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타인으로 살기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Art&Culture

완벽한 타인으로 살기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타인의 삶.

BAZAAR BY BAZAAR 2018.12.17

RICHARD PRINCE, Untitled, 2017, Oil stick, acrylic, charcoal, matte medium, collage, and inkjet on canvas, 100×81 in, 254×205.7cm ⓒ Richard Prince. Photo: Rob McKeever. Courtesy Gagosian.

“나는 내 영혼보다 타인의 삶이 궁금하다. 고도의 진짜인 것.” 오색찬란한 죽은 머리들로 가득한 페인팅 작업을 공개하기에 앞서 리처드 프린스는 이렇게 말했다. 1970년대 후반부터 매스미디어, 광고, 엔터테인먼트 시장의 이미지를 채굴해 이를 비틀고 수정해 작품으로 내놓은 리처드 프린스. 그는 다른 이의 이름, 날인 위에 자신의 사인을 덧붙이며 작가, 소유, 그리고 작품에 입혀진 오라(Aura)의 개념을 새롭게 정의했다. 그 작업들은 타인의 메아리로 가득 차 있지만 동시에 리처드 프린스의 것이었다.

뉴욕 가고시안 미술관에서 선보인 리처드 프린스의 전시 에는 그가 오랜 세월 찾아다닌 타인의 영혼, 그 온갖 군상이 한데 모여 있다. 제각기 다른 표정과 형상, 색을 입은 히피 스타일의 캐릭터들은 1972년부터 30여 년이 넘게 이어져온 그들만의 연대기를 지닌다. 1972년과 1973년에 빅(Bic) 펜으로 그린 스무 개의 죽은 머리들이 시작이었다. 해묵은 머리들은 1998년부터 전시를 염두에 두고 그린 ‘히피 드로잉’으로 기사회생하는 듯했으나, 리처드 프린스는 돌연 전시를 취소하고 작업에 관한 도록만 내고 만다. 이후 우연히 L.A 현대미술관으로부터 화가 빌럼 데 쿠닝의 카탈로그를 받은 프린스는 데 쿠닝의 그림이 ‘히피 드로잉’을 떠오르게 한다고 생각해 데 쿠닝의 카탈로그 위에 자신의 ‘히피 포즈’를 덧입혀 그렸다. 카탈로그는 순식간에 새로운 몸을 얻은 ‘히피 데 쿠닝’이 되었고, 그는 이를 다시 L.A 현대미술관으로 돌려보냈다. 리처드 프린스의 히피들은 여기저기로 돌고 돌았다. 시간이 흘러 잡지 <하이 타임스>에서 그에게 창간 25주년 기념 커버 5종을 부탁하면서 각기 다른 ‘히피 드로잉’을 그려줄 것을 원했다. 그 일 년 후엔 뉴스쿨 힙합을 주도한 트라이브 콜드 퀘스트의 멤버 큐 팁이 앨범 커버에 사용될 히피 그림을 요청해왔다. 어디론가 세상을 떠돌던 리처드 프린스의 히피가 타인들에 의해서 계속해서 불려진 것이다.

꾸준히 히피 드로잉을 그려온 그는 지난해부터 1998~99년에 그린 히피 드로잉을 잉크젯으로 재생산하기 시작했다. 그의 오래된 히피들은 새로운 기술을 통해 새 삶을 얻었다. 프린트된 이미지는 다시 그려지거나, 덧붙여지거나, 재촬영될 수 있고, 잉크젯의 피드백을 통해 프린트하여 처음부터 다시 만들질 수 있다. 이 따끈한 얼굴들을 ‘하이 타임스’라고 부르는 것은 꽤 타당하지 않은가. “초상화는 보는 것에 대한 것이지 무엇이 되는 것에 대한 얘기가 아니에요.” 히피, 리처드 프린스가 그린 타인의 삶은 이렇게 우리의 영혼에 물든다. 그리고 그 소설의 끝은 언제나 열린 결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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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디터|Harper's BAZA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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