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디톡스?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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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디톡스?

디지털 기기로부터의 완전한 해방이란 게 가능할까? 디지털과 현실의 거리를 유지하는 삶의 태도에 대해.

BAZAAR BY BAZAAR 2018.12.15

제부턴가 책을 읽다 보면 같은 단락을 몇 차례고 반복해서 읽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계속 읽어봐야 소용없겠다는 데 생각이 미치면 주저 없이 스마트폰을 낚아 든다.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유튜브 등 소셜 서비스의 피드가 바닥을 쳐도 멈추지 않는다. 필요하지도 않은 아우터를 훑어보느라 쇼핑 앱을 전전하거나, 자극적인 뉴스 헤드라인을 따라 정처 없이 손바닥 안 바다를 표류하다 보면 ‘타임 리프’의 아연함은 고스란히 내 몫이다.

디지털 피로감으로부터 인간을 해방시키려는 ‘디지털 디톡스’ 개념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디톡스’라는 단어는 기본적으로 중독과 의존성을 전제한다는 사실을 의식하는 이들은 얼마나 될까. ‘디지털 디톡스’ 역시 기기에 의해 건강과 행복에 대한 스스로의 결정권과 실행력을 침해 당한 이들을 위한 처방이다. 디지털 기술과 디바이스 없이는 삶을 영위하는 게 불가능하대도 과할 게 없는 시대다. 수많은 현대인들이 ‘이래도 되나’ 싶어 스스로를 외부의 도움을 통한 ‘해독’이 필요한 존재로 여긴다. 어쩌면 아직은 수렵과 채집, 종이와 활자에 최적화된 태곳적 인류의 DNA가 이 세태를 온전히 받아들이기엔 역부족인지 모른다. 원격으로 일하는, ‘유비쿼터스’ 존재가 되어 살아야 하는 시대적 조류를 타고났음을 받아들여야 한다. 무심코 들른 PC방에 등산용 칼을 든 괴한이 있을지도 모르는 불안감에 가족, 친구, 연인과 핫라인을 구축하지 않으면 안 되는 흐름 말이다.

<미디엄(Medium)>의 필자 AJ 존스는 ‘디지털 디톡스’가 아니라 현실과 디지털 세계를 건강하게 오갈 수 있는 ‘디지털 디태칭(Digital Detaching)’을 말하고 있었다. 요지는 의식적으로 기기와 나를 분리한다는 것. 결국은 ‘나와의 사투’였지만 필자의 진솔한 체험기가 마음을 움직였다. 10여 년간 군복무를 하던 필자가 영국 모 명문대의 풀타임 학생으로 복귀하면서부터 문제는 시작된다. 매일같이 기계를 품고 앉아 있는 정적인 삶으로 전향하면서 찾아온 체중 감소와 급격한 시력 저하는 시작에 불과했다. 일에 몰두하면서 성과는 있었지만 정작 자신감은 곤두박질했고, 사람들을 만나는 게 꺼려졌다. 심각성을 인지한 존스는 스스로 바뀌기로 결심한다. 그가 택한 방법은 모든 디지털 기기를 없애고 극단에 자신을 가두는 ‘디톡스’가 아니라 디지털 라이프를 컨트롤하는 ‘디태칭’이었다. 눈을 뜨면 운동을 나섰고 루틴이 끝날 때까진 휴대폰을 보지 않았다. 지금 당장 메일에 답장하지 않아도 세상이 무너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되뇌었다. 저녁 나절의 랩톱 사용 시간 제한은 어떤 것보다 철저히 지켰다. 한 줌 잿더미 같아 보였던 필자는 빠르게 변해갔다. 행복과 에너지를 되찾은 것이다. 그의 담담한 체험기를 읽고 내 일상 속에서도 ‘디지털 디태칭’을 실천해봤다. 사실 그동안 무의식적으로 화면에 손가락을 문지르고 있는 스스로에 대한 자괴감에 시달리며 모든 소셜미디어 앱을 홧김에 지워 버리는 경우가 왕왕 있었다. 집중을 해야 할 땐 이 앱만큼은 켜지 않기 위해 앱을 못 켜게 하는 앱을 켜고야 마는 모순에 빠지기도 했다. 그런데 우리가 이토록 디지털 기기에 집착할 수 밖에 없는 시대적 서사를 받아들이자 나 스스로에 대한 연민 같은 게 일었다. 이전까진 아이폰이랑 누가 이기나 해보자 이판사판의 심정이었다면, 지금은 서로에게 진심 아닌 독설을 퍼붓고 돌아선 모녀의 심정이랄까. 언제 어떻게 이 요물을 컨트롤할지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정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생겼다. 가장 먼저, 잠들기 전 거의 기계적으로 넷플릭스를 켜는 의식(?)을 중단했다. 유튜브를 띄우며 ‘어쨌든 넷플릭스는 아니니까 약속을 어긴 건 아니지’ 라며 합리화를 하던 밤도 있었음을 고백한다. 오프라인의 무료함은 책을 침대 맡에 두는 행위로 한 인간을 교도했다. 실패의 고배를 수도 없이 마셨지만 몇 장이라도 넘기다 잠에 든 날은 어김없이 침을 흘렸다. 일을 하며 만나는 수많은 초면들을 앞에 두고  뻘쭘하다는 핑계로 휴대폰을 쳐다보지 않기로 했다. 인터넷 말고 눈앞에 있는 서로 간의 어색한 기류를 서핑하며 이런저런 얘기를 주고받다 보면 전혀 예상치 못했던 아이디어가 떠오르기도 했다. 랩톱 없이 엄마만 모시고 카페에 간 건 또 얼마 만인가. 

애플이 책임감을 주지한 걸까. 최근 iOS가 업데이트되면서 위젯 센터에 ‘스크린 타임’이 추가됐다. 언제 어떤 앱을 얼마만큼 사용했는지, 시간당 아이폰 화면을 몇 번 깨웠는지, 오늘 오후엔 몇 회의 알림이 무슨 앱에서 울렸는지 등 개인 사용자의 아이폰 사용 실태를 소상하고 적나라하게 분석해준다. 아니나 다를까, ‘디지털 디태칭’을 수행 중인 내게 매우 객관적이고 용이한 데이터가 돼주었다. 휴대폰과 랩톱 없이는 일상생활이 불가능하다고 해서 모두가 ‘디톡스’를 필요로 하는 중환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자. 나의 디지털 라이프를 스스로 제어하고자 하는 의지가 돋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의지는 실현이 가능하다. 오늘 퇴근길엔 일부러 고개를 들어보자. 생각보다 보이는 게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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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디터|이 현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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