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타그램 세대가 해리 누리에프에 열광하는 이유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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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그램 세대가 해리 누리에프에 열광하는 이유

인스타그램이 가장 사랑하는 공간 디자이너, 해리 누리에프(Harry Nuriev)가 말했다. “갤러리에 가거나 카페에서 비싼 디저트를 주문하는 많은 이들의 목적은 단 하나. 사진을 찍어 소셜미디어에 올리기 위해서죠.”

BAZAAR BY BAZAAR 2018.10.10

모스크바에 위치한 해리의 오피스.

해리의 다이닝룸. 고객이 버린 그림을 가져다 걸었다.

공간 디자인에 관심이 많고, 인스타그램 속 관련 계정을 눈여겨보는 사람이라면 자주 보이는 요소들을 이미 간파했을 것이다. 황동 소재, 공간 곳곳에 산재한 아치 형태, 선큰(Sunken)거실과 테두리로 장식된 의자들이 주를 이루던 1970~80년대 무드까지. 건축가 에토레 소트사스와 멤피스 그룹이 반복적으로 거론되고, 형광에 가까운 컬러와 만화적인 모양들이 현대적으로 해석되고 있다. 유려한 곡선과 파스텔 컬러로 한층 말랑말랑해진, 바야흐로 ‘글로벌 미니멀리즘’의 시대다. 전후(戰後)의 스칸디나비안 디자인,  1980년대의 포스트모더니즘, 일본 디자인 속 덜어냄의 미학, 바우하우스와 신조형주의의 아이디어까지 뒤죽박죽된 스타일이 세계 곳곳에 출현하고 있다. 집과 사무실, 호텔과 카페, 파리와 도쿄, 서울과 바르셀로나를 막론하고 말이다. 이 미감은 소셜미디어뿐 아니라 현실 세계까지 장악하며 우리 일상의 디자인을 균질화하고 있다.

옵아트로 위트를 더한 그의 침실.

작업 흔적이 역력한 그의 책상.

그는 거실의 이 공간을 ‘작은 도서관’이라 부른다.

러시아 출신 건축가, 서른네 살의 해리 누리에프(Harry Nuriev)는 공간 디자인에 있어서 ‘글로벌 미니멀리즘’의 장인이다. 브루클린의 바워(Bower), 밀라노의 스튜디오페페(Studiopepe), L.A의 에세트라.에테라(Etc.etera) 등이 그와 같은 결을 가진 스튜디오/작가다. 해리는 매끈하게 가공한 황동에 조각 난 세라믹, 마감 처리하지 않은 천장과 같은 거친 재료를 믹스 매치한다. 자연스러운 아치 형태가 주를 이룬다. 그리고는 ‘밀레니얼 핑크’ 같은 비범한 컬러로 의자부터 화장실 벽까지 모두 칠한다.

오프닝 세리머니와 협업한 가구 디자인.

해리가디자인한 주얼리 스토어 일부.

해리가 디자인한 요가 하우스 일부.

인스타그램 세대는 왜 해리의 공간에 열광할까. 다음은 모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해리가 한 말이다. “인정하자, 사람들이 갤러리에 가거나 카페에서 비싼 디저트를 주문하는 목적은 대부분 사진을 찍기 위해서다. 문제는, 인스타그램에 끊임없이 올라오는 인테리어 대부분이 렌즈에 담길 모습을 염두에 두고 구성된 공간이기에 결코 살아 숨 쉬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랜 시간 공간과 사람이 함께해야만 보여지는 유기적인 일관성이 전혀 없다.” 해리의 공간이 소셜미디어에서 뜨거운 반응을 받을 만큼 아름답다는 덴 이견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촬영을 위해 인위적으로 공간을 기획하지 않는다. 공간을 꾸미는 그의 의도는 많은 경우 과거의 기억과 추억에 기인한다. 그의 뉴욕 집 식탁 위에 오렌지톤의 회화가 걸려 있다. 자연을 묘사한 그림엔 러시아 전제군주 시절이 떠오르는 우울함이 묻어 있다. 러시아 어느 사무실이나 대학교에 가도 찾아볼 수 있는 정서의 그림이다. 고객이 내다 버린 이 그림을 해리는 집으로 가져왔다. 그의 공간엔 사람의 기억과 흔적, 불완전한 아늑함이 녹아 있다. 추억과 향수를 원료 삼아 공간을 메워나간다. 소셜미디어에서 호응한다는 것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이 ‘공감’ 하고 있다는 뜻이다. 많은 이들이 가까운 미래에 그런 공간 속에서 살고 싶어한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노스탤지어와 퓨처리즘의 공존’. 인스타그램 속 예쁘게 가공된 공간과 그의 공간이 구분되는 지점이다.

