 됐어, 다 풀렸어, 하고 막걸리 한잔 잘 마시고는 또 막히고.그렇다면 가장 괴롭고 힘들 때는 그림이 막힐 때인가요?좀 난감하죠. 이거 될 줄 알았는데 안 될 때. 그런데 궁리하다가 자고 나면 생각이 떠올라요. 그게 맞을 때도 있고 여전히 아닐 때도 있지만, 어떤 생각이 새로 떠오르는 거 자체는 아직도 신기해요. 그리는 거나, 기법이나, 구상이나 다 총체적이에요.아직 시도하지 못했거나 언젠가는 시도해보고 싶은 곳이 있으세요?예를 들어 다세대주택이요. 어느 집에 들어가서 그 집에서 창밖을 내다보는 경치는 어떨까. 그런데 매번 그걸 못해요. 남의 집 문을 두드리지 못하고 있어요.어떤 작가로 기억되고 싶으세요?(웃음) 아이고, 그림 많이 그리면 되죠. 잘 모르겠어. 미술대학 나와서 화필을 놓은 친구들도 많은데, 계속 현역으로 하고 있다는 게 행복합니다.아무래도 ‘북한산’은 정치사에 기록될 것 같으니 제외하고, 한 작품만 미술사 책에 실릴 수 있다면 무엇을 고르시겠어요?신중하게 선택해야 할 것 같은데…. (웃음) 얼핏 생각나는 건 ‘돼지’ 그림이거든요? 생각나는 데는 이유가 있겠죠. 우리 주변에 있는 건데 삶이나 역사와 연결되어 어떤 시사점을 갖게 되는 게 참 묘하다 싶어요. 사실 이게 다 우연히 되는 거 아니에요? 우연히 그리게 되고, 우연히 이렇게 좋은 의미로 엮이는데, 또 우연히 그 그림이 여전히 회자되는 걸 보면 인연이 있나 보다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