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TV를 틀면 전현무 씨가 안 나오는 프로그램이 없어요. 카메라를 보면서 살고 있다고 해야 하나. 사람을 보는 시간보다 카메라를 마주하는 시간이 더 많아요. 월요일은 <나 혼자 산다>, 화요일은 <히든 싱어>, 수요일은 <수요미식회>, 격주로 <프리한19>, 목요일은 <문제적 남자>, 금요일은 <전지적 참견 시점>, 토요일은 <해피투게더>, 일요일은 <뜻밖의 Q>. 수요일에 격주로 촬영할 때 잠깐 쉬고 거의 매일을 녹화하고 있어요. 매너리즘이 오지는 않아요?
오죠. 그래서 이렇게라도 억지로 시간을 내서 여행을 오는 게 필요해요. 화보 촬영은 힘들지만 말은 안 해도 되고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되니까. 녹화에 대한 부담감도 없고 머리를 쉴 수 있는 시간이죠. 방송 녹화는 6시간 이상 집중해야 하니 체력적으로도 힘들어요.
하루 일과는 어떤가요?
아침 9시에 일어나서 스케줄 소화하고 집에 오면 밤 11시~12시 정도 돼요. 하루에 촬영이 두 개가 있을 수도 있고 겹치면 세 개까지 촬영하기도 하죠. 그렇게 지쳐서 집에 와서 잠만 자고 다시 일어나서 일하러 가요. 가끔 마사지 받는 거 외에는 제 시간이 거의 없어요.
정말 빡빡하게 살고 있군요.
맞아요. 물론 대중들에게 사랑을 받고 방송을 많이 하는 건 좋은데, 내 인생이 없다는 생각이 들 땐 공허해요. 여행을 정말 좋아하는데, 거의 못하죠.
여행이 왜 좋아요?
서울에서는 갈 곳이 한정적이고 그나마 해외로 나오면 사람들이 덜 알아봐요. 쉬려고 여행을 가는 건데 일일이 응대하고 사진 찍어드리고 사람들 시선을 신경 써야 한다면 또 힘들어요. 물론 감사한 일이죠. 그런데 사인을 한 분 해드리면 또 다른 분도 해드려야 하고, 식당에서 식사를 마치고 30분 동안 잡혀서 못 나온 적도 있었어요. 그게 싫다는 게 아니에요. 하지만 가끔은 아무것도 안 하고 싶을 때가 있잖아요. 그래서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 사람들이 그나마 덜 알아보는 곳에서 푹 쉬는 게 힐링이 돼요.
전현무 씨의 여행 스타일은 어때요?
오로지 휴양. 액티비티나 사서 고생하는 건 절대 안 해요. 마사지 받고 누워서 잠들었다가 일어나서 맛있는 거 먹는 게 최고예요. 여행 가면 아무 말도 안 해요. 계획도 없이 그냥 무작정 떠날 때가 많아요. 계획을 짜는 것도 일처럼 느껴져서 그냥 현지에서 부딪히죠. 저는 현지인들이 많이 가는 식당과 장소를 좋아해요.
방송으로도 해외 촬영을 많이 가잖아요.
해외 촬영은 여행이 아니라 일이죠. 국내에서 지방으로 촬영하러 가는 것과 다를 게 없어요. 만나는 건 외국인이지만 그와 나눠야 할 대화는 정해져 있고 그 안에서 무언가 방송 분량을 뽑아야 해요. 그야말로 ‘현지’를 즐길 여유가 없죠. 장소와 사람만 외국인 거죠. 내가 하고 싶은 건 못하고, 제작진이 원하는 걸 해줘야 하고요.
싱가포르는 몇 번째 왔어요?
벌써 네 번째예요. 동남아에서 제일 많이 왔어요. 친구랑도 오고 가족들과도 오고 이렇게 촬영하러도 오고. 여긴 혼자 오기도 좋아요. 도시가 크지 않아서 둘러보기 좋고, 미식가의 나라잖아요. 쇼핑하고 맛있는 거 먹기에도 좋죠. 쾌적하고 교통체증도 없고요. 그냥 우리나라의 지방에 가듯이 부담 없어요.
비행 시간이 오래 걸리지는 않던가요?
5시간 30분 정도 걸리는데 밤에 인천공항을 출발해서 도착하면 아침이에요. 비행기에서 자고 다음 날부터 관광하면 시간이 딱 맞더라고요. 체력 분배만 잘 하면 시간 낭비를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어요.
