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프한 남자가 각광받던 시대가 있었다. 최민수, 차인표, 이종원과 같은 건장한 ‘마초남’들이 스크린과 브라운관을 장악하고, 그들의 패션 스타일과 드라마 속 대사가 터프함의 표본이 되던 시대. 그러나 지금은 여자보다 고운 얼굴을 가진 요정 같은 ‘엘프남’들이 주목을 받으며, 성별에 구분이 없는 젠더리스 코드가 사회문화적 이슈로 떠오른 시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린 터프(Tough)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희미한 기억 속 그 마초남들을 떠올린다. 때문에 ‘터프한 여자’ 하면 으레 가죽 재킷을 입고 오토바이를 몰고 다니는 여자나 위험한 스포츠를 즐기는 여자를 상상하게 되는 걸지도 모르겠다.
패션계도 크게 다르지 않다. 전설적인 패션 아이콘 중 터프한 이미지로 기억되는 여성들은 록 밴드 수지 앤 더 밴시스(Siouxsie & the Banshees)의 수지 수(Siouxsie Sioux)나 패티 스미스(Patti Smith), 1980년대의 마돈나처럼 개성 강한 뮤지션들이 대부분. 그러던 중 작년 9월, 2019 S/S 밀라노 패션위크의 막스마라 쇼가 끝난 뒤 디자이너 이안 그리피스가 남긴 한마디는 에디터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러플이야말로 가장 터프한 디테일이죠. 강인한 여성을 표현하기 위해 이보다 더 좋은 장식은 없을 겁니다.” ‘아니, 터프한(물론 그의 말 속에는 무드 외에도 단단한 외형에 대한 뜻도 포함되어 있다) 러플이라니. 러플과 터프하다는 수식어가 나란히 쓰일 수 있단 말인가? 과장된 러플이나 드라마틱한 러플도 아니고?’ 허나 분명한 사실은 러플이 겹겹이 달린 블라우스부터 어깨선에 러플을 트리밍한 트렌치코트와 니트 톱, 헴라인에 러플을 장식한 드레스까지, 그 모두에서 강인하고도 굳센(터프한) 존재감을 느낄 수 있었다는 것. 바로 새로운 터프함, 다시 말해 가장 동시대적인 터프함을 인식하게 된 순간이었다.
돌이켜보면 2018 F/W 시즌 몇몇 쇼에서도 이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었다. 대표적인 예는 바로 가장 여성 친화적인 컬렉션을 선보이는 클로에다. 나타샤 램지-레비는 자신의 두 번째 클로에 쇼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1970년대의 아름다운 영화 속 그녀들을 강인한 여인으로 재탄생시키고 싶었습니다.” 그녀의 의중은 하늘거리는 블라우스와 이브닝 가운 위로 착용한 금속 뱅글, 섬세한 레이스 장식 드레스에 매치한 청키한 삭스와 스포티한 부츠에서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반면 마크 제이콥스는 보다 직설적인 방식을 선택했다. 검은 보트 햇을 쓴 채, 보랏빛 조명이 내리쬐는 런웨이로 걸어 나온 모델들의 모습은 마치 미래에서 온 마피아들을 연상케 했으니. 극도로 과장된 실루엣의 팬츠 수트, 거대한 러플 장식의 톱, 큼직하게 주름을 잡은 오버사이즈 팬츠 등 의상 역시 갑옷을 뒤집어쓴 듯 딱딱한 느낌을 주었지만, 그 영감의 원천이 1980년대 오트 쿠튀르의 전설적인 피스들에서 온 것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우아함과 섬세함을 바탕으로 강인한 (터프한) 여성상을 추구한다는 것, 바로 이 부분이 핵심이다.
듣는 즉시 특정 성별을 떠올리게 하는 단어들이 있다. ‘우아하다’거나 ‘아름답다’는 여성을, ‘강인하고 거칠다’는 남성을 연상하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세상에 그처럼 단순하게 정의 내릴 수 있는 옷들만 존재한다면 무척이나 암울할 것이다. 다행스러운 사실은 이 시대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들이 ‘우아한 터프함’과 ‘거친 아름다움’(알렉산더 맥퀸의 전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