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18일 장기하와 얼굴들(이하 장얼)은 “장얼 가족 여러분”으로 시작하는 문서 하나를 공개했다. 이번에 발표하는 5집이 장얼의 마지막 앨범이 될 것이며, 올해 12월 31일까지만 활동하겠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댄스 플로어에서 종종 장얼의 노래를 틀던 디제이, 타이거디스코는 이 문서를 보고 오열을 터뜨렸으며 장얼과 함께 10년을 보낸 수많은 팬들 또한 놀라움과 당황, 슬픔을 감추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문서는 굉장히 다정하고, 논리적이며, 인과관계가 몹시 뚜렷하여 말문이 막히게 만들었다. 이 슬프고도 빼어난 문서는 장얼의 수많은 노래가사를 쓴 장기하가 직접 작성했다. 초안을 만들어 멤버들에게 공유했고, 모두가 동의하여 초안이 최종안이 되었다.
11월 1일, 장얼은 5집이자 마지막 앨범
5집 타이틀인
장기하 어떤 요소를 자꾸 빼려는 노력은 3집부터 시작됐다. 2, 3집은 소리가 많이 꽉 차 있던 음반이었다. 4집에서 5집으로 오면서 점점 조금이라도 불필요한 것은 들어내자는 방향으로 왔다. 그러면서 심지어 스테레오가 아닌 모노로 믹스하자는 데 꽂혔다. 스테레오에 비교하면 모노는 핸디캡이나 마찬가지다. 어려움이 있었다. 이 소리에 가려서 다른 소리가 안 들리기도 하니까. 그런데 요새 음악을 정확히 양쪽 스피커 가운데서 또는 헤드폰을 끼고 듣는 경우가 얼마나 있나. 지나가며 흘려 듣거나 (휴대폰을 들어올리며) 이렇게 듣는다. 그럴 때도 살아남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장얼은 모노로 믹스된, 간결한 사운드의 5집
장기하 1집이 사랑을 받아 너무 신났다. 뭔가 우리 다 해보자는 마음이었다. 이민기 2집 때는 기타를 녹음할 때도 아주 큰 앰프를 갖다 놓고 마이킹을 세 개씩 했다. 이종민 2집 앨범 발매 기념 공연 때는 무대 위에 신시사이저 8대를 올렸다. 양평이형 보통 다리 밑에 페달(기타 이펙터)이 있다. 나의 경우에는 옆에 이펙터 벽이 있었다. 장기하 객기였다. 무식하니까 용감하기도 했고. 1집을 성공한 밴드의 특징이다. 이런 문장 안 좋아하는데, 진짜 그때 젊긴 젊었다. 파이팅이. 양평이형 우리 밴드, 할 거 다 했다.
장기하는 드러머 출신이다. 때문에 베이스 정중엽, 기타 이민기, 기타 양평이형, 신시사이저 이종민은 장기하가 키보드로 찍어 보낸 악보 때문에 고생을 많이 했다. 보통 베이시스트라면, 기타리스트라면, 키보디스트라면 하지 않는 연주를 찍어서 보낸 탓이다. 한번은 양평이형이 “야, 이건 팻 메스니가 와서 쳐도 못 쳐.”라고 푸념을 했단다. 이 성대모사는 이민기가 했다.
전일준 저는 좀 달랐다. (장기하가) 원래도 드러머였고, 형(장기하)의 어떤 의도가 있어 요구하는 거라 생각해서 받아들였다. 이민기 같은 드러머인데 드럼을 더 잘 치니까 버겁진 않겠지. 장기하 일준이 입장에서 좀 더 편할 수 있었던 것은, 나는 드러머 출신이니까 드럼은 상식적으로 만들었다. 전일준 오히려 그런 면에서 이번 5집이 조금 힘들었다. 너무 빼서. 장기하 5집은 많이 빼는 거에 열을 올렸다. 그런 과정에서 내가 드러머 출신이기에 관성적으로 넣는 것이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런 것들이 음악을 재미없게 만들 수 있다. 선입견으로 갖고 있던 것들을 재조합하려고 노력을 많이 했다. 그래서 드러머 입장에서 전보다 불편했을 수도 있다.
