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토르 최는 누구인가?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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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르 최는 누구인가?

러시아의 체 게바라로 불리는 걸출한 음악가이자 시인, 사상가, 사회개혁가. 빅토르 최가 누구인지 알고 싶다면 영화 '레토'를 보면 된다.

BAZAAR BY BAZAAR 2019.01.06

악이 위대한 것은 그 불멸성 때문이다. 아무리 시간이 흐른다 해도 음악은 죽지 않고 살아남는다. 사람은 죽어도 음악은 영원하다. 한국 배우 유태오가 빅토르 최 역을 맡은 러시아 키릴 세레브렌니코프 감독의 영화 <레토>를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왜 러시아는 여전히 빅토르 최인가. 희대의 러시아 록 가수 빅토르 최(성에서도 짐작하겠지만 그는 한국계다)는 왜 여전히 러시아의 젊은이들 사이에서 불려지고 기억되는가. 그들은 왜 빅토르의 얼굴이 그려진 티셔츠를 입고 다니며 사후 30년이 다 되어가는 현재까지도 그를 기억하려고 애쓰는가. 빅토르 최는 과연 러시아의 체 게바라인가.

빅토르 최는 1962년에 태어나 1990년에 의문의 교통사고로 죽었다. 그는 구 소련이 불필요하고도 부도덕하게 전개했던 아프가니스탄 내전의 한가운데에서 젊은 시절을 경유해야 했다.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소련에게 있어 미국의 베트남전과 같은 것이었다. 아무 의미도 없고, 젊은이들만 죽음으로 내몰았던 역사였다. 그때 그는 노래를 불렀다. ‘혈액형’이다. 1987년이었다. “소매 위에는 혈액형 / 소매 위에는 나의 군번 / 나의 승리를 빌어다오 / 나를 위해 빌어다오 / 이 들판에 남지 않게 / 이 들판에 남지 않게.”

그의 절규 때문이었는지는 몰라도 전쟁은 1989년에 막을 내렸다. 그리고 그는 죽었다. 소련이 해체된 후에도 그의 노래는 이어졌다. 젊은이들은 지금도 그가 노래를 불렀던 모스크바의 아르바트 거리와 상트페테르부르크 시내의 담장을 지키며 ‘혈액형’을 부른다. 아직 그들에게는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끝나지 않은 것이다. 소련은, 그리고 러시아의 ‘인민들’은 여전히 변화를 원하고 있는 것이다. 무려 30년이 넘어가는 일이다.

빅토르 최의 저항정신은 당시 소련 사회 전반에 대한 문제의식으로 진화했을 것이다. 그의 노래가 젊은이들 사이에서 휘발성과 폭발력을 지니고 공유됐던 건 그 때문이다. 소련 당국은 당연히 그의 존재가 눈에 가시였을 가능성이 높고 따라서 그 죽음에 대해 지금까지 이래저래 의혹의 눈길이 던져지는 것 역시 그 때문이다. 빅토르 최가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것에 비하면 그의 음악적 이력이 낱낱이 알려져 있는 것은 아니다. 그가 어떻게 로커가 됐고, 음악적 수업은 어떠했으며 또 그의 멘토는 누구였을까. 아마 그것이 잘 공개되지 않은 것은 그의 생이 너무도 짧았던 탓도 있지만 당시나 사후나 그게 중요할 만큼 세상이 한가하지가 않았을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빅토르 최의 초기 음악 인생은 지난 5월 칸 영화제의 공식 초청작이었던 키릴 세레브렌니코프 감독의 영화 <레토>에 잘 담겨 있다. (<레토>는 1월에 국내 개봉한다.) 빅토르 최가 ‘키노’라는 록 그룹을 결성해 음악 활동을 시작했던 1982년은 일종의 새로운 역사의 발아기였으며 음악 분야에서 새로운 조류는 마이크 나우멘토에 의해서 주도됐다. 영화는 나우멘토와 그의 연인이자 뮤즈였던 나타샤, 그리고 빅토르 최와의 삼각관계를 축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그걸 배경으로 빅토르 최와 그의 음악이 결국 당시의 시대적 정신을 어떻게 이어받는지를 추적한다. 빅토르 최 역시 커다란 역사의 수레바퀴 속 인물 중 한 명이었던 것이다. 이 영화가 흥미로운 지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한마디로 영화 <레토>는 빅토르 최의 데뷔 초기 이야기를 담아내는 척, 사실은 러시아 록 음악의 계보와 그 역사 그리고 무엇보다 당시의 시대상이 어떠했는지를 회고하려 한다. 그런데 그 회상이 그야말로 중요한 이유는, 자유를 향한 젊은이들의 무정부주의적 갈망을 억압하려 했던 1980년대의 소련 사회 상황이 2010년대 후반인 지금, 푸틴 시대에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는 분노의 성찰을 담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키릴 감독은 젊은이들의 ‘가슴을 구속하는’ 러시아 사회의 지금이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 그 해법이 사실 어디에 있었는지, 그리고 그때의 무엇을 놓치고 무엇을 간직하지 못했는지에 대해 1980년대 초반을 들여다보면 찾아낼 수 있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영화 내내 영국의 펑크 록에서 글램 록, 개러지 록 등 온갖 다양한 음악을, 그것도 러시아 말로 번안해서 들을 수 있는 것은 진심으로 신선한 경험이다. 키릴은 영화적 재미를 위해 중간중간 애니메이션 기법까지 덧칠해 뮤지컬 솔로를 선보이는 등 다양한 시도를 했다. 러시아 영화가 그 오랜 예술 전통의 흐름 속에서 얼마나 현대화됐는지, 긍정적인 의미로 얼마나 서구적이고 상업적이 됐는지를 보여준다.

영화 <레토>는 사회적, 정치적 의미를 떠나서 매우 재미있고 흥미 있는 작품이다. 빅토르 최가 누구였는지, 이 걸출한 음악가이자 시인이자 사상가이자 사회개혁가가 누구였는지, 솔직히 잘 몰라도 된다. <레토>가 그걸 잘 알려줄 것이다. 그것도 너무 재미있게. 그나저나 빅토르 최 역을 맡은 배우 유태오는 누구인가? 또 한 명의 스타 탄생을 의외의 작품에서 만나게 되는 것도 실로 오랜만의 일이다. 글/ 오동진(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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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에디터|Harper's BAZAAR,사진| Getty Images& 엣나인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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