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연한다. 이 간단한 문장이 현실이 되기까지 결코 쉽지 않다는 사실은 애연가라면 알 것이다. 결심도 어려운데 실천의 과정은 더 어렵다. 며칠간 참는다 해도 흡연에 대한 갈망, 알 수 없는 허무함과 불안감 등 다양한 감정에 휩싸이며 끊임없는 유혹에 시달린다. 나 또한 이 과정을 여러 번 경험했다. 금연 껌, 연무 효과만 있는 가짜 담배를 접하는 등 금연보조제에 의지도 해봤지만 성공하지 못한 채 다시 편의점 단골손님으로 전락하길 반복했다. “이번엔 진짜 끊었다.” 호언장담하고 지인들 앞에서 꼭 성공하리라 배수진을 쳤던 지난날들을 떠올리면 정말 낯부끄럽다. 하지만 삼세번이면 득한다고 했던가. 6개월 전 또 한 번 금연에 도전했고 역대 가장 긴 시간(!) 동안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다. 물론 아직까지는 담배를 통해 누릴 수 있던 심리적 보상과 쾌감에 목말라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마음을 다잡을 수 있는 이유는 이번 금연의 계기가 그동안과는 조금 달랐기 때문이다.
담배와 헤어진 이유
상황 하나. 매일 새벽녘이면 마른 기침이 밀려와 잠에서 깨는 날들이 시작됐다. 그리고 아침에 눈을 뜨면 지금 막 100미터 달리기를 끝낸 듯 호흡이 불편했다. 만약 내가 비흡연자여도 이런 증상이 왔을까? 상황 둘. 그 어떤 화장품도 피부 갈증을 해소시켜주지 못했다. 평소보다 물을 두세 배 마셔도 피부 컨디션은 달라지지 않았고 늘 안색이 누렇고 음습했다. 만약 내가 흡연하지 않았다면? 상황 셋. 쉴 수 있는 날엔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내리 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곤하고 몸이 땅 밑으로 가라앉는 느낌을 떨칠 수 없었다. 만약 내가 단 한 번도 담배를 피우지 않았다면! 열거한 상황들이 비흡연자인 30대 초반의 여성에게 동시에 나타날 가능성이 과연 얼마나 될까? TV 공익광고에선 “폐암 한 갑 주세요” “가족에게 흡연갑질” 등의 자극적인 카피로 금연을 권하고 수많은 전문가들이 담배를 태울 때 발생하는 독성 물질이 몸에 끼치는 영향을 입증하며 “담배는 백해무익하다”라고 우려의 목소리를 높여도 쿨병에 걸린 나는 눈앞의 쾌락만 좇아왔다. 하지만 최근 담배의 부정적인 영향을 하나 둘 인지하기 시작했고 ‘욜로, 욜로 하다 골로 간’ 듯한 아주 찝찝한 기분마저 들었다.
담배와 헤어지길 잘했다고 느끼는 순간
담배는 끊는 것이 아닌 참는 것이라는 말에 동의해왔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최근 느낀 긍정적인 변화들이 굳이 흡연을 참지 않아도 되는 계기를 만들어줬다. 의사가 지루성 피부 직전의 상태라고 진단할 정도로 건조했던 피부가 안정을 되찾고 있다. 간만에 생기가 넘치고 피부에 뭐 했냐는 지인들의 칭찬이 쏟아진다. 매일 아침 말똥말똥하게 눈이 떠지는 것도 주목할 만한 변화. 깨져 있던 생체 리듬이 정상적인 패턴을 되찾은 듯 호랑이 기운이 솟아난다. 때로는 담배가 뇌를, 정신을 지배할 수도 있음을 자각하기도 한다. 나는 과민하고 일희일비했다. 욱하고 후회하는 것을 반복하며 보이지 않는 텐션에 휩싸여 있었다. 일상에서 생기는 모든 스트레스에 굴복해 담배에 구조 요청을 보내왔지만 담배 없이 극복해야 하는 요즘엔 그 과정이 일시적으로 기분을 호전시키는 효과만 있었을 뿐 결과적으론 정신을 더 피폐하게 만들었다는 것을, 환락에 안겨 있으면서 실은 고독했음을 깨닫고 있다. 담배 없이 내 감정과 만나고 나쁜 기분과는 즐겁게 이별하려는 노력들이 오히려 내 성격이 유해질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준다. 물론 흡연하며 마음을 다독이는 시간은 정말 유혹적이다. 그 시간을 갈망하는 과정이 금연을 결심했을 때 생기는 자연스러운 수순이라는 것을 알았기에 흡연 시간을 통해 누리고 있었던 보상을 무언가로 치환해야 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명상과 달리기다. 머리를 비우거나 미친 듯이 달려서 잊어버리는 거다. 단언컨대 흡연에서 오는 잠시의 쾌감보다 마음에 오래 남아 있는 고효율의 방법이다. 이상은 6개월간 비흡연자로 살면서 느낀 변화들이다. 흡연자이기 때문에 생겼던 몸의 크고 작은 나쁜 신호들이 지금은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