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코 카피탄은 메종 마르지엘라, 미우 미우, 멀버리, 나이키, 컨버스 등 하이엔드와 캐주얼을 불문하고 다양한 패션 하우스와 활발히 협업하며 존재를 알려왔다. 그리고 2017년 F/W 시즌, 구찌의 ‘영 아트 스타(Young Art Star)’로 발탁된다. ‘구찌’ 로고 위에 본인의 손글씨가 오버랩된 탱크톱, 스웨트셔츠, 스트링 백팩 등이 엄청난 호응을 얻으며 코코는 사실상 스타가 됐다. 런던에서 꽤 깊이 사진을 공부했고, <데이즈드> <보그> 등의 화보를 찍으며 포트폴리오를 공고히 했다. 올해 2월에는 국내 브랜드인 쿠론(Couronne)의 S/S 캠페인 ‘Come on Board’의 화보를 진행하며 화제가 되기도 했다. 현 구찌 디자이너 알레산드로 미켈레의 낭만주의적 감성, 색감 등과 결을 나란히 하는 코코의 사진 작업이 구찌라는 브랜드와 호흡하는 데 분명 한몫했을 터다. 아닌 게 아니라 미켈레의 전신 포트레이트에 금빛 후광 효과를 가미한 코코의 페인팅도 한쪽에 전시 중이다. 전적으로 미켈레의 안목과 선택에 의거한 구찌의 아티스트 협업 과정은 스타 아티스트를 발굴, 배출, 매니징하는 모종의 메커니즘이라 봐도 무방하다.
코코 스스로도 공공연히 긍정한 바 있듯, 미켈레 같은 인물과 구찌 같은 거대 자본 브랜드가 만나 21세기 메디치 가문을 구축한다는 걸 새삼 확인할 수 있다. 그렇잖아도 장발과 수염으로 예수님 행색을 한 미켈레가 코코의 그림 속에서 자못 위용스럽다. 코코는 스페인 세비야 근방 어느 시골마을에서 컸다. 어느 누구도 패션이나 트렌드를 언급하지 않는 곳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스무 살이 다 된 시점에 런던으로 건너와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그의 성장과정 속 다단한 감정들을 엿볼 수 있는 글귀가 150여 점에 이르는 사진, 회화, 설치, 영상 등 다양한 형태의 작품 속에 녹아 있다. 짧은 문장으로 이루어진 코코의 핸드라이팅이 전하는 메시지는 많은 경우 촌철살인이다. 틈만 나면 책을 읽는 그의 농축된 문장 안엔 보드리야르가 있고 존 버거가 있고 마셜 매클루언도 있다. 그런데 그 날카로움 가운데 휴머니티가 있다. 세간에서 본인을 시인이라 부르는건 싫다고 했다. 통상 시인은 좋은 교육을 받고 화려한 어휘를 구사하는 사람이니까. 보통 사람들이 쓰는 보통의 단어, 아이의 문장, 이민자들의 어눌하지만 진솔한 표현. 코코의 핸드라이팅이 지향하는 언어다.
전시 오프닝 당일. 수많은 매체와 분 단위로 바투 짜인 인터뷰와 촬영 스케줄을 소화하면서도 코코는 지친 기색이 없었다. 스물여섯의 코코는 사려 깊고 의젓했다. 그와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눴다.
구찌라는 큰 브랜드와의 협업이 꽤나 성공적이었다. 어떤 기분인가? 구찌와의 작업은 내가 해왔던 어떤 브랜드와의 협업보다도 인상적이었다. 구찌 이전의 협업은 대체로 사진 작업이었다. 그러나 구찌는 내 핸드라이팅에 큰 관심을 보였다. 사진이 아니라 내가 쓴 글과 타이포그래피로 소통하는 것. 그동안 해왔던 협업과는 완전히 다른 접근이어서 정말 좋았다.
예술과 패션, 예술과 상업의 관계가 그 어느때보다 밀접하다. 이 흐름을 어떻게 이해하나? 예술과 패션이라는 두 매체의 성격을 적절하게 이해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개인적으로 그 두 매체의 경계에서 작업하는 것을 즐긴다. 갤러리에 전시될 무언가를 만드는 것과, 패션 매거진을 위한 무언가를 만드는 것은 완벽히 다른 성격의 일이다. 그럼에도, 예술과 상업은 서로 긴밀하게 유대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예술은 상업보다 고귀하다고 여겨져왔다. 예술은 정신적인 것이고, 상업은 돈을 좇는 거니까. 근데 요즘은 많은 예술작품들이 판매 목적으로 제작된다. 게다가 요즘은 갤러리와 브랜드의 운영 방식이 다르지 않은 경우도 많다. 기존의 ‘예술’과 ‘상업'이란 개념에 도전이 되는 작업을 하고 싶다.
‘패션 없는 패션 사진’ 섹션이 흥미롭다. 오랜 기간 사진을 공부했다. 본인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패션 화보란 뭔가? 패션 매거진 화보를 할 때마다 기존과는 다른 시선이고 싶었다. 이제는 누구나 카메라를 휴대한다. 서울은 어떤지 모르지만, 런던에는 수많은 포토그래퍼들이 필름카메라와 아날로그로 회귀하는 움직임을 보인다. 근데 재밌게도 다들 비슷한 트렌드를 좇는다. 어떤 느낌이나 필터가 유행하면 너도나도 그런 느낌의 사진을 찍는다. 내가 사진을 찍을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어떤 미감을 선택하느냐, 어떤 느낌과 스타일의 사진이냐가 아니다. 중요한 건 내가 가진 관점과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이다. 패션 아이템을 잘 보여주는 패션 사진은 넘쳐난다. 지루하다. 난 그 이면에 어떤 이야기가 있는지 보고 싶었다. 왜 다른 모델이 아니고 하필 이 모델을 선택했는지, 왜 이런 느낌(Aesthetic)을 택했는지. 단순히 유행이고 쿨하니까? 아니면 그 느낌을 통해 특별히 말하고 싶은 게 있어서? 자기만의 주관과 목소리가 뚜렷한 사진가로부터 비롯된 결과물이 좋은 패션 화보라고 생각한다. 이제 패션 화보는 제품을 넘어서서 라이프스타일과 그 브랜드의 아이덴티티를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더스트(Dust)> 매거진에서 구찌 화보를 진행한 적이 있다. 개별 제품을 ‘담아내기’보다 구찌라는 패션 하우스가 추구하는 ‘자유'라는 키워드를 ‘표현'하고자 했다. 예쁘고 잘생긴 남녀가 나와서 제품을 뽐내는 화보나 광고는 시대착오적이다. 이젠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 어시스턴트 에디터/ 이현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