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한 코트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트렌드와 시대를 넘어서 오롯이 나를 위한 코트 찾기 대장정을 떠나볼 것. | 코트

“소란스럽지 않지만 근사한 옷, 절제된 베이식 디자인이죠. 여성의 삶을 더욱 편하게 만들어주는 시대를 초월하는 옷이랄까요. 아침에 무엇을 입을지 고민하지 않아도 되며, 그 어떤 다른 옷들과도 잘 어우러지죠.” 고급 주택들이 즐비한 뉴욕 트라이베카의 더 로 쇼룸에서 만난 PR 디렉터 이저벨라 이즈비로글루가 코트를 가리키며 설명했다. 지난 9월 숨 가쁘게 뉴욕 패션위크 취재를 하던 중 잠시 마음이 평온해진 순간으로 기억된다. “캐시미어를 더욱 특별하게 만들기 위해 우리만의 가공을 더하죠. 때로는 섬세하고 부드러운 코튼으로 작업하기도 해요. 촉감이 거의 캐시미어와 같거든요!” 그중에서도 스테디셀러로 꼽을 수 있는 벨티드 오버사이즈 코트는 정말 손이 미끄러질 만큼 부드럽고 입지 않은 듯 가벼웠다. 게다가 뉴욕에 내리는 가을비와 싸늘한 바람 탓에 당장 구입하고 싶을 만큼 매혹적이었다. 그러나 그 코트는 600만원을 훌쩍 넘는다.(지갑을 쉽사리 열기엔 ‘0’ 하나쯤 빼야 하겠지만.)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계절, 보스턴 컨설팅이 ‘시즌 내 적합성’이라고 보고했듯 11월은 그야말로 코트 쇼핑의 최적기 아닌가. 쇼핑 경험치가 쌓이면서 얻은 결론 중 하나는 코트만큼은 투자할 가치가 분명히 있다는 사실이다.에디터에게는 엄마에게 물려받은 코트들이 있다. 1990년대의 버버리 트렌치 코트도 그중 하나. 어깨가 느슨한 스타일이라 처음 물려받았던 대학 시절 내내 옷장 속에서 세상의 빛을 보지 못했었다. 그러나 오버사이즈가 유행한 지난 시즌부터 봄, 가을로 나의 단짝이 되어주었다. 버버리 체크 패턴이 다시 돌아왔으니 소매를 접어 안감의 체크를 자신 있게 드러낸다. 어깨가 넓고 낙낙한 실루엣은 여전히 근사했고, 튼튼한 개버딘 소재는 20여 년의 세월이 지난 후에도 색이나 소재, 형태조차 변함없이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 그렇다. 클래식은 영원하다는 명제는 패션계에서도 통한다. 결국 그것이 해답이 될 수밖에 없다.(그럼에도 얼마 전 리카르도 티시가 디자인한 새로운 버버리 코트를 보면서 쇼핑 욕구가 스물스물 일어나는건 어쩔 수 없었다. 무언가를 갈구하게 만드는 그 지점이, 패션이 주는 불완전한 행복일 테니 말이다.) 최고급 원단과 완벽한 재단을 갖춘 코트야말로 타임리스 아이템 아닐까. 지난 겨울 디자이너 제이백을 인터뷰하면서 그의 아틀리에를 찾았을 때의 일이다. 고객과의 미팅이 채 끝나지 않아 엿들을 수 있었던 대화. 그는 아주 편안한 친구처럼 일상의 이야기를 나눴다. “여러 차례 미팅을 하죠. 그의 라이프스타일부터 제대로 파악해야 디자인을 시작할 수 있거든요.” 톰 포드를 거친 디자이너 제이백 쿠튀르의 입체적인 재단이 사람으로부터 나온다는 사실이 신선했다. 새빌 로에서 힌트를 얻어 더 로를 론칭한 올슨 자매 역시 자신들을 유명하게 만든 히피 스타일을 포기하고 심플하고 실용적이며 고급스러운 옷들을 선보이며 패션계를 대표하는 디자이너로 성장하지 않았나. 어느 인터뷰에서 모든 제작 과정을 뉴욕의 장인들과 작업한다며 자랑스러워했던 기억이 난다. 전통적으로 남성 맞춤복을 제작하는 피렌체의 카루소 공장에서 제작되는 셀린의 테일러드 코트도 그렇다. 일하는 여자 그리고 엄마의 삶을 향유할 수 있는 실용성에 우아함이 깃든 디자인. 그 무엇보다 타인을 위해서가 아닌 ‘나’를 위해 자신이 원하는 느긋하고도 편안한 스타일을 가진 코트야말로 시대를 초월하는 힘을 가진다. 카린 로이펠트가 “닳아 없어지는 대신에 끊임없이 변화하고 젊어지는 옷이 있다”고 극찬한 샤넬의 트위드 소재 역시 마찬가지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서은영은 일본에서의 디자이너 시절 샤넬 트위드 재킷에 얽힌 추억에 대해 언급했다. 패턴을 해체한 후 다시 그대로 조립해서 봉제했음에도 처음의 상태로 되돌아오지 않았다고. 거의 과학에 가까운 패턴과 공정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수년 전, 할리우드 스타들이 자주 들른다는 L.A의 빈티지 숍 데케이즈에서 만났던 샤넬 트위드 코트가 여전히 아른거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유행은 사라져도 스타일은 영원히 남는다”고 했던 코코 샤넬의 말처럼 1920년대 그녀의 사진이 여전히 세련되고 품위 있게 느껴지는 이유와 동일하다. 10년, 아니 그 이상의 세월이 흘러도 입을 수 있는 코트를 쇼핑하는 행위는 자고로 유행의 체득에서 벗어나 정체성을 찾는 여정과 같다. 단순히 옷이 아닌, 인연을 맺는 그 무엇,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