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지에게 중독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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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지에게 중독

글로벌 하우스 뮤직 신에서 지금 예지는 하나의 현상이다. 얼마 전 북미 단독 투어를 성공적으로 마친 예지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던졌다. 갓 피어난 예지의 세상은 오묘한 설렘으로 가득 차 있다.

BAZAAR BY BAZAAR 2018.12.13

최근, 예지가 파티에 떴다 하면 펼쳐지는 진풍경이 있다. 수많은 백인들이 어설픈 한국어로 가사를 고래고래 ‘떼창’하기 시작한다. 상당 부분 한국어로 이루어진 예지의 가사를 정확하게 발음할 순 없고 어떻게 소리가 나야 하는지 정도만 감지하다 보니 얼핏 들으면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따라부르는 것이다. “Geugeaniyaaa(그게아니야), aniya geugeaniyaaa(아니야 그게 아니야)”, 눈을 감고 허공에 손을 뻗은 군중이 몽환적인 4×4 리듬을 타고 부유하는 동안 누군가는 아마 향긋한 커리가 든 볼을 들고 그 와중을 누빌 것이다. 카네기 멜론 재학 시절 예지는 ‘Curry Night’를 정해 친구들을 불러놓고 엄마가 보내주신 일본 커리를 만들어 먹이곤 했다. 실제 뉴욕 공연 현장에선 로컬 한국 음식점과 제휴해 커리를 나눠준다.

1993년생 한국계 미국인 DJ이자 비주얼 아티스트인 예지(Kathy Yaeji Lee)는 뉴욕에서 활동 중이다. 2016년 데뷔해 작년 ‘Raingurl’, ‘Drink I’m Sipping On’ 등이 알려지며 큰 주목을 받았고, 드레이크의 ‘Passionfruit’, 찰리 XCX의 ‘Focus’ 등을 예지만의 터치로 재탄생시키기도 했다. 지난 9월부터 11월 초까지 북미 단독 투어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투어 공연은 처음인가? 기분이 어떤지 궁금하다.

정말 좋다. 북미 투어는 두 번째다. 첫 투어 때는 친구들과 팀을 이뤄서 밴을 타고, 우리가 직접 준비한 AV 세트를 들고 다니면서 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여행하며 일을 할 수 있다는 건 마치 한 편의 즐거운 모험처럼 느껴진다.

미국에서 태어나 한국과 일본을 거쳐 다시 미국에 정착했다. 살면서 다양한 문화를 경험하는 건 분명 좋은 일이지만,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 살아내는 건 또 다른 일일 것이다. 힘든 점도 많았을 것 같은데.

가장 힘들었던 건 각 문화별로 다른, 이방인(Outsider)을 대하는 관점과 태도였다. 어딜 가나 나는 정식으로 귀속되지 못했다. 미국에서 나는 유색인이었다. 인종에 대한 차별대우를 경험하는 건 어쩌면 자연스러웠다. 내가 한국말과 함께 정체성도 잊을까 염려한 부모님은 아홉 살 무렵 나를 한국으로 데려갔다. 영어로 말한다는 이유로 생면부지의 어른들이 길거리에서 나를 꾸짖었다. 한국에서 나는 미국물을 너무 많이 먹은 애였다. 그것도 여자아이. 일본에선 한국계 미국인으로서 한국과 일본 간 역사적으로 복잡다단한 관계를 지켜봐야 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모든 순간들이 나로 하여금 지금 내가 딛고 선 곳이 어딘지, 그리고 나라는 사람은 누군지 더 잘 헤아릴 수 있게 해주었다.

“난 음악에 완전히 사로잡혔다(The music really engulfed me).”라고 말했다. 비주얼 디자인을 전공하고 낮에는 그래픽 디자이너로, 밤에는 DJ로 활동하는 바쁜 삶을 살았다. 어쩌다 음악에 사로잡혔나?

내가 보니 나란 사람은 늘 ‘새롭고 창조적인 표현’에 대한 애정과 호기심을 가지고 있었다. 비주얼 아트는 내가 자라면서 선택한 일종의 표현 도구였다. 대학 시절 그래픽디자인, 모션그래픽, 회화 같은 것들에 흥미를 느꼈다. 학교와 인터넷에서 받은 영향은 가장 나다운 비주얼 작업을 할 수 있게 해주었다. 모든 분야의 크리에이티브 작업은 서로 유기적으로 호흡한다고 생각한다. 내 비주얼 작업이 음악에 영향을 미치고, 반대로 내 음악이 비주얼 작업에 영향을 주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하다. 음악에 관심을 갖게 된 건 대학교 라디오 팀에 합류하면서부터다. 내가 이전에 한번도 들어보지 못했던 언더그라운드, 레프트필드 음악을 모두가 듣고 있었다. 내가 잘 몰라서 놓친 것들, 그래서 부지런히 따라가야 할 것들이 정말 많다고 느껴졌다. 음악과 디제잉에 본격적으로 몰입한 건 그때부터다. 그렇다고 하우스 음악에만 집착하는 건 아니다. 어딘가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생각하게 하는, 그리고 나를 춤추게 하는 음악이라면 어떤 장르건 나는 빠져든다.

그렇다면 음악 프로듀싱에 관한 전반적인 것들은 모두 독학했나?

그렇다. 에이블톤(Ableton) 시험 버전을 다운받아 튜토리얼을 보며 혼자 연습했다. 궁금한 게 생기면 다룰 줄 아는 친구들한테 물어봤다. 학교 수업도 빼먹어가며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음악 프로듀싱에 대해 최대한으로 배우고자 했다.

가장 사랑하는 뮤지션, 디자이너, 혹은 아티스트가 있다면?

너무 많아 고르기가 어렵다. L.A에선 루크킴(Luke Kim)의 파티를 정말 좋아한다.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다양하고 신선한 청중이 매우 인상적이다. 뉴욕에는 KRINK라는 회사를 운영하는 크레이크 코스텔로(내 이전 보스이기도 한)를 좋아한다. 한국에서는 ‘Leevisa’와 ‘Frikimo’가 정말 실험적이고 몰입도 높은 작업을 하는 것 같다. 스스럼없이 자기를 표현하는, 퀴어 프렌들리한 분위기 때문에 ‘Shade’ 와 ‘No Club’의 파티도 좋아한다.

한국이 예지를 기다린다. 앞으로 한국 활동 계획은 없는지 궁금하다.

한국은 내 집이다. 그리고 나는 한국을 사랑한다. 그러면서도 나는 내가 하는 작업들이 그동안 수많은 문화와 환경에서 겪은 내 경험들로부터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특정 나라나 문화에 무대를 국한시키는 게 아니라, 인터넷을 통해 내 음악을 세계 모든 이들에게 들려주고 소통하는 것이 더 적절치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한국에서 조만간 꼭 공연하고 싶다. 내년에는 아시아 투어를 계획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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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디터|이 현준,사진|Micaiah Car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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