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 각자의 쇼룸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물건과 소비로 설명되는 이케아 세대의 이야기. | 쇼룸

‘쇼룸’이라는 말이 환기시키는 화려함은 김의경의 소설엔 없다. 어느 때보다 풍요로운 시대를 살고 있지만 소설 속 인물들은 내 집 마련은커녕 변변한 방 한 칸을 구하기 어렵다. 고용, 연애, 결혼, 출산, 양육 등 생활의 모든 지표가 불안정하다. 현실의 막막함을 곱씹거나 눈물을 흘릴 짬조차 이들에겐 쉬이 허락되지 않는다. 1978년생 저자 김의경은 2014년 청년신춘문예에 장편소설 이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관념이 아닌 실재로서의 신용불량자, 파산자를 그려내며 한국 문학에 낯설고 새로운 서사를 선사한 그녀는, 그로부터 4년 후 첫 소설집 을 통해 오로지 물건과 소비로 설명되는 인간의 삶과 그 얇고 슬픈 정체성을 그린다. 소설 속 등장인물들은 높은 가격대의 고급 가구 브랜드를 소비하지 못하고 이케아 단계에 머무른다. 그러나 이케아를 맴도는 이들의 양상은 제각각이다. 저녁 7시를 기점으로 택배 상하차를 하는 남편은 출근하고,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나’는 퇴근하며 서로 마주치지 않으려 한다. 채권자를 피해 광명으로 도망이사를 하며 둘은 별거보다 못한 동거를 하는 중이다. 좁은 거실에 둘 소파베드를 고르기 위해 부부는 오랜만에 함께 이케아를 찾고, 서로의 존재를 다시 확인한다. 사라, 미진, 예주는 대학 동기로 셰어하우스에 함께 산다. 두 명은 카페 아르바이트, 한 명은 그나마도 해고 위기에 놓인 대기업 비정규직이기에 집에 놓을 가구는 ‘최저가’여야 한다. 잘 꾸며 놓은 미로 같기도 하고, 한 번 발 담그면 헤어나올 수 없는 개미지옥 같기도 한 이케아를 찾은 셋은 19만원짜리 대신 9만원짜리 소파를, 2만원짜리 대신 5천원짜리 램프를 고른다. 희영과 태환은 작가 부부다. 7년째 결혼식은 올리지 않고 있다. 희영은 결혼식 대신 온전히 글쓰기에 집중할 시간을 원했다. 태환은 그런 희영을 위해 자신의 글쓰기는 포기하고 정육점에서 정형 기술을 익히며 희영을 뒷바라지하는 데 온 힘을 쏟는다. 집 안 분위기를 바꿀 겸 희영은 이케아에서 저렴하지만 화려한 샹들리에 조명을 사다 단다. 붉을 밝히자 정육점 고깃덩어리처럼 도드라져 보이는 건 고단한 삶의 흔적들뿐이다. 문학평론가 강유정에 의하면 이케아는 작품 속 주인공들이 거쳐가는 일종의 경유지이다. 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대개는 자본주의의 양극화된 충격을 고스란히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이케아 세대’라고도 불리는 20~30대 젊은이들도, 미처 준비하지 못한 노년기와 마주친 노인 세대도, 모두 이 충격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집은 사고 싶지만 살 수 없는 것이 되고 그래서 사람들은 쇼룸에 가서 집의 이미지를 구매한다. 그들은 이케아 쇼룸에 전시된 가구를 구매함으로써 꿈꾸는 삶의 순간도 구매하고자 한다. 아니, 이케아가 제시하는 삶의 표본에 포함되고 싶어한다. 속 단편들은 대부분 작가가 머물렀던 장소를 배경으로 했다고 한다. ‘작가의 말’을 통해 김의경은 이렇게 책을 맺는다. “이케아 광명점이 오픈하던 날, 나는 혼자서 이케아에 갔다. 가구를 하나라도 구입할 생각이었다. 그로부터 2년간 계절이 바뀔 때마다 나는 습관처럼 이케아를 방문했다. 그곳에서 내가 본 쇼룸은 500개가 넘을 것이다. 하지만 그곳에서 구입한 가구는 단 한 개도 없다. 한 권의 소설책이 남았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