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11시, 대낮에도 햇빛이 들지 않아 어둑어둑한 로비에 나무로 된 실링 팬이 나른하게 돌아가고 있다. 8개의 감시 카메라는 마치 박제된 사슴 머리처럼 벽으로부터 삐죽 튀어나와 있고, 다비드 흉상은 솜뭉치로 표현된 최루가스를 피하려 코와 입을 수건으로 가린 채 미간을 찌푸리고 있다. 입체감 넘치는 벽화 속 아기 천사들은 인간의 세계로 조금 전에 추락한 것인지 산소 마스크를 쓰고 황급히 이곳을 떠나려는 몸짓이다. 그로테스크한 설치작품만 없다면 이곳은 전통적인 영국의 애프터눈 티룸으로 보일 것이다. 무채색의 꽃무늬 벽지와 크고 푹신한 빈티지 가죽 소파, 묵직한 붉은 벨벳 커튼이 어우러져 아이러니한 퇴폐미마저 풍긴다. ‘세계 최악의 전망을 가진 호텔’이자 뱅크시가 창작한 3층짜리 살아 있는 예술작품, 월드오프 호텔에 왔다.
호텔이 있는 베들레헴이 속한 서안 지구(West Bank)는 1967년부터 이스라엘의 점령 아래 있다. 2002년부터 생겨난 분리장벽은 최대 높이 8m에 전체 길이는 800km에 달한다. 이를 두고 이스라엘은 반테러(Anti-terror) 장벽이라고 부르고, 팔레스타인과 국제사회는 인권 유린의 장치라 규탄한다. 뱅크시의 월드오프 호텔은 지난 2017년 문을 연 이래 ‘불편한’ 이 장벽을 강력한 매개로 세계에서 가장 ‘악명 높은’ 호텔로 거듭났다.
“전 세계 미디어에 처음 호텔을 공개하던 2017년 3월 11일에서야 40여 명의 직원들도 자신들이 일할 공간이 어디이고 누가 주인인지 처음 알게 됐어요. 주변 사람들은 제가 기껏해야 게스트하우스 하나를 준비 중이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월드오프 호텔의 총지배인 위삼 살사(Wisam Salsaa)는 말한다. 익명의 아티스트 뱅크시를 대신해 호텔의 간판 역할을 하는 그는 2003년 뱅크시가 처음 팔레스타인에 왔을 때 투어 가이드와 관광객으로 인연을 맺은 뒤 우정을 이어오고 있다. 그의 아내이자 건축가인 라샤 살사(Rasha Salsaa)는 분리장벽이 건설됨에 따라 10여 년간 비워져 있던 낡은 건물의 리모델링과 내부 인테리어를 맡았다. 15개월간의 준비 끝에 각기 다른 9개의 객실과 식당, 갤러리, 박물관, 기프트 숍을 아우르는, 본격적인 반달리즘을 위한 터전이 문을 열었다.
내가 묵은 8번 방은 예약하지 않고 당일 숙박을 요구하는 손님을 위한 예비방이었다. 그래피티 대신 아랍식 수공예로 만든 각종 자수 제품과 밝은 컬러의 담요, 식물, 왕골 가구가 근사했다. 침대에 놓인 환영 편지 하나에도 ‘지역적 특성’은 남달랐다. “이 지역은 늘 물 부족에 시달리니 혹시라도 샤워 중에 물 공급이 중단되어도 놀라지 말라”고 예고하고, “낙후된 건물이기에 화장실 변기에 휴지를 포함한 이물질을 넣으면 100% 막힐 수 있다”고 경고하며, “신문을 읽고 싶다면 3일 전에 리셉션 데스크에 말해주면 최대한 공수해보겠다”고 안내한다. 이스라엘이 지역의 지하수 관정을 관리하고 있고, 각종 규제로 대대적인 공사를 감행할 수 없어 건물이 노후화됐으며, 이스라엘 정부의 검문 정책에 따라 언제라도 이동이 제한될 수 있음을 의도적으로 부각시키는 뼈 있는 유머다. 동시에 새삼스레 글로 적는, 이들에게는 익숙한 일상일 것이다.
