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 코르뷔지에의 보물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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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 코르뷔지에의 보물

한 통의 편지로 시작돼 비와 전쟁과 철거 위기에서 살아남은 르 코르뷔지에의 상징적인 건축물 ‘빌라 사보아(Villa Savoye)’. 그 드라마틱한 이야기가 담긴 책 '르 코르뷔지에 : 빌라 사보아의 찬란한 시간들'과 동명의 전시가 공개됐다.

BAZAAR BY BAZAAR 2018.12.11

Courtesy of Ô VOIS/ⓒJean-Philippe Delhomme

건축물을 걸작이라 부를 만한 기준은 어디에 있는 걸까. 건축물을 의뢰한 사람들의 의지와 정성, 참여자들의 재능, 완성된 프로젝트의 조화를 통해 우리는 특별한 작품과 마주할 수 있다. 그렇다면 르 코르뷔지에의 빌라 사보아는 어떻게 걸작이 되었을까. 이런 질문을 가슴에 품은 채 빌라 사보아로 여행을 떠나보자. 2016년,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르 코르뷔지에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기념 전시를 보았다면 빌라 사보아라는 주택의 이름이 제법 익숙할 것이다. 간략하게 역사를 되짚어보면 빌라 사보아는 1928년 르 코르뷔지에와 피에르 잔느레가 사보아 부부에게 건축 의뢰를 받아 1930~31년에 지은 주택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난 1940~45년까지는 독일군이, 그 후에는 미국군이 이곳을 점령했다. 사보아 부부가 빌라 사보아를 되찾았을 때는 더이상 사람이 살 수 없을 정도로 폐허가 돼 있었다. 결국 빌라 사보아의 땅은 농지로 전환됐고, 집은 창고처럼 쓰였다. 이후에도 빌라 사보아의 시련은 이어졌다. 1960년엔 푸아시 시가 고등학교 신축을 위해 빌라 사보아를 허물겠다고 결정했는데, 이 소식을 들은 전 세계 건축가들의 청원이 이어졌다. 이런 거추장스러운 소란을 비난하는 주민들의 악의적인 편지가 시청으로 날아들었지만, 당시 프랑스 장관이었던 작가 앙드레 말로가 빌라 사보아를 극적으로 구해내, 이를 국유화하고 복원해 대중에 공개했다. 프랑스는 전통적으로 국가가 문화 정책을 이끈다. 당시 문화부 장관이 르 코르뷔지에를 비난하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였다면 아마 지금의 빌라 사보아는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살아남은 빌라 사보아는 오늘날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세계 건축 1001’, ‘20세기 상징적인 주택 건축’ ‘르 코르뷔지에가 주장한 현대 건축의 5대 요소가 모두 적용된 최고의 주택’으로 끊임없이 회자되고 있다. 그러나 이 집을 의뢰한  건축주가 그곳에서 행복하게 살았는지는 별로 알려진 바가 없다.

<르 코르뷔지에 : 빌라 사보아의 찬란한 시간들>(오부와)을 쓴 장-마크 사보아는 빌라 사보아 건축주의 손자로서 그곳에서 찬란한 시간을 맞이했던 할머니 유제니 사보아와 할아버지 피에르 사보아의 삶을 책으로 소환했다. 1928년 보험회사를 운영하던 피에르와 그의 부인 유제니 사보아는 굉장히 교양 있거나, 통찰력이 뛰어나거나, 진보에 열을 올리는 타입은 아니었지만 새로움을 받아들이는 데 익숙했을 뿐 아니라 뼛속까지 현대적인 사람들이었다. 아마 이 지점에서 르 코르뷔지에라는 건축가의 비전이 그의 할머니, 할아버지의 요구와 완벽하게 맞아떨어졌던 것 같다. 필로티를 고안한 것은 르 코르뷔지에였지만 자동차를 타고 건물로 들어와 별다른 조작 없이 주차할 수 있도록 집을 설계하자는 아이디어는 유제니 사보아에게서 나온 게 분명했다. 빌라 사보아가 지닌 아름다움의 열쇠는 바로 여기에 있다. 건축이 진행되던 당시 르 코르뷔지에는 푸아시에 아주 특별한 작품이 지어지고 있음을 예감한 것 같다. 1930년 4월 25일, 그는 자신의 어머니에게 보내는 편지에 “푸아시에 있는 빌라 사보아는 작은 기적이 되고 있습니다. 하나의 창작물입니다.”라고 썼다. 하지만 완공 이후 빌라 사보아에 살게 된 사보아 가족이 이곳에서 편안한 생활을 한 것만은 아니었다. “선생님, 현관 입구에 물이 새고 경사로에도 물이 새고, 주차장 벽은 완전히 젖었습니다. 게다가 비가 올 때마다 욕실도 항상 물이 샙니다. 천장에 있는 창문으로도 물이 들이칩니다.” 비단 1936년 9월 7일의 이 편지가 아니더라도 유제니 사보아의 불평은 늘어만 갔고, 이 가족을 끊임없이 괴롭히던 난방과 누수는 결국 해결되지 않았다. 그 시점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해 그들은 이 집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유제니 사보아는 르 코르뷔지에에게 보낸 첫 편지에 “몇 년 후, 집을 손상시키지 않으면서 확장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라고 썼지만 계획대로 이뤄지진 않았다. 대신 “오래도록 남을 집을 짓고 싶었다”던 그녀의 바람은 이루어졌다.

르 코르뷔지에는 “집은 살기 위한 기계”라 했다. 그러나 푸아시에서는 결코 그런 집을 발견할 수 없다. 대신 시적인 감성을 느끼고 싶다면 빌라 사보아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우리를 먼 곳으로 데려갈 것이다. 당장 그곳에 갈 수 없다면, 12월 16일까지, 효자동 더 레퍼런스 갤러리에서 열리는 전시 <르 코르뷔지에 : 빌라 사보아의 찬란한 시간들>로 오면 된다. 빌라 사보아에 살았던 사람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재현한 장-필립 델롬의 일러스트 원화 25~30점과 설계 도면, 편지 등의 역사적 사료들 등 빌라 사보아의 명백한 아름다움을 증명하는 이야기를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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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디터|Harper's BAZA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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