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번 딕셔너리(Urban Dictionary)에서 ‘힙(Hip)’의 의미를 검색해보면 “쿨한 것보다 훨씬 쿨한 것. ‘그것(It)’의 정점. 트렌드와 전통적인 쿨하다는 의미를 완전히 뛰어넘는 차원의 것!”이란 다소 지나친 찬사가 나온다. 우리 모두 알다시피, 힙하다는 표현에는 빈정거림이 섞여 있다. 하지만 트래비스 스콧의 경우는 좀 다르다. 힙의 의미를 조금의 비아냥 없이 문자 그대로 적용시킬 수 있는 (현대의 몇 안 되는) 인간이 바로 그다. 특히 앨범 를 발매한 지난 8월 3일 이후부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일단 앨범 아트워크를 정말 아트피스로 만들었다는 점부터 그렇다.(요즘의 힙과 아트는 가장 돈독한 관계를 자랑하니까.) ‘아스트로월드’란 앨범명은 트래비스 스콧의 홈타운, 텍사스 휴스턴의 테마파크 이름을 따 온 것인데, 사진작가 데이비드 라샤펠이 낮과 밤을 주제로 두 가지 버전의 테마파크를 만들어낸 것이다. 트래비스 스콧의 음악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사이키델릭 사운드’를 초현실주의 사진작가 데이비드 라샤펠이 완벽하게 시각화했다. 이 커버는 지금 이 순간에도 SNS에서 수많은 팬 아트를 양산해내고 있으며 커버 속 트래비스 스콧의 얼굴을 본뜬 금색 모형은 실제 전 세계 곳곳에 설치돼 수많은 힙스터들의 인증 샷 장소로 애용되고 있다.
그리고 패션을 빼놓을 수 없다. 명실상부 트래비스 스콧은 에이셉 라키 이후로 가장 패셔너블한 뮤지션이다. 하지만 그가 진짜 힙한 건 그냥 단순히 옷을 잘 입는 것을 넘어서 그 탁월한 감각을 창작으로 연결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17년 헬무트 랭과 캡슐 컬렉션을 만든 바 있는 그는 최근 나이키와의 두 번째 협업인 에어 포스 1 ‘세일’ 스니커즈를 공개했고 굿즈로 디자이너 버질 아블로와 함께 티셔츠를 제작하기까지 했다. 패션과 힙합이라는 가장 힙한 두 분야에서도 정점에 서 있는 두 사람의 컬래버레이션, 게다가 수량은 총 5백 장뿐. 이 정도면 이 티셔츠가 당신의 취향이든 아니든, 일단 사두는 게 옳다. 물론 살 수 있다면 말이다.
패셔너블한 협업과 아티스틱한 커버도 물론 훌륭하지만, 트래비스 스콧이 로 정점에 올라선 결정적인 이유는 음악적 성취 때문이다. 마치 작정한 느낌이다. 앨범 크레딧만 쭉 훑어봐도 화려한 이름들이 난무한다. 스티비 원더, 테임 임팔라, 퍼렐, 프랭크 오션, 제임스 블레이크, 키드 커디, 드레이크…. 트래비스 스콧은 크레딧이 공개된 후 이런 트위트를 올렸다. “누가 이 모든 것(Shit)을 한 번에 모아놓을 수 있겠어? 내가 바로 그 접착제(Glue)야.” 잘난 척이지만, 충분히 그럴 만하다.
인지도와 파급력에 비해 차트 성적이 좋지 않다는 논란도 한 방에 잠재웠다. 발매 직후 빌보드 싱글 차트 100위권 내에 수록된 전곡을 진입시켜 일명 ‘차트 줄 세우기’에 성공했고 앨범 차트에서는 27만 장으로 드레이크의 을 끌어내리며 1위로 데뷔했다. 한편으로는 트래비스 스콧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오토튠’ 대신 실험적인 사운드적 시도나 다양한 악기의 사용 등이 더해져 “아티스트 병이 걸렸다”는 혹평도 듣고 있지만, 진정한 힙스터라면 누구나 약간의 ‘아티스트 병’ 정도는 가지고 있는 법 아닌가.
<피치포크>는 트래비스 스콧을 두고 “크리에이티브라는 단어를 직업의 필수 요소라 여기는 지금 세대들을 위한 화신(Avatar)”이라고 표현했다. 패셔너블하고 아티스틱한 래퍼, 온라인과 오프라인 힙합 신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남자. 여기에 하나를 더 하면 세상에 트래비스 스콧 이상의 힙스터는 존재할 수 없다는 게 확실해진다. 20대 억만장자로 <포브스> 매거진 커버를 장식한 여자친구, 카일리 제너 말이다. 어번 딕셔너리의 표현을 빌리면 트래비스 스콧은 이미 ‘힙’을 넘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