처음 장기하로부터 이번 5집이 마지막이라는 말을 들었을 당시 다른 멤버들은 ‘올 것이 왔구나’(이민기, 이종민), ‘연인으로부터의 이별 통보’(정중엽), ‘밴드라는 형태가 사라질 뿐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다’(양평이형)와 같이 다소 담담하게 받아들인 반면 전일준은 가슴이 철렁했다. 이게 우울증인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이 말을 하는 전일준의 가늘게 내려온 머리카락과 촉촉한 눈망울이 한층 더 그를 슬퍼 보이게 만들었다. 한국에서 음악을 하며 먹고살 수 있는 몇 안 되는 밴드 중 하나였던 장얼은 멤버들의 직장이기도 했다. 장얼이 활동을 중단한다는 건 생업이 사라진다는 말과 같다. 경제적인 부분에서 걱정이 생기지는 않았냐는 질문에 이들은 이렇게 답했다.
이민기 많이 된다. 항상 한다. 그런 걸 생각하기 시작하면 밑도 끝도 없어서 활동을 할 수 없기 때문에 나중으로 미뤄뒀다. 정중엽 민기는 미룰 수 있는 타입의 사람이다. 나는 그럴 수 없어서 머리가 너무 복잡할 때가 있다. 장기하 그럴 때 연주를 틀리는구나.
장기하는 리더가 확실하다. 구박을 받긴 했지만 베이시스트 정중엽은 장기하가 전역 후 자신의 음악을 ‘제대로 된 박자’로 연주할 수 있는 밴드를 만들 때부터 합류했던 멤버다. 덕분에 이미 1집 때 장기하의 버거운 음악적인 요구에 적응을 마쳤다. 베이스를 치기 전에는 기타를 쳤고, 지금도 다른 밴드에선 기타를 치기도 한다. 음악 외 관심사가 궁금하여 돈이 생기면 어디에 쓰냐고 물었더니 빈티지 악기를 산단다. 외국 투어를 나가면 악기를 산다. 평소 관심사가 궁금하여 짬이 생기면 스마트폰으로 무엇을 보느냐고 물었더니 악기를 본다고 했다. 최근에는 신시사이저에 빠졌다. 무그의 그랜드마더를 샀다. 양평이형도 그랜드마더를 샀다. 양평이형도 빈티지 악기를 좋아한다. 양평이형도 외국 투어를 나가면 악기를 산다. 정중엽은 이를 일컬어 ‘시너지’라고 했다. 신시사이저를 연주하는 이종민 또한 이 시너지의 일원이다. 장얼을 하다 보니 사야 할 악기가 많았다. 건반의 종류가 굉장히 다양하기 때문이다. 공연을 다니는 여정 가운데 운 좋게 발견하는 악기를 샀다. 주변에서 재고를 알려주고, 이거 있어야 돼, 저거 있어야 된다며 부추긴다. 그 결과 이종민은 2집 발매 공연 무대 위에 8개의 신시사이저를 갖고 올라갔다. 20곡 중 다섯 곡을 연주하기 위한 가구만 한 크기의 하몬드 오르간을 포함해서. 다만 그랬더니 이미 신나서, 전율에 젖어 있어서 연주가 잘 안 됐다. 그 이후로는 덜 신나기 위해 적은 숫자의 신시사이저를 무대에 올린다. 악기를 손에 쥔 음악가들은 한결같다. 최근엔 밴드 혁오의 오혁이 이종민으로부터 신시사이저와 악기, 앰프 등의 장비를 사 갔다. 혁오 또한 과거의 장얼처럼 1집이 성공했기 때문이다.
현재 장얼 멤버 6명은 모든 것을 내년으로 미뤄둔 채 오로지 현재 장얼 활동에만 몰입하고 있다. 마른 수건을 쥐어짜는 심정으로 인터뷰를 했지만 그들이 지금 머릿속으로 한결같이 하는 생각은 공연뿐이고, 내년 계획은 마지막 공연이 끝난 뒤에나 생각해보겠단다. 그러니까 이들의 향후 계획을 ‘mono’ 스타일로 간결하게 정리하자면 이렇다. 장기하와 얼굴들은 올해 마지막 날 공연까지 열심히 활동한다. 나머지는 2019년 1월 1일 또는 2일까지 해장을 한 뒤에 생각한다.
장기하와 얼굴들의 마지막 공연은 2018년 12월 28, 29, 30, 31일이다. 이미 모두 다 매진됐다. 이날 이후에도 우리의 삶이 계속되듯 장기하와 얼굴들에서 독립한 전일준의, 정중엽의, 이종민의, 이민기의, 양평이형의, 장기하의 삶도 계속 이어질 것이다. 그리고 아마 다시 만나는 그날 우리는 서로 별 일 없이 살다 만난 표정을 짓고 있을 것이다. 글/ 이덕(음악 칼럼니스트) 에디터/ 김지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