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디메이드 아트’의 아버지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 1887~1968)이 한국에 왔다. 그렇다, 자전거 바퀴와 소변기를 가져다 놓고 예술이라 이름 붙인 그 인물이다. 뒤샹의 작품을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는 미국 필라델피아 미술관과 공동주최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4월 7일까지 그의 회화, 드로잉, 레디메이드 설치물을 포함해 1백50여 점이 소개된다.
서양철학사가 플라톤에 대한 주석이라면 현대미술은 뒤샹에 대한 주석이라는 말도 있다. 난해하기 그지없는 현대미술을 읽어내려면 좋으나 싫으나 뒤샹을 알아야 한다는 말일 것이다. 인쇄된 모나리자의 얼굴에 익살스러운 수염을 그려넣고 밑에 ‘L.H.O.O.Q(Elle a chaud au cul; 그녀 엉덩이는 핫해)’를 새겨넣은 그의 작품이 있다. 이미 바퀴 하나를 덩그러니 의자에 올려 둔 ‘자전거 바퀴’와 변기에 R.Mutt’를 서명한 ‘샘’으로 예술계에 잇따른 충격을 선사하던 그를 두고 디자인평론가 최범은 이렇게 썼다. “사소한 장난으로 치부될 수도 있는 이 행위는 기존의 예술과 예술가가 지니는 전통, 신화적 권위에 대한 조롱으로 받아들여지며 수많은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창조와 천재성에 관한 맹신을 무너뜨리는 뒤샹의 이 같은 작업은 반예술(Anti-Art)의 전형이라 할 수 있으며, 이후 현대미술에 엄청난 영향을 주었다. 그의 삶과 작업은 한마디로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삶을 예술과 바꾸지 않기’”.
미술 역사에 있어서 ‘창조’와 ‘해석’의 의미를 근본부터 뒤집으며 어쩌면 ‘예술’이라는 단어를 새로 정의한 뒤샹은 프랑스 노르망디 지역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파리의 입체파 그룹에서 활동하며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No.2)’로 유명세를 치렀다. 25세에는 회화와 결별하겠다는 결정을 내리고, 커다란 설치작품인 일명 ‘큰 유리’를 8년에 걸쳐 만들어낸다. 동시에 특별할 것 없는 기성품을 예술이라는 맥락에 배치하고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레디메이드’ 개념을 고안해 예술을 재정의한다. 1920~30년대는 에로즈 셀라비(Rrose Sélavy)라는 여성의 자아로 자신을 위장하기도 한다. 언어의 소리, 단어의 다채로운 함의를 가지고 마음껏 창작하기 좋아하던 뒤샹은 가공의 인물로 분해 유머러스하며 성적 함의가 가득한 언어 유희 작가로 활동하기도 한 것이다.
전시는 작가의 삶 여정에 따른 작품 변화를 4부로 나누어 구성된다. 1부에는 그가 청소년 시절부터 인상주의, 상징주의, 야수파 등 당시 프랑스의 화풍을 공부하며 제작했던 그림과 드로잉 위주로 꾸며진다. 2부에서는 미술작품은 눈으로 본 것, 즉 ‘망막적’인 것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인 것으로 변화해야 한다고 여겼던 레디메이드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 3부에서는 체스에 몰두하던 작가의 모습과 에로즈 셀라비로 둔갑해 정체성에 질문을 던지는 작업들을, 마지막 4부에서는 세계 여러 곳에서 전시를 하던 뒤샹의 아카이브와 더불어 그의 마지막 작업으로 알려진 ‘에탕 도네’가 디지털 방식으로 구현되어 공개된다. 르네상스 이후 서구 사회를 잠식하던 휴머니즘이라는 신화를 해체시키고자 한 뒤샹의 몸짓들은 2019년 극동의 한국에서도 크고 잔잔한 울림이 되어 퍼져나간다. “작품은 작가가 만들지만 그 창조 행위를 완성하는 것은 작품을 응시하는 관객이다.” 그의 작품 앞에 선 우리가 바쁘게 사유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