싱가포르와는 어떤 인연이 있어서 이렇게 자주 오는 거죠?
오래전부터 싱가포르라는 나라에 매력을 느끼고 있었어요. 옛날에는 아시아의 네 마리 용 중에 하나로 불렸고 묘하게 한국과 비슷한 나라라서 동질감도 있었어요. <비정상회담> 때 싱가포르 친구가 나왔었는데 그 친구 덕분에 더 매료됐죠. 다인종, 다문화가 공존하는 곳. 차별 없는 나라. 우스갯소리로 결혼해서 싱가포르에서 아이를 낳고 싶다고 할 정도로 교육 환경이나 문화, 경제 수준이 높고 영어를 배우기에도 좋은 곳이에요. 그러던 중 싱가포르 관광청에서 홍보대사를 해볼 생각이 없겠냐고 연락이 와서 고민하지 않고 수락했죠.
싱가포르에서 기억에 남는 장소가 있다면?
연인과 오기에는 센토사 섬이 좋아요. 조용해요. 그리고 그렇게 투명하고 깨끗한 해변을 본 적이 없어요. 팔라완 비치는 호젓하게 시간을 보내기엔 최적의 장소죠. 친구들과 놀러온다면 마리나 베이 샌즈에서 머무르기를 추천해요. 수영하고 쇼핑하고 밤에는 레이저 쇼를 보고 유람선을 타거나 강변 따라 구경할 것도 많고요. 싱가포르는 오래 머무르기보다는 짧고 굵고 알차게 보내기 좋은 도시예요.
여행을 좋아하는 이유가 뭔가요? 충전이죠. 머리를 쉬어야 다음에 또 일할 기운이 생기거든요. 사람 많고 지저분하면 오히려 여행 갔다가 스트레스를 받을 때도 있어요. 두뇌도 멍하게 아무것도 안 할 시간이 필요하더라고요. 제 여행의 목적은 간단해요. ‘가서 양껏 먹고 쉬다 오기’ 이게 전부예요.
전현무만의 여행 방법이 있나요?
저는 로컬 음식점, 올드시티를 좋아해요. 이곳 차이나타운에 숨은 맛집이 많아요. 차이나타운 호커센터 2층에 있는 ‘홍콩 소야 소스 치킨 라이스 & 누들’이라는 곳은 길거리 음식점으로는 세계 최초로 미슐랭 1스타를 받았어요. 그런 숨은 맛집들을 찾아다니는 걸 좋아해요. 지난번에 왔을 때는 에어컨 안 되는 국숫집을 갔었어요. 그 맛을 잊을 수가 없는데 어딘지 기억이 안 나요. 검색을 해서 간 것도 아니고 우연히 지나가다가 들어간 곳이었거든요. 현지 음식을 선택하면 먹기 전에는 다소 불안하더라도 먹고 나면 후회가 없죠.
현지의 문화를 즐기시는군요.
음식을 가리지 않아요. 특히 동남아 음식이 입에 잘 맞아요. 고수도 잘 먹어요. 추가로 더 달라고 할 정도로 그 향을 좋아해요. 가끔은 음식을 시켰는데 입에 안 맞아서 절반 이상 남길 때도 있어요. 그래도 후회 안 해요. 그것도 경험이니까요. 굳이 여행 와서 프랜차이즈에 가는 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요. 현지의 다 무너져가는 카페나 향이 강한 음식이라도 호기심 때문에 들어가보는 편이에요. 싱가포르에서는 칠리크랩이 정말 맛있었어요. 싱가포르의 3대 칠리크랩 가게 중에 점보, 팜 비치 두 군데를 가봤고. 이번에 기회가 된다면 노사인 보드를 가보고 싶어요.
여행지에 가면 꼭 사는 게 있어요?
그 나라의 마그넷을 꼭 사요. 하나씩 모으는 재미가 있죠. 지난번 싱가포르에 왔을 때에는 머라이언 장난감이랑 센토사 섬의 원주민을 본떠서 만든 전통 인형을 샀어요.
오늘 화보 콘셉트가 ‘컬렉터’예요. 그래서 무언가를 수집하는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곳에서 촬영을 했어요. 전현무 씨도 평소 모으는 게 있어요?
