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가 꼭 필요한 이유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디올은 새들 백을 다시 내놓았고, 케이트 모스와 나오미 캠벨은 앞줄에 서서 화보를 찍고 있다. 1990년대를 주름잡았던 이들의 부활. 대체 90년대가 어땠기에. | 90년대

뒤돌아보며 앞으로 나아가는 것, 이 일관된 행보엔 몇 가지 맥락이 있다. 보통 25년 전쯤의 과거를 현재에 반영한다는 것, 그리고 그것들은 대부분 아름답게 표현된다는 거다. 인간이 과거를 되새김질해 곁에 붙들어 매는 건 정서의 결핍을 채우기 위한 가장 흔한 수단이다. 현실은 각박하고 메말랐지만 추억은 늘 촉촉한 법이니까. 아마 25년 주기설은 물기 머금은 단어 ‘아련함’이 살아남기에 적정한 유효 기간일 것이다.2018년 무대에서 우리가 떠올린 ‘아련함’, 그 좌표는 1990년대를 향한다. 그 시절, 구소련의 체제가 무너졌던 1990년대 초. 냉전이란 단어가 박제되었다. 목청껏 자유를 외쳤던 블루진 군단은 갈 곳 잃은 실직자처럼 굴었다. 그래서일까. 골목마다 청춘남녀가 그려내는 로맨스가 차고 넘쳤다. 영화 , 하지만 여기, 2018년을 사는 우리 마음에 불을 지른 90년대는 이게 다가 아니다. 지금 트렌드라는 무대에서 각광받는 90년대, 그리고 내 우뇌에 각인된 90년대는 치기 어린 자유와 건강한 솔직함이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동과 서, 사상과 사상, 문화와 문화가 몸을 섞으며 생겨난 젊은이들의 뜨거운 에너지 말이다. 그 힘의 상징은(적어도 나에겐) ‘앞니가 벌어진 케이트 모스’와 ‘바지를 내려 입은 서태지’다. 그들은 파격, 그리고 새로운 시대를 여는 아이콘이었다. 신디 크로퍼드, 린다 에반젤리스타처럼 키 크고 육감적인 글래머 스타들의 전성시대였던 1980년대, 마돈나의 투 머치 룩이 각광받던 그 80년대의 문턱을 넘고 등장한 당돌한 소녀 케이트 모스. 하지만 말도 안 되는 얼굴(앞니가 벌어진), 말도 안 되는 키(167cm), 더 말이 안 되는 몸집(가슴이 없다!)을 지닌 그녀는 90년대의 문을 열자마자 전 세계인의 패션 아이콘이 되었다. 슬립드레스 한 장, 청바지 하나로 완성한 세련됨, 무엇보다 당돌한 눈빛과 무심한 말투까지. 그녀는 이번 시즌 생 로랑의 광고 캠페인에서 전성기 못지않은 아름다움에 카리스마를 과시하기도 했다.그뿐이랴. 2019 S/S 시즌, 백발의 톱 모델 크리스틴 맥메너미는 발렌티노의 오프닝을 장식했고, 티시의 첫 번째 버버리 쇼에는 스텔라 테넌트가 등장했다. 물론 90년대의 패션 키워드를 하나로 일갈하긴 어렵다. 다양한 디자이너의 춘추전국시대였으니까. 미니멀리즘의 대명사였던 캘빈 클라인, 헬무트 랭의 건너편엔 존 갈리아노, 알렉산더 맥퀸, 비비안 웨스트우드, 마크 제이콥스 같은 개성 넘치는 이들이 가득했으니까. 아름다운 시절이었다!맞다. 이게 90년대다. 다양성과 개성으로 리드미컬했던 화양연화. 하지만 당시의 나에겐 당돌한 케이트, 쿨한 케이트만 보였다.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과감한 태도가 어쩌면 그렇게도 세련되었던지! 그러고 보면 90년대 그녀가 대변했던 패션은 ‘솔직한 세련됨’이었다. 이 솔직함의 파도는 유르겐 텔러, 스티븐 마이젤 등의 사진가의 작품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포장하지 않은 날것 같은 사진들은 사람과 환경을 그대로 노출했고, 꾸밈이 없었다. 이전 시대에는 없었던 이 자유로움은 패션 문화 전반에 영향을 끼쳤고, 이전까지의 가치를 깡그리 뭉개버렸다. 날것으로의 인간, 최소한의 꾸밈이런 가치는 수만 마일 바다를 건너 대한민국에서도 서태지라는 새로운 문화 장르로 꽃폈다(고 믿는다). ‘교실이데아’ ‘발해를 꿈꾸며’ ‘컴백홈’이 기성세대에게 날린 훅의 강도는 이전에도 이후에도 찾기 힘들다.2018년 가을, 우리가 이 솔직하고 용감한 ‘유스컬처’를 좇는 건 당연한 일이다. 쿨함과 솔직함이 사라진 시대를 사는 우리가 꿈꾸는 이상향이니 말이다. 낭만이 살아 있는 90년대가 품은 젊음과 당돌함, 그걸 회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에 비가 내린다. 이러니 소비자 마음을 적시는 게 목표인 온갖 브랜드에서 욕심을 내지 않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