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사는 여자, 배두나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배우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세 사람이 한자리에 모였다. 개봉을 앞두고 있는 영화 '마약왕'에서 함께한 이들은 긍정적인 영향력을 주고받으며 지난 한 철을 함께 보냈다. 배우로서 이룬 성취에 정주하지 않고 계속해서 무언가를 모색하는 이들이 테이블에 앉아 각자의 연기론을 풀어놓는다. | 배두나,마약왕

열심히 사는 여자, 배두나 올해가 데뷔 20주년이라고 들었어요. 드라마 과 , 그리고 , 곧 넷플릭스에 오픈되는 까지. 최근에는 한국 작품에서 자주 볼 수 있어서 좋네요. 일을 많이 하게 된 건 어쩌면 제가 마음이 편안해졌기 때문일 수도 있어요. 7개월 동안 미드를 찍으러 나갔다 와보면 세상에 못할 일은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조금 더 용감해지는 것 같아요. 옛날에는 ‘이 작품이 잘될까?’ ‘내가 잘해낼 수 있을까?’ ‘나중에 창피해지지 않을까?’ 등등의 많은 생각을 했다면 이제는 좋아하는 감독님의 작품이면 오래 고민하지 않고 출연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어요.이경미 감독이 촬영 중인 아이유에 대한 영화에 출연한다거나 하는, 다소 힘을 뺀 행보가 개인적으로도 흥미로웠어요. 게다가 그 영화에 출연하는 이유가 “공짜로 테니스를 배울 수 있는 기회라서”였다면서요? 탁구도 야구도 저는 작품을 통해 배웠어요. 테니스는 꼭 한번 배워 보고 싶었던 운동인데 제가 게으르고 운동을 좋아하지 않아서 그동안 배울 기회가 없었어요. 그러니까 이렇게 일로 배울 수 있는 건 절호의 기회잖아요. 레슨비도 안 들고요.(웃음) 그런 이유도 있고 요즘은 극 중 큰 역할이 아니어도 내가 필요하다고 하면, 작품 속에서 쓰임새가 있다면 열어놓고 생각하게 되더라고요.그렇다면 이번 영화 은 어떤 마음으로 선택했나요? 부터 까지, 어릴 때부터 송강호 선배랑 작품을 하면서 많은 걸 배웠어요. 전혀 권위적인 분이 아니고 옆에서 농담 따먹기를 하는 선배인데, 직접 저한테 무언가를 훈계하지 않아도 옆에서 연기를 보는 것만으로 흡수되는 게 있더라고요. 배우로서의 애티튜드나 영화에 대한 열정 등 배우로서의 마음을 가지는 데 초석이 됐어요. 그래서 ‘송강호 선배가 있다면 당연히 가야지’ 싶었고, 함께 연기하면서 훔쳐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어요. 이후에 12년이 지났는데 지금은 또 어떤 레벨로 발전했을까 궁금했죠.실제로 함께 연기를 해보니까 어떤 변화가 느껴졌나요? 더 진지해지고 냉철해 졌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연기에 골몰하는 모습이 좀 더 예술가 같달까?12년 전이랑 비교해봤을 때 본인은 어떻게 변한 것 같나요? 산전수전을 다 겪었죠.(웃음) 모르는 사이에 많이 대담해졌더라구요. 12년 만에 본 송강호 선배도 그렇게 느끼고요. 잘 모르겠어요. 내가 어떻게 변했는지. 그런데 이제 웬만한 촬영장에서는 떨리지 않아요. 물론 신이 들어갈 때는 긴장하죠. 어떤 작품에 들어가거나 어떤 현장에서 떨리는 게 아니라 한 신, 한 신이 떨려요. 옛날 사람 같은 말이지만 제가 필름 세대여서, NG를 내면 안 된다는 부담감이 있어서인지도 몰라요. 예전에는 NG를 내면 “너 때문에 필름 값 많이 썼어.” 이런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에.언제나 처음이 좋죠. 그래서 제가 처음 해보는 일을 좋아하나 봐요. 좌절을 해도 그 순간이 좋아요. 그래서 쉴 때도 외국에 나가 있는 경우가 많아요. 저는 서울이라는 도시가 너무 좋고 외국에서 살고 싶은 생각은 조금도 없는데, 서울에서 아무 일도 안 하고 있으면 좀 불안해요. 계속 달려야 할 것 같아요.에 출연해서 영어는 놓치면 안 들리기 쉽기 때문에 해외에서 일할 땐 긴장을 계속하고 전투 모드가 된다고 말했는데 해외에서 일할 때와 국내에서 일할 때의 모습은 어떻게 다른가요? 영국 친구들에게 항상 이야기해요. 내가 한국말을 할 때는 더 똑똑하다고.(웃음) 한국에서 촬영할 때는 일단 말소리가 낮아져요. 자신감이 있고 편안하니까요. 그리고 ‘정말 아무것도 안 배워도 돼? 이래도 되는거야?’ 싶은 마음이 자꾸 들어요. 영어나 트레이닝이나, 무언가를 배워야 일을 한 것 같고 돈을 받을 자격이 있는 것 같아요. 다른 사람들보다 좀 어렵게 일하는 쪽으로 살아오긴 한 것 같아요.