로비로 내려가 렌틸 수프와 플랫 브레드로 늦은 점심식사를 한 뒤, 왁스로 만든 실물 크기의 영국 수상 아서 밸푸어(Arthur Balfour)를 만났다. 밸푸어가 앉아 서한에 서명을 하는 책상으로 시작되는 1층 박물관에서 꽤 오랜 시간을 머물렀다. 1917년 유대인에게 팔레스타인 땅을 약속한 ‘밸푸어 선언’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의 시발점이 되었다. 월드오프 호텔이 2017년 문을 연 것도 밸푸어 선언 100주년을 겨냥한 것이었다.(1차 세계대전 중이던 1917년 영국의 외상 아서 밸푸어는 유대인들이 영국의 전쟁 수행을 지원한다면 팔레스타인 지역에 유대인 국가 건설을 지원하겠다고, 유대인을 움직이던 유대인 재벌 로스차일드에게 보냈다. 밸푸어 선언 당시 8만 명 수준이던 유대 인구는 2차 대전 직후 50만 명으로 불어나 1948년 이스라엘 건국으로 이어졌다.)
호텔 내 박물관은 다양한 측면에서 장벽의 역사를 기록한다. “이스라엘 정부가 프로젝트를 맡기면서 제게 당부했던 것은 최대한 많은 이스라엘인들을 안쪽에 모으고 가능한 한 많은 팔레스타인들을 바깥으로 내몰라는 것이었어요.” 분리장벽 설계 건축가 대니 티르자(Danny Tirza)의 회고로 시작되는 전시는 장벽이 팔레스타인에게 행사한 무력감을 기록했다. 분리장벽을 통과하는 검문소에서 줄을 서다 아이를 낳은 산모, 매일 아침 이스라엘로 출근하기 위해 새벽 3시 30분에 일어나는 아버지, 이스라엘 군인에게 능욕 당하는 모습을 어린 자식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아 도시 바깥으로 이동하거나 여행을 스스로 포기해버리는 가족들의 이야기는 끊이지 않는다.
일상 속에서 점령을 맞닥뜨리는 현실에서, 뱅크시는 종종 예술로 비극을 미화하는 게 아니냐는 비판도 받는다. 이에 대한 답은 뱅크시가 2015년 가자 지구에 ‘잠입’해 피 같은 빨간색으로 벽화에 새긴 문장이 대신해주는 듯하다. “힘이 있는 자와 없는 자의 갈등에서 손을 뗀다는 것은 곧 힘 있는 자 옆에 서겠다는 의미다. 중립이라는 것은 없다.” 가자 지구에서는 2014년 여름부터 팔레스타인 무장 정부 하마스에 대항하는 이스라엘의 군사 작전이 감행되어 50일간 2천 명이 넘는 민간인이 죽었다. 이러한 끔찍한 비극은 생각보다 너무나 쉽게 잊혀졌다. 1년 후 가자를 다시 찾아간 뱅크시가 저 글귀를 자신의 공식 계정에 올리기 전까지는 말이다.
떠나는 날 아침, 햇살이 비추지 않는다는 것을 핑계로 조식도 거르고 늘어지게 늦잠을 잤다. 하루 중 이 방에 햇살이 들어오는 시간은 겨우 25분 내외다. 창문 블라인드를 활짝 걷고 코앞의 장벽을 쳐다봤다. 저스틴 비버가 팔뚝에 문신을 한 걸로 유명한 뱅크시의 ‘풍선을 든 소녀’의 아류작들이 여기저기 보이고, 이스라엘 군인의 뺨을 때려 수감된 것을 계기로 새로운 저항의 아이콘으로 떠오른 18세 소녀 아헤드 타미미의 초대형 초상화 속 녹색 눈동자가 반짝인다. 장벽과 연결된 이스라엘 군사 감시탑을 끌어안고 키스를 퍼붓는 도널드 트럼프의 풍자화에 피식 웃고 각종 언어로 적힌 반전 메시지를 하나하나 눈에 담았다. 그때, 호텔 앞에 이스라엘의 유대인 청년들 한 무리가 관광버스에서 내렸다. “월드오프 호텔은 결코 ‘안티-이스라엘’이 아니라 ‘안티-점령’ ‘안티-부정의’ ‘안티-아파르트헤이트(차별 정책)’”라고 재차 강조하던 지배인 위삼의 말이 떠올랐다. “잠시나마 한 지붕을 공유하면 서로에 대한 전쟁을 조금 덜 지지하지 않을까요?” 하며 웃던 그의 모습도. 월드오프 호텔이 자신들의 미션이라고 말하는, 엘리너 루스벨트의 인용구를 나도 벽에 남기고 올까 잠시 고민하다가 말았다. “예술은 불안한 자들을 편안하게 하고, 편안한 자들을 불안하게 해야 한다(Art should comfort the disturbed and disturb the comfortab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