같은 분야에 몸담은 사람들을 우러러보지 말라. 자기 가슴이 하는 말에 귀기울여라. 본인 인생을 사는 거다. 어떤 교육을 받았든, 가족이 누구건, 아직 못 가본 나라가 많든, 이미 당신은 스스로 대답을 가지고 있다.

해리의 포트레이트.

‘인스타그램이 가장 사랑하는 공간 디자이너’로 불리고 있다. 동의하나? 본인에게 인스타그램이란 뭔가?

내 직원들과 나는 매일을 정말 바쁘게 산다. 우리의 디자인을 최대한 인간 친화적으로 기억에 남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래서 나는 ‘인스타그램이 사랑하는 디자이너’라는 타이틀이 아주 터무니없진 않다고 본다. 인스타그램은 나의 좋은 습관이자 나쁜 습관이다. 근데 진지하게, 나는 인스타그램을 통해서 일을 한다. 인스타그램 없인 살 수 없다. 인스타그램은 나의 모든 것을 분 단위로 공유할 수 있는 플랫폼이다. 내 작품에 생기를 부여하는 아이디어의 원천이기도 하다. 인스타그램 계정을 통해 내 영감을 공개할 뿐 아니라 곧 탄생할 작품의 형태와 컬러에 대한 힌트를 공유하기도 한다. 따라서 인스타그램은 내 작업 과정의 중대한 일부다. 어쩌면 결과물보다 더 재미있는!

공간을 디자인할 때, 본인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키워드를 세 가지만 꼽아달라.

그 공간을 어떤 모습으로 ‘소유’할 것인지, 그 공간에 담긴 ‘영혼’, 그리고 현재 내 ‘기분’.

모국인 러시아에서 건축을 공부했다. 그곳에서의 배경과 경험이 세계 곳곳에서 커리어를 쌓을 때 도움이 됐나?

백퍼센트 그렇다. 운좋게도 러시아에서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나의 문화권에서만 습득할 수 있는 무언가가 나에겐 있다. 모국에서의 모든 경험이 어우러져 나만의 독특한 삶의 모습, 내가 매일을 아름답게 바꾸는 방식 등을 정립할 수 있었다. 난 이것을 ‘나의 현실(My Reality)’이라고 부른다.

가장 존경하는 건축가 또는 인테리어 디자이너에 대해서 말해달라.

누군가를 ‘존경(Admire)한다’는 표현이 내키지 않는다. 짚고 가야 하는 건, 나는 공간을 만들지만 인테리어 디자이너나 건축가들을 뮤즈로 삼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내 주된 영감의 원천은 나의 유년 시절 기억과 패션이다. 요즘엔 발렌시아가에서 뎀나 바잘리아가 벌이는 일들을 아주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다.

존 갈리아노로부터 큰 영감을 받았다고 들었다.

갈리아노는 뛰어난 컬러 감각을 가졌다. 그리고 나만큼 미쳐 있다.

왜 황동 같은 메탈 소재를 즐겨 쓰나?

남자애들은 금속을 좋아하지 않나.(웃음) 글쎄, 메탈은 360도 모두 다른 면모를 가진 소재다. 마치 나 같다.

이런 말을 했다. “어떤 컬러에 이끌린다는 것은, 사람들이 관계를 맺는 것과 비슷하다. 그 사이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전혀 예측할 수 없다.” 최근에 교감한 컬러는 뭔가?

얼마 전에 퍼플에 푹 빠졌었다. 근데 퍼플과의 관계는 쉽지 않았다. 서로의 공간을 공유하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걸 퍼플과 나는 잘 알고 있었다. 요즘엔 딥 옐로와 빛바랜 오렌지를 사랑하게 됐다. 이유는 모르겠다.

한국의 클라이언트와도 합을 맞춰본 적이 있나?

없다. 그러나 그럴 기회가 있다면 정말 좋을 것 같다. 한국의 팬이다. 오프닝 세리머니와의 협업처럼, 나만의 언어와 스타일로 서울 시내의 호텔을 디자인해보고 싶다.

자기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하면 세상에 하나뿐인 작업을 하게 될거란 충고가 인상 깊다. 어떻게 깨달은 사실인가?

같은 분야에 몸담은 사람들을 우러러보지 말라. 자기 가슴이 하는 말에 귀 기울여라. 본인 인생을 사는 거다. 어떤 교육을 받았든, 가족이 누구건, 아직 못 가본 나라가 많든, 이미 당신은 스스로 대답을 가지고 있다. 때론 휘트니 뮤지엄을 꼼꼼히 훑어보는 것보다, 우리 할머니가 간직하던 작은 찻잔을 들여다보는 게 훨씬 큰 영감이 될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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