저는 책에 관심이 많아요. 영문으로 되어 있더라도 현지에서만 구할 수 있는 책이 있거든요. 예를 들어 싱가포르의 페라나칸 음식, 전통 파이 만드는 법 등이 담긴 책은 다른 데서 못 구하잖아요. 오늘도 독립서점에서 싱가포르 음식 레시피에 관한 책을 살까 말까 고민하다가 결국 못 샀어요. 아쉬워요. 요식업에 관심 있는 건 아니지만 지난번에 태국에 갔을 때는 태국 원어로 된 태국 요리책을 샀어요. 일본에 갔을 때는 패션이 유명하니까 패션 관련된 서적을 구매했고요.
여행할 때는 좋지만 막상 돌아가서 일할 생각하면 괴롭지 않던가요?
물론 그렇죠. 그렇다고 우리가 차에 치일까 봐 밖에 안 나가는 건 아니잖아요. 여행은 늘 아쉬워요. 여행은 가기 전이 제일 즐겁고 마지막 날은 뭘해도 부족하죠.
늘 밝은 모습을 유지하는 것도 부담으로 작용할 것 같아요. 그래서 평소에는 말수가 별로 없다고 들었어요.
누구나 에너지의 총량이 있잖아요. 방송에 에너지를 쏟으면 거의 바닥 나요. 술 마시면서 떠들고 농담할 기운도 없어요. 그래서 방송이 끝나면 무작정 쉬고 싶고 말을 안 하게 되더라고요.
평소에 말수가 없는 것처럼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전현무에 대한 편견이 있을까요?
예전에는 남에게 상처 주는 걸 좋아하고 깐족대는 이미지가 있었어요. 지금은 많이 희석됐죠. 보통 하나의 예능 프로그램을 위해서 6시간을 넘게 촬영해요. 그중에 재미있는 것만 편집해서 방송에 나가죠. 하지만 제가 어떤 하나의 재미있는 멘트를 하기까지의 과정이나 그 사람을 배려하고 칭찬한 건 편집돼요. 어느새 제가 남을 깎아내리면서 웃음을 주는 사람이 되어 있더라고요. <나 혼자 산다>를 하면서 그런 게 많이 깨졌고 결정적으로 라디오 진행을 맡으면서 이미지가 많이 바뀌었어요. 그때 가장 많이 문자를 받았던 내용이 ‘제가 전현무 씨에 대해서 오해하고 있었네요’였어요. 2시간 동안 생방송으로 진행을 하다 보니 나름 진중한 모습도 있고 누군가의 말을 잘 들어주는 모습도 전파를 타면서 서서히 바뀌더라고요.
평소에 에너지를 충전하는 방법은 뭔가요?
마사지. 그리고 잠. 취미가 없다는 게 요즘 가장 큰 불만이에요. 뭔가 배우고 싶은데 시간이 없어요. 몸이 아프면 프로그램이 펑크 나니 아플 수도 없어요. 개인적으로 힘든 일이 있어도 웃어야 하고요.
요즘 관심사가 있다면 뭐예요?
패션, 옷에 관심이 많아요. 악기를 배우고 싶은데 쉽지 않네요. 남들이 안 하는 걸 좋아해서 중국의 전통 악기인 비파를 해보려고 구매했는데 1년이 지나도록 먼지만 쌓이고 있어요. 어쩌면 지금 음이 하나도 안 맞을지도 몰라요. 몸이 피곤하니까 내일 하자 하고 미룬 게 벌써 1년이 됐어요.
앞으로의 계획이나 올해의 목표가 있다면?
지금 하고 있는 프로그램들이 잘 되고 있어요. 작년에는 제가 대상을 받았지만 올해는 같이 출연하는 사람들이 그 상을 받았으면 좋겠어요. <나 혼자 산다>는 박나래, <전지적 참견 시점>은 이영자. 개인적으로 누구 한 명을 콕 집을 수 없을 정도로 잘하고 있고 소중한 동료들이에요. ‘대체 누가 상을 받아야 하지?’ 그 둘은 신경도 안 쓰는데 나 혼자 이렇게 고민하고 있어요.(웃음) 누가 받든 진심으로 축하해줄 마음의 준비도 되어 있고 저는 그냥 이 상황이 즐거워요.
2018년, 어땠어요? 다섯 글자로 표현한다면?
‘올해도 여전’. 올해도 여전히 바쁘게 보내고 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