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의 도쿄는 서울과 달랐다. 울 코트가 거추장스럽게 느껴질 만큼 포근한 날씨였다. 겨 울이 머무르고 있는 것 같지만 온전히 체감이 안 되는 그런 날씨. 마치 이번 출장 일정을 위해 철저하게 계산된 것처럼 프리폴 컬렉션이 와닿는 온도였다. 막 오픈한 보테가 베네타 긴자 플래그십 스토어. 그곳에서 만난 2019 프리폴 컬렉션은 보테가 베네타에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었음을 직접적으로 감지할 수 있는 자리였다. 전임자인 토마스 마이어가 보테가 베네타에 왔을 때를 떠올려보자. 당시 브랜드는 옛 명성만 남은 침몰하는 배나 다름없었다. 지금은 어떤가? 그가 전면에 내세운 ‘인비저블 럭셔리(Invisible Luxury)’를 기조로 브랜드의 상징적인 인트레치아토(Intrecciato) 디테일은 럭셔리의 또 다른 이름이 되었고, 자연의 색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특유의 컬러와 매 시즌 개발한 소재로 만든 레디투웨어, 백 & 슈즈, 장인의 손맛을 담은 주얼리 그리고 간결한 디자인의 홈 컬렉션에 이르기까지 토털 브랜드로 온전히 자리매김했다.
서른두 살의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다니엘 리는 인비저블 럭셔리를 이어가면서 보다 동시대적인 감성을 불어넣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촘촘하게 짜인 인트레치아토 디테일을 대범하게 키운 가방(사이즈도 XL로 넉넉해졌다), 디테일을 배제하고 형태로 주목도를 높인 주얼리, 자연친화적인 컬러 팔레트는 가져오되 블랙 & 화이트로 대비 효과를 높인 레디투웨어는 실용적이고 또 아름다웠다. 보다 넉넉해진 실루엣이 주는 편안함에 머물지 않고, 네크라인이나 백라인을 과감하게 도려내거나 슬리브리스의 어깨 폭과 파인 각도 등을 세밀하게 계산한 부분에선 앞으로 선보일 그의 센슈얼한 터치에도 기대감을 높였다. 몇몇 코트는 툭 하고 길게 떨어지는 직선의 실루엣을 만들었고, 가운 형태의 아우터는 착 하고 감기는 맛이 있었다. 각각의 아이템에는 캐시미어, 실크, 울, 파인 코튼 그리고 가죽 등 촉감부터 다른 좋은 소재들이 아낌없이 사용되었다.
“런웨이가 아닌 본질에 바탕을 둔 분위기에서 첫 컬렉션을 공개하고 싶었어요. 보다 친밀한 분위기에서 프리폴 컬렉션을 봤으면 했죠.” 다니엘 리의 바람처럼 ‘메이드 인 이탈리아’와 일본의 장인정신이 교집합을 이룬 긴자 플래그십 스토어의 분위기도 이번 컬렉션에 친밀함을 더하는 데 한몫했다. 아시아 최대 규모라는 위용과 달리 내부는 온화한 미니멀리즘이 감싸고 있었으니 말이다. 브랜드의 헤리티지에 바탕을 둔 수공예 기법, 이탈리아 특유의 따뜻함과 관용, 유쾌한 공동체 정신과 가족에 대한 감성은 우아함이 정제된 데일리 룩이 되었다. 지금 당장 꺼내 입고 싶을 만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