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와 가짜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Art&Culture

진짜와 가짜

현대미술계의 시끄러운 소음과 중요한 담론을 동시에 만들어온 아티스트 마우리치오 카텔란이 다시 한 번 의미심장한 질문을 던진다. 당신이 생각하는 진짜와 가짜는 무엇인가?

BAZAAR BY BAZAAR 2018.10.08

마우리치오 카텔란이 손대면 시끄러워진다. 이 명제는 틀린 적이 없다. 그것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말이다. 카텔란이 1989년도부터 벌인 악동 짓을 모두 열거하자면 6페이지 분량의 기사로도 모자랄 것이다. 무릎 꿇은 히틀러, 관 속에 누운 케네디, 운석에 맞은 교황 등 카텔란의 작품들은 언제나 격한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2011년에는 은퇴 선언을 하기도 했지만, 카텔란이 영원히 조용히 있을 거라고 믿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는 화려한 스포트라이트의 중심에 있는 것이 가장 잘 어울리는 남자이기 때문이다. 역시나 미술계로 돌아온 카텔란은 구겐하임 미술관에 ‘황금 변기’를 설치하였고, 그의 변기에 한번 앉아보려는 사람들이 길고 긴 행렬을 이뤘다.

얼마 전 카텔란과 구찌가 함께한 아트 프로젝트 ‘아티스트는현존한다(The Artist is Present)’의 티저 영상이 공개됐다. 젊은 아티스트들과 함께 상하이 곳곳을 배회하고 있는 카텔란의 모습이 영상에 담겼다. 진품보다 인기 있는 복제품들이 판치는 상하이에서, 카텔란은 진짜와 가짜의 개념을 탐구하고 있었다. 그가 내세운 아젠다가 마리나아브라모비치의유명한행위예술인 ‘아티스트는현존한다(The Artist is Present)’임이 흥미롭다. 공유와 확산에 유리한 복제품이 원본의 가치를 뛰어넘는 시대에, 진짜와 가짜는 무엇일까? 창작이라는 개념은 어떻게 재정의되어야 하는가? 예술가의 존재의 이유가 아직도 남아 있는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들과 함께, 카텔란이 다시 한 번 돌아왔다.

어떤 소설가들은 소설을 쓰지 않는 시기에 다른 근육을 쓰기 위해서 번역을 하기도 한다. 당신에게는 패션 브랜드와 함께한 아트 프로젝트가 뇌의 근육을 달리 쓰는 일이었을 수도 있겠다. 나는 패션, 광고, 잡지 이미지처럼 서로 다른 영역들이 겹치는 지점에 흥미를 느낀다. 어려운 문제가 있을 때, 해당 분야에 직접 몸담지 않은 사람들이 신선한 해결책을 내놓는다는 것은 이미 입증된 사실이다. 앞으로는 패션계나 광고계 사람들의 힘으로 현대미술계가 새로워지고, 또 그 반대도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알레산드로 미켈레와는 어떤 시너지가 있었나? 우리는 출신 성분과 창작 방식이 전혀 다르다. 패션의 이중적 특성이 흥미롭게 다가왔다. 패션은 생산 과정에 수많은 사람들이 개입하는, 굉장히 선진적인 산업인 동시에 경제적인 체계가 존재하는 분야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한 사람이 굉장히 중요하다. 디렉터는 본능에 따라 빠르게 결정을 내려야 하고, 모든 사람이 그 결정에 따라 움직인다. 내가 일하는 방식은 이와 정반대다. 나는 내 영감에 기대어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에게 구속되고 싶지 않아서 스튜디오를 차리지 않는 원칙을 고수해왔다. 미켈레와 나는 두 가지 창작 방식 사이에 존재하는 공통분모에 흥미를 느꼈다. 인간은 정반대의 존재에 끌린다는 말이 사실이었다. 우리의 합작은 효과적이었다!

상하이 에서 펼쳐진 'The Artist is Present' 프로젝트의 티저 영상.

이번 프로젝트 ‘The Artist is Present’를 위해 40여 명의 아티스트들을 초대했다. 각기 다른 작업을 하는 아티스트 사이를 잇는 맥락이 있다면 무엇인가? 서로 다른 매체를 가지고 작업하지만, 공통적으로 예술 분야에서의 ‘차용’에 대한 호기심이 있는 이들이었다. 단체전에서는 참여한 예술가들의 평소 작품보다는 해당 전시에서 선보이는 작품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좋은 전시는 마치 좋은 커피와 같아서, 설명할 수 없는 여러 요소가 조합되어 만들어진다. 익숙한 향을 맡는 것과 같다. 맡아본 적 있는 냄새지만, 그 향을 만들어내는 것이 무엇인지 또는 언제 그 향을 맡았었는지 꼬집어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개별 작품의 스타일은 중요하지 않다고 본다. 모든 요소가 어우러진 전체를 경험할 때만 어떤 ‘판단’을 내릴 수 있다.

