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선한 가을 바람을 만끽하는 것도 잠시, 머지않아 다가올 추위에 대비해 옷장 속을 점검하는 부지런함이 필요한 때다. 더욱이 올겨울은 끔찍했던 더위의 반작용으로 매서운 추위가 불어닥칠 거라 예고되었으니! 바꿔 말해 우아하고 아름다운(추위에 몹시도 취약한) 코트들을 마음껏 입을 수 있는 날이 무척이나 짧을 거란 얘기다. 바야흐로 코트의 계절을 맞아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바로 코트 트렌드를 숙지하는 것. 2018 F/W 시즌의 주요 컬렉션을 주의 깊게 본 이들이라면 크게 두 가지 키워드로 나뉜 코트 트렌드를 감지했을 터. 그 첫 번째가 발렌시아가, 캘빈 클라인, 펜디를 필두로 한 변형된 클래식 피스, 두 번째로 발렌티노, 버버리, 디올 쇼에서 만나볼 수 있었던 스테이트먼트 피스가 올 시즌 주목해야 할 코트 트렌드로 떠올랐다.
Twisted classic
먼저 체스터필드나 폴로, 리퍼, 더플코트와 같은 클래식 코트를 동시대적으로 재해석한, 변형된 클래식 버전의 코트들을 살펴보자. 신선함을 주입한 일등공신은 바로 실루엣의 변화. 대표적인 컬렉션은 발렌시아가다. 뎀나 바잘리아는 크리스토벌 발렌시아가의 조각 같은 실루엣에서 영감을 받아 3-D 스캐닝 기술을 접목해 ‘바스크(Basque)’라는 이름의 코트를 선보이며 눈길을 끌었다. 그런가 하면 라프 시몬스는 마치 아버지의 옷장 속 코트를 꺼내 입은 듯한 빈티지한 오버사이즈 체크 코트에 시어한 소재의 드레스, 방열 장갑, 발라클라바를 매치한 미래지향적인 룩으로 신선한 하이브리드 코트 스타일링 법을 제시했다. 이 밖에도 니나리치 쇼에서 깊은 인상을 남긴 큼직한 더플 장식 코트, “강인한 여성을 위한 로맨틱 유니폼”을 선보인 펜디의 PVC 코팅 글렌체크 코트 등, 소재와 디테일로 클래식에 변신을 꾀한 코트들이 등장했다.
statement
한편 화려함과 대담함을 특징으로 하는 스테이트먼트 피스는 주얼리를 넘어 레디투웨어 영역에서도 존재감을 드러내는 중. 특히 컬러풀한 색상, 현란한 프린트, 유니크한 디테일로 맥시멀리스트를 유혹하는 스테이트먼트 코트의 활약이 눈부시다. 지난해와 달라진 점이 있다면 발렌티노, 디올, 보테가 베네타와 같이 여성의 우아미에 몰두해온 하우스들이 주목할 만한 스테이트먼트 코트를 선보였다는 것. 덕분에 우린 보다 다채로운 코트를 만나볼 수 있게 되었다. 그중 가장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피스는 디자이너의 영감이 고스란히 담긴 스테이트먼트 코트. 자신의 낭만주의를 ‘꽃’에 투영한 발렌티노의 피에르파올로 피치올리는 마치 탐스러운 꽃송이를 연상케 하는 후디가 특징인 컬러풀한 코트를 선보였고, 밤의 도시 풍경에서 영감을 받은 미우치아 프라다는 남성적인 실루엣의 코트에 네온사인, 헤드라이트 불빛을 디지털 프린팅해 인상적인 결과물을 완성해냈다. “딱 15살의 제 모습일 거예요.” 동심이 담긴 장난스러운 모티프가 화려하게 장식된 핑크색 양털 코트를 자신의 마지막 컬렉션에 추가한 크리스토퍼 베일리의 버버리도 빼놓을 수 없는 대표적인 예. 스테이트먼트 피스의 축제라 해도 무방한 구찌 쇼에는 이번 시즌에도 어김없이 다양한 스테이트먼트 코트가 쏟아져 나왔고, 메이저리그 야구 유니폼부터 스코틀랜드 민속 의상까지 과거와 미래를 넘나든 ‘미켈레식’ 하이브리드는 이번 시즌에도 가장 유니크하고도 어글리한 피스를 양산해내며 트렌드의 중심에 서는 데 성공했다.
이렇게 서로 다른 두 가지 코트 스타일에도 닮은 점은 존재한다. 둘 다 미니멀함, 혹은 평범함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 또 디자이너들의 위트가 담겨 있다는 것. 마지막으로 오버사이즈 실루엣이라는 것.(특히 오버사이즈는 올 시즌 코트 트렌드의 가장 주요한 키워드임을 기억하라.) 이러한 특징들은 겨울 아우터가 갖춰야 할 미덕인 실용성과는 분명 괴리감이 있다. 그러나 눈 깜짝할 새 지나가버리는 코트의 계절을 아쉽게 떠나 보내고 싶지 않다면, 그 찰나의 순간을 마음껏 즐기고 싶다면 코트 스타일에 변신은 필수일 것이다. 변형된 클래식 피스든 화려한 스테이트먼트 피스든 올겨울 패션계는 우리에게 “신선함을 갈망하라”고 이야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