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당당히 맞선 그녀들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우리는 사회를 변화시킨 상징적인 이미지들을 찾아보았다. 그리고 저명한 세 명의 프런티어에게 지난 한 세기 동안 우리는 얼마만큼 이 사회를 바꿨으며, 앞으로 얼마나 더 바꿔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유색인 여성’으로서 부조리한 사회에 맞서 목소리를 높인 록산 게이, 샬레인 헌터 고, 그리고 타미카 D. 말로리의 이야기가 여기에 있다. | 여성,록산 게이,샬레인 헌터 고,타미카 D. 말로리

우리는 타인을 불편하게 만들 줄도 알아야 한다.록산 게이(Roxane Gay)가 여성해방운동의 시초와 오늘을 반추했다면,케이티 홈즈(Katie Holmes)는 그것을 재창조했다.정치인들은 현재 상황을 바꾸고자 하는 시위운동에도 정중함과 예의를 요구한다. 그들이 휘두르는 권력을 양도받고 싶다면 정중한 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트럼프 체제가 세 번째 해를 맞이하고 있는 시점에 페미니스트 운동과 여성해방운동에 대해 다시 한 번 짚고 넘어가야 한다. 여성들의 움직임이 그동안 너무 정적이고 공손하기만 했던 게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1960년대와 70년대에는 유례없이 많은 여성들이 가사를 도맡은 채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당시의 여성들은 거의 모든 분야에서 성차별로 인해 억압당했다. 그리고 그 무렵, 어떤 변화가 시작되었다. 인권운동에 이어 자율권을 주장하는 여성해방운동이 시작된 것이다. 당시 활동가들은 생식의 권리, 동일 노동과 동일 임금, 육아 보조, 여성 혐오 근절과 같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화두가 되는 문제와 싸워나갔다. 여성해방운동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그들이 여성이라는 존재로 연결된 ‘여성 공동체’라는 것이었다. 여성들은 힘을 공유했다. 그 결과 수많은 목소리가 변화에 기여할 수 있었다. 그중 일부는 실제로 성취를 맛보기도 했다.1977년에 국가 여성 컨퍼런스(National Women’s Conference)가 열렸을 때 백악관 및 의회에 제출할 여성해방 계획을 공식화하기 위해 수천 명의 여성이 휴스턴에 모였다. 컨퍼런스를 마칠 무렵, 성폭행과 가정폭력, 불합리한 조건, 생식 권리 및 기타 이슈를 포함하여 26개의 항목으로 구성된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National Plan of Action)’이 수립되었다. 여성들이 직접 나서 ‘여성’이라는 화두를 국가적 회담의 카테고리로 만든 셈이다. 하지만 회담이 획기적으로 구조를 변화시키지는 못했다. 여성 공동체는 좋은 아이디어였지만, 그들이 애초에 의도한 것처럼 대상이 여성 전체가 아닌 중상류층 여성에 한정되었던 것이다. 즉, 소위 ‘주류’ 여성들이 이끌었던 여성해방운동은 세계 혹은 자본주의의 토대를 재구성하려는 시도를 한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만약 그 대상이 여성 전체였다면 페미니스트 아젠다는 오늘날까지 투쟁 중인 기본적 인권 문제를 초월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미 미국의 두 번째 혹은 세 번째 여성 대통령을 목도했을지도 모를 일이다.도널드 트럼프가 최종 당선된 후, 2017년 1월 21일 워싱턴에서 예정된 행진을 위해 여성들이 다시 한 번 모였다. 이들은 국가 단위의 운영위를 설립해 전 세계적으로 수백 회에 이르는 여성 행진을 조직했다. 이 움직임이 무엇을, 누구를 위한 것인지 체계화하여 ‘단일 원칙’을 수립했다. 여성이 가만히 입을 다물고 있지는 않을 것이란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국가적 토론에서도 여성이 중심을 잡고 서기 시작했다. 