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마루 <엘르> 피처 에디터
답십리 삼희아파트(1983년 준공)
<엘르>의 피처 에디터 이마루는 고향을 떠난 후 자주 거처를 옮겼다. 연희동과 망원동, 만리동 등지의 다세대 주택을 돌며 베란다 바닥 깔기, 시트지 바르기를 하다 지쳤다. 1983년에 지어진 답십리 삼희아파트는 고미술상가와 한 몸이다. 인스타그램 필터를 씌운 것 같은 핑크빛 외벽과 공중 정원처럼 보이는 놀이터와 이중 새시와 엘리베이터가 공존하는 이곳에 반년 전에 정착했다. 신기하게도 지금까지 산 집 중에 가장 오래됐지만 시설은 가장 현대적이다.
이곳의 역사를 얼마만큼 알고 있나?
기사에 검색되는 정도만 알고 있다. 고미술상가와 관련된 내용, 그리고 부동산 매물 관련 내용을 제외하면 아파트 자체에 대한 이야기는 찾기 어려운 것 같다. 나름 서울의 지역적 특성과 오래된 건축물들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답십리가 예전에 고미술상가로 유명했으며 그 흔적이 이 아파트의 건물 상가에 남아 있다는 것은 이사 오고 나서 알았다.
이곳에 살아 좋은 점과 불편한 점이 있다면?
아파트라는 공동체에 으레 따르는 합리적인 점들은 오래된 아파트나 새 아파트나 큰 차이는 없다. 대신 이곳에는 아파트 3층에서 상가 건물 옥상으로 연결된 공간에 놀이터가 있다.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형태다. 아마 오래된 아파트에서만 볼 수 있는 광경이 아닐까 싶다. 아쉬운 점은 예전에는 미량의 음식물 쓰레기는 그냥 변기에 버리기도 했는데 여기에 와서는 정말 ‘막힐 것’ 같은 느낌 때문에 그러지 못하고 있다는 것 정도. 구조적으로는 집 안 곳곳의 천장에 ‘보’가 튀어나와 있어 공간을 효율적으로 쓰기 어렵다.
이웃에는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나?
일단 혼자 사는 1인 가구는 거의 없는 듯 하다. 전 세입자는 신혼부부였고 동대표님도 처음에는 당연히 나를 ‘새댁’이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불렀다. 엘리베이터와 복도, 주차장의 인구분포를 분석컨대 대부분 어린아이나 중학생 정도 아이가 있는 가족, 그리고 노인들이다. 그래서인지 저녁 7시만 지나도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이곳의 아침과 저녁은 어떤 모습인가?
역세권이기 때문에 아파트 바로 옆에 새로운 오피스텔이 올라가고 있다. 최근에는 윗집이 리모델링을 하는지 주구장창 뚝딱거려서 이곳에서의 아침 하면 늘 공사 소리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그래도 해가 길던 계절, 노을 지는 풍경은 아주 좋아해서 두고두고 봤다. 분홍색 낡은 아파트가 노을과 초저녁 하늘 색에 휘감기면 꽤 아름답다. 핑크빛 필터를 씌워 앱으로 찍은 것처럼 보인다.
오래된 아파트에 산다는 건?
그냥 세상에는 같은 돈을 갖고도 오래된 아파트처럼 낡고 이상한 집에서 매력을 느끼고, 그 집에서 살 수 있는 사람들이 정해져 있는 것 같다. 나도 그중 하나고. 중개 앱이나 부동산보다 ‘피터팬의 좋은 방 구하기’ 같은 개인이 매물을 올리는 카페에서 늘 집을 구하게 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일반적인 시각으로 소개해주기엔 호불호가 많이 갈리지만, 그런 이유로 누구보다 그 집을 좋아할 사람도 있는 것이다.
지금도 그 당시에도 드물었던 공중 커뮤니티가 이곳만의 독특한 분위기를 만든다. 40년 가까이 지난 지금 공증 커뮤니티가 있는 아파트가 다시금 들어설 예정이다. 일본 건축가 야마모토 리켄이 지휘하는 강남 세곡지구 아파트가 바로 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