의 로비스트 김정아는 사실 배두나에게 가지 않을 만한 역할이었어요. 배두나가 아닌 다른 배우가 연기했다면 전형적인 인물이 되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맞아요. 솔직히 제가 좋아하지 않는 여성상을 연기해본 게 처음이에요. 그래서 그녀의 한마디 한마디가 거슬렸어요. ‘왜 이런 말을 하지?’ 싶기도 하고.(웃음) 우아함과 상스러움의 경계에서 줄타기를 해야 하는 부분이 어려웠죠.그녀를 연기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점을 둔 것은 무엇이었나요? 일반적으로 로비스트라고 하면 화려한 미모나 언변을 떠올리는데 사실 제가 초점을 맞춘 건 ‘열심히 사는 여자’였어요. 엄마 아빠를 보면 이 세대에게 열심히 산다는 것의 기준은 우리가 열심히 사는 것과는 다르잖아요. 저희 아빠만 해도 항상 여섯 시에 출근하고 밤 열두 시에 들어오면서도 그걸 당연하게 여겼죠. 저는 이 세대에 대한 이상한 연민과 동경이 있어요. 의 이두삼과 김정아도 비록 나쁜 짓을 했지만 어려운 시대에 열심히 살았던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악바리처럼 열심히 살았던 여자.’ 그렇게 아주 단순하게 접근했어요.제작보고회에서 의상과 메이크업에 있어 지금까지 해온 작품들 중 가장 공을 들였다고 말했는데 영화에서도 확실히 시선을 사로잡더라고요. 1970년대 패션을 어떻게 이해하고 접근했나요? 제가 신경을 쓴 건 아니고 분장팀이 공을 들였어요. 다른 영화와 달리 헤어, 메이크업 테스트를 여러 차례 거치면서 다양한 시도를 해봤어요. 저는 김정아를 70년대의 한국 여자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그 시대에서 굉장히 앞서 있는 여자이고 그 세계의 슈퍼스타였기 때문에, 70년대 패션을 구현한다는 느낌보다는 어느 시대에 보아도 세련된 클래식한 느낌을 주려고 했어요.어떤 역할에서든 배두나 특유의 오라는 지워지지 않는 것 같아요. 송강호는 누구를 연기해도 송강호인 것처럼, 배두나도 누구를 연기해도 배두나예요. 그게 진짜 어쩔 수가 없는 벽이에요. 나만의 색깔이 있다는 칭찬의 말이지만 제 입장에서는 그 소리가 별로 듣기 안 좋아요. 많은 사람이 나의 이름을 알고, 나의 연기를 보았고, 나의 캐릭터를 알고 있으니까 그런 점은 신인 배우보다 기성 배우가 더 핸디캡을 가지고 가는 부분인 것 같아요. 김정아를 연기하는 데 있어서 제 자신의 경험을 일부 투영하긴 했어요. 이를테면 파티 문화 같은 것들이요. 처음에 해외 파티에 갔을 때는 되게 어리바리했어요. 낯을 가리는 성격이라 어느 시점에 ‘스몰 토크’를 해야 하는지 모르겠더라고요. 이제는 제법 자연스러워졌어요.과거에는 내성적인 성격이었나요? 어릴 적에는 말이 진짜 없었어요. 누가 나한테 말을 걸까 봐 불안한 눈동자를 하고 고개를 숙이고 있었죠. 학교 다녀오면 집에서 만화책만 읽어서 엄마가 제발 밖에 나가서 놀라고 했던 기억이 나요. 배우 생활을 시작하고 이라는 작품에 출연하게 되었을 때 촬영 현장에 사람이 그렇게 많다는 것에 충격을 받았어요. 히키코모리적인 삶을 지향하는 사람이었는데 먹고살려다 보니 이렇게 됐어요.(웃음) 노련해진 스스로의 모습이 좋은가요? 아니요. 언제나 처음이 좋죠. 그래서 제가 처음 해보는 일을 좋아하나 봐요. 좌절을 해도 그 순간이 좋아요. 뭔가를 잘하게 되는 순간 저는 빨리 질리더라구요. 그래서 쉴 때도 외국에 나가 있는 경우가 많아요. 저는 서울이라는 도시가 너무 좋고 외국에서 살고 싶은 생각은 조금도 없는데, 서울에서 아무 일도 안 하고 있으면 좀 불안해요. 계속 달려야 할 것 같아요. 외국에서 쉬면 슈퍼마켓에서 영어라도 한마디 하니까요. 항상 무언가를 배워야 한다는 강박이 있는 것 같아요.정말 열심히 사는 사람인데도 ‘애쓴다’는 느낌이 별로 들지 않는 건 징징대지 않는 성격 때문인지도 몰라요. 힘들다고 말하는 걸 별로 안 좋아해요. 다들 힘들게 사니까. 나 정도면 가진 것에 비해 굉장히 축복받았다고 생각하거든요.요즘에 배두나를 좌절시키는 일은 뭔가요? 그게 연기예요. 매번 좌절할 수 있어서, 연기를 오래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연기는 진짜로 해도 해도 어려워요. 너무 어려워서 진짜 질리지 않을 것 같아요.2019년에 가장 기대하고 있는 일은 뭔가요? 이요. 저는 아직 못 봤는데 재미있대요. 주지훈 씨가 “우리가 이렇게 재미있는 걸 찍은 줄 몰랐어.”라고 하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