하지만, 과거와 현재의 여성운동에서 찾을 수 있는 불행한 공통점은 너무 격식을 차렸다는 점과 다양한 구조적 변화가 수반되지 못했다는 점이다. 역사는 어쨌든 반복된다. 사람들이 그것을 완전히 놓기 전까지는 말이다. 변화는 저항 이상의 것을 요구한다. 변화는 행진이나 타협, 혹은 정중함 이상의 것을 요구한다. 우리는 필요하다면 기꺼이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며, 타인에게 불쾌감을 줄 용기도 필요하다. 가부장제적 국가로부터 해방되기 위해서라면 무례한 저항이 됐든, 이해할 만한 보이콧이 됐든 중요하지 않다. 지금은 더 강력한 저항이 필요한 시기다.그날 밤, 그리고 그 이후로도 계속 나를 고요하게 지켜주었던 것은 바로 내 안의 갑옷이었다.샬레인 헌터-고(Charlayne Hunter-Gault)는 초기 시민권 운동 당시 자신의 경험을 회상한다. 그 모습을 우조 아두바(Uzo Aduba)가 재현했다.1959년, 고등학교 3학년이었을 때 나는 저널리스트가 되는 꿈을 이루기 위한 학교를 찾고 있었다. 다섯 살 무렵, 기삿거리를 찾기 위해 전 세계를 여행 다니던 빨간 머리의 만화 캐릭터 브렌다 스타(Brenda Starr)에 대해 읽은 후부터 나는 쭉 저널리스트가 되고 싶었다. 어머니에게 브렌다 스타처럼 되고 싶다고 말했을 때, 어머니는 남부의 어린 흑인 소녀에게는 불가능한 꿈이라고 대답하지 않았다. 그보다 늘 그랬듯 부드럽게 내게 말했다. “그게 네가 원하는 일이라면 그렇게 되도록 하렴.”수년이 지난 후에도 어머니의 조언은 고질적으로 불평등한 시스템에 도전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나는 동창 해밀턴 홈즈(Hamilton Holmes)와 함께 175년 역사를 자랑하는 조지아 대학교로부터 입학 허가를 받아내기 위한 소송에서 승리를 거뒀다. 캠퍼스에 첫발을 내딛던 날, 나는 여러 무리의 인종 차별자들로부터 “너네 집으로 꺼져!”라는 조롱 섞인 외침을 들었다. 하지만, 내 마음의 눈은 내가 초등학교 시절 매년 열리는 모금 대회(열악한 환경과 불평등에 시달리는 아이들을 위한)에서 가장 많은 금액을 기부해 여왕의 왕관을 수여받았던 시절을 바라보고 있었다. 대학교 동창들의 괴롭힘은 결국 나의 왕관을 빼앗아간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나는 그 왕관의 주인은 여전히 나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학교에서 흑인비하 욕설을 들었을 때도, 나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나는 나 스스로가 여왕이라고 굳게 믿었다.며칠이 지난 어느 날 밤에 그들 무리가 나의 기숙사 창문에 벽돌을 던졌을 때도 나는 보이지 않는 왕관을 생각했다. 그날 이후 내가 침착할 수 있도록 도와주던 그 마음의 갑옷은 집과 학교, 교회에서 배웠던 역사, 즉 부당하게 노예가 되었던 조상들의 저항 정신으로 돌아가게끔 해주었다. 그날 밤, 할머니께서 내게 들려주셨던 시편 구절이 떠올랐다. “내가 비록 죽음의 골짜기를 지날지라도 두려워하지 않으리.” 나는 우리가 만들어왔던 역사가 아닌, 우리가 앞으로 만들어나갈 역사에 관심이 있었다. 한번은 하루 종일 한 마디도 하지 않은 적이 있었다. 당시 나는 1층 내 방에 앉아 (다른 학생들은 2층에 있었다) 거울을 바라보고 웃으면서 나 스스로에게 큰 소리로 인사를 하곤 했다. 다행히도 나는 8년간의 외톨이 시절 덕분에 혼자 있는 게 익숙했다. 책읽기를 좋아했던 나는 혼자 조용히 공부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주말에 나는 에 보도하기 위해 당시 이슈가 되고 있던 애틀랜타 학생운동(Atlanta Student Movement)을 비롯해, 테이크아웃으로 구매할 순 있지만 내부에서 흑인들이 식사하는 것은 금지시킨 식당들에 대항한 사람들의 시위를 취재하기 위해 약 117km를 운전하여 애틀랜타로 갔다. “우리의 시간이 왔다!”