오리지낼리티의 의미를 탐구하는 이 프로젝트를 복제와 모방의 왕국인 중국의 상하이에서 진행했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상하이라는 도시는 당신에게 어떤 영감을 주었나? 상하이는 내 생각과는 전혀 다른 곳이었다. 특히 복제 개념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윤회’라는 개념에 끌렸다. 나는 사유 재산과 저작권의 힘이 점점 약해지고, 그 대신 공유의 힘을 바탕에 둔 삶의 개념을 지지하는 세계에서 자랐다. 생각, 이미지, 집을 비롯해 훨씬 많은 것을 공유하는 세계에서 복제의 효용을 아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고대의 윤회와 굉장히 비슷한 발상이다. 우리는 중국에 대한 오랜 고정관념을 활용해 현대미술계에서 가장 신성시되는 원칙인 ‘독창성, 의도, 표현’에 의문을 던지고 싶었다. 모조 행위에 대한 구시대적 개념을 탈피하고, 복제라는 행위를 우리가 현대사회를 마주하기 위해 꼭 필요한 도구라고 규정하며, 시각적, 미적으로만 만족하는 것보다 작품의 발상에 공감하는 작품 감상의 개념을 제시하고자 했다.

※ 마우리치오 카텔란과 구찌가 함께하는 전시 는 10월 11일부터 12월 16일까지 상하이의 유즈 뮤지엄에서 열린다. 

전시의 타이틀인 ‘아티스트는 현존한다’는 일종의 아젠다처럼 들린다. 복제의 시대에 예술의 오리지낼리티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나는 독창성을 아예 믿지 않는다. 누구나 마음 깊은 곳에서는 자신이 특별하다고 생각하지만, 더 깊이 들어가면 결국 자신도 다른 이들과 똑같다는 것을 알고 있다. 독창성은 과대평가된 개념이고, 이제는 한물갔다. 독창성을 왜 추구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저작권의 경계가 모호해진 상황에서 아티스트가 ‘소유’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단연코, 사람들의 마음이다.

이 프로젝트를 전개하며 가짜와 진짜에 대해 새롭게 정의 내린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가? 현실은 환상 그 자체다. 우리가 무엇을 경험하든 기억은 왜곡될 것이며, 그때그때 느끼는 감정도 달라진다. 그렇기 때문에, 결국 우리가 마음속에 품은 심상은 실제와 아무 관련 없이, 예상과 전혀 다르게 끊임없이 다른 모습으로 바뀌어갈 것이다. 그러니 무엇이 진짜고, 무엇이 원조라고 어떻게 단정할 수 있겠는가?

미래의 예술은 어떤 형태일 것 같나? 사람들은 언제나 미래를 두려워한다. 그러나 미래는 언제나 재앙이었다. 현재가 재앙인 것처럼. 나는 미래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미래는 지금 여기에 있다. 르네상스 시대를 생각해보자. 많은 예술가들이 새로운 사회를 상상하는 동시에 새로운 삶의 방식대로 살아가지 않았나. 나 역시 현재가 곧 미래라고 생각한다.

요즘의 당신은 새로운 형태의 예술을 탐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당신의 최근 작품들 중 몇몇은 엉덩이로 촉감을 느끼거나(‘America’), 몸에 걸쳐볼 수도 있다(‘Made in Cattelan’). 당신이 지금 하고 있는 실험은 무엇인가? ‘Made in Catteland’는 엄밀히 말하면 예술 활동이 아니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예술작품의 경계를 넘어서기 위해, 예술의 결실이 담긴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서 관객에게 닿을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는 프로젝트였다. 내가 보기에, 창작과 충격은 불가분의 관계다. 큰 충격을 만들수록 작품의 영향력이 커진다. 그런데 작품에 대한 입소문을 내는 능력은 사실상 초능력과 비슷한 느낌이다.

그렇다면 당신은 초능력을 가진 셈이다. 카텔란이라는 아티스트는 이제 너무나도 유명해져버렸다. 유명세의 좋은 점과 싫은 점은 무엇인가? 나는 2011년부터 죽은 척을 하면 무슨 일이 생기는지 알아보려고 조용히 지내왔다. 그러나 마치 에드거 앨런 포의 소설처럼 나는 여전히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고 들을 수 있었다. 카텔란이 부재한 상태에서 카텔란의 작품들이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내 작품에 드리운 ‘악동’ 캐릭터를 없애는 시간이기도 했다. 나 자신에 대한 모든 소문이 잠잠해지고 나면, 관객들이 지금까지 분석되지 않은 작품의 면면을 깊게 들여다볼 수 있는 고요한 시간이 만들어질 거라고 믿는다.

당신은 지난 <바자> 코리아와의 인터뷰에서, “시각예술뿐만 아니라 모든 좋은 창작물은 그저 작가의 삶이 남긴 흔적이 아닐까 싶다. 만약 당신의 삶이 불타고 있다면 당신의 작품은 재가 될 것이다. 당신이 떠난 후에도 남아 있을 것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지금 스스로의 삶은 만족스러운가? 아침에 자리에서 일어나고, 밤에 잠을 자고, 깨어 있는 동안 하고 싶은 일을 하면 성공한 인생이라고 흔히들 생각한다. 내게 있어 만족이란 실패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나는 계속 발전하고 싶다. 발전은 만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절박함 속에서만 이루어진다. 나는 발상을 바꾸고,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실패할 때 가장 즐겁다.

하지만 실패를 통한 성장에는 고통이 필연적으로 따라온다. 당신은 고통에 강한 편인가? 삶에 대한 나의 태도를 이해시켜주는 문장이 딱 하나 있다. 러시아 속담이다. “고통 없이 잠에서 깨어난다면, 그건 죽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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