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컨테이너 스물아홉 개를 교차시켜 쌓아 올린 스타벅스 매장이 대만에 오픈했다. 후쿠오카 다이자후 매장에 이어 구마 겐고 스튜디오가 또 하나의 혁신적인 스타벅스 매장을 탄생시킨 셈이다. 컨테이너 고유의 답답한 밀도감을 보완하기 위해 통창으로 자연광을 한껏 담았다. 건축가 그룹 슈필만 엑슬레가 설계한 스위스 취리히의 프라이탁 타워는 폐컨테이너에 생명력을 불어넣은 대표 사례다. 스물일곱 개의 선박용 컨테이너 박스를 겹쳐 쌓은 후 고정시킨 타워형 건축물은 프라이탁 정신을 온전히 투영한 플래그십 스토어다. 건축디자인 사무소 조나단 반즈는 미국 오하이오 주 콜럼버스 외곽의 한 주차장에 컨테이너 하나를 덩그러니 수직으로 세워두었다. 이른바 ‘마이크로 타워 주차도우미’다. 이음새 없이 뻗은 구조물은 너무 낮지도 너무 높지도 않은 중용의 존재감을 발휘하고 선명한 레드는 미색의 마천루로 둘러싸인 주변 경관과 감각적으로 어우러진다. 그런가 하면 덴마크 코펜하겐에는 극심한 청년/학생 주거 문제를 도심 속 유휴 공간에 폐컨테이너 건축물을 지어 해소하고자 디자인된 ‘CPH 빌리지’가 있다. 2021년까지 전 세계에 10개의 컨테이너 빌리지, 또는 2천500세대의 청년 컨테이너 주거 공간 구축이 목표다.
쓸 수도 버릴 수도 없는 폐컨테이너를 쌓아둔 채 방치한 선적 항구가 세계 도처에 즐비하다. 폐기시키는 비용보다 새 컨테이너를 구입하는 비용이 덜 들기 때문이다. 그대로 두면 어마어마한 산업 폐기물이 될 컨테이너를 전시장과 사무실로, 상업 공간과 주거 공간으로 재활용하고자 하는 고민은 선택이 아닌 의무일지 모른다. 컨테이너가 가장 효율적이고 손쉬운 운송수단으로 규격화된 건 베트남전쟁부터다. 빠른 폐쇄와 보안이 가능해 당시 미군은 운송용 컨테이너를 긴급 주거용으로 사용하는 경우도 잦았다. 1987년엔 필립 클락이라는 사람이 “한 개 이상의 운송용 컨테이너를 거주 가능한 공간으로 변환시키는 방법”을 미 특허청에 출원한 바도 있으니, 컨테이너 같은 모듈식 자재를 다른 용도로 탈바꿈시킨다는 아이디어는 사실 새로울 게 없다. 질 낮고 값싼 임시방편용 건축물에 불과했던 폐컨테이너를 사람들은 왜 다시 주목할까.
먼저 비용 문제가 있다. 폐컨테이너에 대한 수요가 날로 높아가고는 있지만 여전히 싼 값에 구입이 가능하다. 심지어 고철 박스 상태인 컨테이너를 사람이 사용할 수 있게끔 단장하고 가공해야 하는 절차를 감안하더라도 비용과 노동력 측면에서 효율적이다. 둘째로는 지속가능성이다. ‘환경’이라는 화두는 메가 트렌드다. 의식 있는 건축가 혹은 자본가라면 환경을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한다. 운송 수단이라는 목적부터 다른 태생을 건축물로 재탄생시킨다는 콘셉트 자체가 사실은 ‘지속가능’의 성질이다. 폐컨테이너를 재활용하는 순간 그것을 분해하고 해체해서 폐기하는 일련의 절차가 상쇄되기 때문에 이미 탄소 배출은 절감된다. 건축 폐기물이 거의 발생하지 않는 데다가 단열, 내수까지 좋은 제품도 많아 유지하는 데 드는 에너지도 적다. 셋째로는 그 미감이다. 건축과 디자인계에서 거친 인터스트리얼 무드가 사랑받는 흐름과 폐컨테이너의 인기는 밀접한 연관이 있다. 방치된 공장을 개조해 만든 사무실이나 아파트가 오래된 목조 들보, 노출된 벽돌 같은 요소 때문에 훨씬 높은 임대료에 거래되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원래 용도에 걸맞는 투박한 감성은 물론 재질 본연의 강력함과 내구성까지 고려한다면 컨테이너를 마다할 이유는 별로 없다. 끝으로 가변성이다. 어디에 어떻게 가져다 놔도 기특하게 응용되는 변화무쌍함에 사람들은 매료된다. 쇼핑몰 같은 복합문화 공간이나 주거 공간처럼 영구적인 목적으로 쓰기도 하지만 컨테이너가 빛을 발하는 순간은 단연 팝업 전시, 무역박람회처럼 짧은 기간에 많은 사람들을 밀집시켜야 하는 이벤트에서다. 수직, 수평으로 확장해 다양한 구성과 입면 디자인이 가능한 것은 물론, 컨테이너 고유의 유동성과 휴대성이 ‘공간’에 대한 수많은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다.
폐컨테이너는 진화를 거듭하며 매일 새롭게 잉태된다. 런던 스트리탐의 한 중학교는 컨테이너로 3일 만에 뚝딱 만들었지만, 풍성한 채광과 넓고 모던한 인테리어의 체육관은 어느 학교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다. 뉴욕 피어 57의 하이엔드 숍들은 트렌드에 민감한 고객을 겨냥해 앞다투어 컨테이너에 세를 지불하고 팝업 스토어를 연다. 거대 자본이 투입된 단지형 복합문화 시설이 주류를 이루긴 하지만 최근 몇 년간 컨테이너로 기획한 젊은 공간들이 국내에도 늘고 있다. SJ쿤스트할레, 커먼그라운드, 언더스탠드 애비뉴, 플랫폼창동, 파이빌99 등이 그 예다. 한 경제지 분석에 따르면, 1천500억원 규모에 불과하던 국내 조립식 건축 시장이 2020년에는 1조원에 달할 것이라고 한다. 다만 염려되는 것은 폐컨테이너 건축물이 추구하는 지속가능적 가치의 훼손이다. 탄소발자국을 줄이기 위해 컨테이너를 선택했지만, 외관을 매끄럽게 만들고 바닥과 벽을 교체하는 등 사람 편의에 맞춘 형태로 가공하다 보면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경우도 생긴다. 폐컨테이너를 재활용하는 대신 돈을 조금 더 보태 중국에서 새 컨테이너를 구입해오는 모순도 감행되는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폐컨테이너처럼 세월을 맞아 수명을 다한 것에 새 기운을 불어넣는 ‘업사이클’의 서사는 당분간 유효할 전망이다. 너무나 많은 물질에 둘러싸인 현대인의 낭만이 거기에 있다. 컨트리뷰팅 에디터 / 이현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