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MUNITY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상식 중에는 의외로 잘못된 것이 많다. ‘면역력이 높으면 감기에 걸리지 않는다’ 역시 그중 하나. “많은 사람들은 ‘면역(免疫)’, ‘병을 모면한다’라는 문자 그대로의 의미에 사로잡혀 있어요. 하지만 의학적으로 이야기한다면 외부에서 들어온 이물질을 제거하는 반응에 불과해요.” 준텐도대학 대학원 의학연구과의 준교수 다케다 가즈요기가 설명한다. 그는 또 이렇게 덧붙인다. “최근 암과 면역의 상관관계가 화제가 되고 있죠. 간단하게 설명해봅시다. 암세포는 스스로 ‘오작동을 일으킨 세포’라고 사인을 보내고, 면역은 그것을 읽고 공격하기 때문에 면역 요법이 암 치료에서 효과를 보는 거예요. 하지만 좋은 점만 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 몸에 도움만 주는 줄 알았던 면역에도 이면성이 있다니? 광동한방병원 통증재활센터 전문의 주홍범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때때로 면역은 아군과 적군을 혼동해서 공격을 잘못 하곤 합니다. 보호해야 하는 아군을 공격해 아토피나 천식 같은 자가면역 질환을 앓게 되는 한편, 적군을 공격하지 않고 방치해 만성 감염증으로 고생하게 되는 거죠. 면역력을 높이면 무조건 건강해진다? 이는 잘못된 인식입니다.”
또한 면역에는 ‘자연면역’과 ‘획득면역’ 두 가지 종류가 있는데, 둘 다 제대로 일해야 오랫동안 건강하게 살 수 있다. 운동이나 식사 등 평소 생활습관으로 기능이 활성화되는 자연면역은 이물질과 빠르게 싸울 수 있지만 효과가 강하지 않다. 반면 후천성면역이라고도 하는 획득면역은 두 번째로 만난 상대에게 빠르고 강력하게 작용한다. 예방접종이 이같은 원리. “가끔 감기에 걸리지 않도록 면역력을 높였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자연면역만으로는 감기를 예방할 수 없어요. 예방접종으로 획득면역을 활성화시켜야죠.”라고 다케다가 덧붙인다. 특히 ‘착한 세포’로 알려진 자연면역의 NK(Natural Killer)세포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NK세포는 바이러스에 감염된 세포나 암세포를 인지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으며, 다른 면역 세포와 달리 적군과 아군을 구분할 줄 안다. NK세포의 활성도가 낮으면 감기에 걸리기 쉽고 감염증이나 암으로 사망할 확률도 높아진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NK세포의 활성 반응은 20세에 최고점을 찍고 점차 감소해 60세에는 절반으로, 80세에는 1/3도 남지 않는다.
활동성을 가능한 한 높게 유지하고 싶다면 다케다의 조언에 귀 기울여보자. “스트레스나 수면 부족, 흡연, 과음, 불규칙한 생활은 NK세포 감소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감소 속도를 늦추고 싶다면 느긋하고 규칙적인 생활을 즐기세요. 반드시 건강하게 살아야 한다는 압박을 느낄 필요도 없고, 무리한 운동도 금물이에요. 운동도, 일도 적당히 즐겨야 건강하게 살기에 딱 좋습니다.”
FLORA
장에 살고 있는 다양한 미생물을 총칭하는 ‘장내 플로라’. 외부와 연결되어 있어 세균이 번식하기에 적합한 환경이 조성되어 있는 장 안에는 1천 종류, 1백 조 이상의 미생물이 살고 있다. 미생물마다 그룹으로 나뉘어 있으며 소장부터 대장에 걸친 벽면에 자리하고 있는데, 이들을 모두 합치면 1.5~2kg이나 된다. 그 모습이 꽃밭 같다고 하여 일본에서는 ‘장내 플로라’라고 부르며, 국내에서는 ‘장내 미생물’, 혹은 ‘장내 세균(총)’이라 말한다. “기능에 따라 유익균, 유해균, 중간균으로 나눌 수 있어요. 그 이름이 의미하듯 유익균은 인체에 도움을 주는 균, 유해균은 인체에 해로운 균을 의미하는 한편, 중간균은 우리 몸에 상주하면서 상황에 따라 유익균과 유해균의 역할을 하는 양면성을 가진 균을 말합니다. 건강한 장이란 세 종류의 균이 균형을 이루고 있는 상태를 말하죠. 이 균형이 깨지면 변비, 설사 등에 걸릴 수 있으며 비만 같은 대사 질환이나 알레르기성 피부염 같은 면역 질환이 생길 수 있습니다.”
김석진 좋은 균 연구소의 소장 김석진이 설명하듯 건강 업계가 장내 세균에 주목한 이유 역시 면역력 때문이다. 유산균(유익균의 대표주자)으로 유명한 ‘프로바이오틱스’가 앞서 말한 NK세포를 어떻게 활성화시키는지에 대해선 생략하겠다.(당신은 M세포와 마크로파지에 대해 더 알아야 한다.) 다만 어릴 때부터 귀가 닳도록 들은, “면역 활성을 위해 유산균을 섭취하라.”는 이유가 바로 NK세포에 생기를 불어넣기 위해서라는 것만 알면 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과잉 섭취는 금물이다. “장을 위해서라며 유산균 요구르트를 대량으로 먹는 사람들이 있죠. 하루에 작은 컵 하나 정도의 양이면 충분합니다. 그 이상이면 살만 쪄요. 조금씩, 매일 섭취하는 게 중요해요. 된장이나 김치 같은 절임 요리로도 유산균 섭취가 가능합니다.”
연구소 소장 김석진에 따르면 지난 20여 년간 꾸준히 장내 미생물에 대한 중요성이 밝혀지고 있으며 이에 발맞춰 프로바이오틱스에 대한 관심 또한 커지고 있다. 특히 김치와 낫토 같은 발효 음식이 오랫동안 식생활의 중심에 있는 한국과 일본에서 그 추세가 두드러지고 있다. 장내 세균 붐이 일어나면서 ‘분변 미생물 이식’도 함께 화제가 되었다. 건강한 사람의 장내 세균을 추출해 심각한 장 질환을 앓는 환자에게 내시경을 통해 이식하는 치료 방법으로, 현재는 이 방법을 사용하는 경우가 제한적이지만 ‘연구가 꾸준히 진행된다면 다양한 장 질환은 물론 면역 질환도 치료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물론 이식을 하기 전에 항생제와 인스턴트 음식을 줄여 자신이 갖고 있는 유익균을 늘리는 노력이 먼저 선행되어야 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