라는 그들의 슬로건과 더불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던 학생운동은 결국 남부의 모든 인종차별을 종식시켰다. 1963년 대학 졸업 후 나는 에 취직했고, ‘장안의 화제(The Talk of the Town)’ 섹션을 맡은 최초의 흑인 리포터가 되었다. 흑인에 대한 일반적인 묘사나 흑인의 고통, 또는 흑인이 이루어낸 고귀한 성취에 대해 기사를 쓸 때 나의 경험도 함께 녹여내곤 했다. 남아공부터 덴마크까지 전 세계 젊은이들에게 강연할 기회가 있을 때마다 나는 내 기억 속엔 여전히 생생하지만 학교에서는 가르치지 않는 그 시대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들의 내면에 보이지 않는 갑옷의 힘, 그들이 마주하는 현실에서도 “마침내 우리의 시간이 왔다!”라고 외칠 수 있는 그 힘을 알아내길 소망하면서 말이다. 그 길은 결코 쉽지 않다. 때로는 위험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 자랑스러운 역사의 갑옷이 그들을 지켜준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결국 그들은 역사의 바통을 이어받아 민주적인 약속을 위협하는 모든 장애물을 극복할 것이다. 그리고 위대한 거인이 되어 다음 세대를 그 어깨 위에 올릴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우리가 함께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백인 여성들도 참여하여 영향력을 발휘해야 한다.레시아 에반스(Leshia Evans)가 바통 루즈(Baton Rouge)에서 열린‘흑인의 목숨도 소중하다’ 시위에서 있었던 저항 순간을 재현하고 있다.그리고 여성운동가 타미카 D. 말로리(Tamika D. Mallory)가 변화의 미래를 주시한다.트레이본 마틴(Trayvon Martin)이 사살되던 2012년은 내 아들이 10대에 들어선 해이기도 하다.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 곳곳에 내재한 흑인 사회의 비극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만약 나에게도 아들이 있다면, 그는 아마도 트레이본과 닮았을 것이다.” 아들의 머리가 크고 의식도 점점 성장하기 시작하자, 앞으로 아들에게 펼쳐질 인생에 대한 나의 두려움도 함께 자라났다. 나는 아들이 사회에서 안전하게 그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도록 돕는 롤모델이었지만, 동시에 그 애가 집을 나설 때마다 어른이 되는 걸 방해하기도 했다. “아는 척하지 마렴, 함부로 눈을 맞추지 말거라, 대답은 꼭 예의 바르게 해야 한다, 네 말이 맞더라도 지나치게 내세우지 말아라” 다른 어머니들은 아들과 이런 식의 불편한 대화를 나누지 않았으리라.역사적으로 미국의 페미니스트 운동에서 흑인과 라틴 계열의 여성은 무시당하거나 배제되어왔다. 여성참정권운동이 진행되는 동안 여성참정권 퍼레이드(Women’s Suffrage Parade)의 조직자들은 아이다 B. 웰스(Ida B. Wells)에게 행진의 주축이 아닌 열 뒤쪽에 서 있길 요구했다. 1970년대 백인 페미니스트들로부터 무시당했던 많은 흑인 여성들이 이 문제를 제기하기 위해 컴바히 강 단체(Combahee River Collective)를 형성했다. 유색 인종 여성들은 여성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여러 가지 일을 했다. ‘흑인의 목숨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를 조직한 이도 흑인 여성이었다. 21세기 인종 정의를 위한 투쟁 중에 가장 강력한 이미지 속 주인공이 흑인 여성이었던 사실도 우연이 아니다. 레시아 에반스는 2016년 바통 루즈에서 시위하던 중 경찰들에 의해 살해당한 얼턴 스털린(Alton Sterlin)을 추모하며 자신의 모습을 드러냈다.오늘날 주류 페미니즘은 변화의 길목에 있다. 기록적으로 많은 숫자의 여성들이 한꺼번에 나서게 될 때, 비단 백인 여성뿐 아니라 모든 여성의 인권에 대한 담론을 재구성하여 이목을 집중시킬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우리는 모든 여성을 위해 투쟁한다. 한 사람에 대한 불의가 모든 사람에 대한 불의라는 사실을 납득시키기 위한 투쟁이다. 백인 여성들 또한 여론 조사나 길거리 시위를 통해 백인이 아닌 여성들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사건에 함께 목소리를 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가장 소외된 계층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모일 때 우리는 강력해진다. 나는 지난여름 미국 상원 청사를 점령한 다양한 인종의 여성들을 보았을 때 자랑스러웠다. 이민자들의 부모와 아이들을 격리한 잔인한 정책에 대한 시위에서 약 600여 명의 사람들이 체포당했다. 국적을 초월한 여성들이 국회의사당에서 시위 행진을 하고 대법원의 계단에서 브렛 캐버노(Brett Kavanaugh)의 판결에 항의하는 모습은 큰 영감을 주었다. 이게 바로 다른 여성을 위해 모인 여성들의 아름다운 힘이다. 사연에 관계없이 모든 여성의 문제는 다른 모든 여성에게 영향을 미친다.하지만 여전히 부당한 대우를 받는 흑인 여성들에 대한 사회적 불평등이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겁다. 예를 들어, 텍사스에서 크리스털 메이슨은 단순하게 투표를 했다는 이유로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차이키샤 클레먼스(Chikesia Clemons)는 앨라배마 와플 하우스(Alabama Waffle House)에서 경찰에게 성희롱을 당한 후에 체포당했다. 이제 백인 여성들도 자신의 삶과 직접적인 연관성이 없는 일에 대해서도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할 때다. 2016년 선거는 이들에게 주의를 촉구하는 사건이었다. 백인 여성의 대다수는 트럼프에 투표했거나 아예 투표하지 않았다. 그 이후에 수많은 여성들이 정치 공직을 차지하기 위해 출마하고 있지만, 이 거대한 문화적 전쟁 속에서 그녀들이 얼마나 큰 영향력을 가졌는지 확신하기 어렵다. 캐버노의 임명에 대한 최근 논쟁에서 퀴니피악(Quinnipiac)의 투표 결과는 다음과 같다. 백인 여성은 거의 반으로 의견이 갈렸다. 그들의 43%는 캐버노의 결백 주장을 믿는 반면, 46%는 크리스틴 블레이시 포드(Christine Blasey Ford) 교수를 믿는다고 밝혔다. 우리가 같이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백인 여성들이 함께 참여하고 영향력을 발휘해야 한다.우리는 정치에 대한 대화를 꺼린다. 불편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정치가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행동하고 정치와 상관없이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태도는 우리 모두를 아주 위험한 상황에 빠뜨릴 수 있다. 우리는 유색 인종이나 여성, 가난한 사람, 이민자 혹은 다른 수많은 취약 계층에 연민의 감정을 갖고 이들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투표를 해야 한다. 여성들이여, 지금 우리에게는 당신들의 용기가 필요하다. 가족과 함께하든, 많은 사람이 모인 자리에서 목소리를 높이든, 아니면 이웃들에게 부탁을 하든 방법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우리 모두가 주변의 취약 계층을 잊지 않고 마음속에 담고 있다면, 우리와 직접적 연관이 없어도 살피는 여유가 있다면, 우리 사회는 여전히 희망적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