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적인 삶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여름 한가운데, 프랑스의 두 도시에서 보내온 생의 활력으로 빛나는 편지. | 파리

파리, 미의 몸짓낯선 도시에서 목적 없이 일 년을 보낸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일상에서 탈락되어 부유하는 시간 속엔 긴장과 환희, 자유로움과 헛된 쓸쓸함이 공존한다. 젊음의 끄트머리에서 보낸 파리에서의 일 년이라는 시간은 그런 무한함 속에 나를 던져넣는 경험이었고, 어느새 뿌옇게 된 기억은 이따금 지루한 오후마다 작은 활력을 줄 만한 것이었다. 언제나 초여름의 여행객이 되곤 하는 나는 오랜만에 다시 파리를 찾았다. 초록의 수벽, 오스만의 건물들, 초롱초롱한 와인과 강가의 밤, 너무 예쁜 여자들이 있는 곳에 말이다. 모두가 이때만을 기다렸다는 듯 계절을 만끽하고 있었다. 누군가 파리에는 모종의 리듬이 존재한다고, 그것은 파리 사람들의 움직임이 빚어낸 리듬감이라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상쾌한 아침의 빠른 발걸음, 달콤한 와인을 홀짝이는 점심의 무드, 해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에나 앉고 드러누워 문학에 여념이 없는 몸짓들이 눈앞에 펼쳐졌다.가장 뜨거웠던 예술가들의 시절의 온기로 가득한 도시를 산뜻한 걸음으로 걷기 시작했다. 몽파르나스의 부르델 미술관. 로댕의 제자로 출발한 조각가 앙투안 부르델(Emile Antoine Bourdelle)이 남긴 작품들과 그의 아틀리에가 남아 있는 곳이다. 분홍 장미가 핀 정원에 세워진 거대한 청동 기마상의 낯선 느낌이 가져오는 첫 번째 감각. 그리고 거대한 홀 안에 세워진 아폴론, 헤라클레스, 알베아르 장군상의 웅장한 어우러짐은 마치 부르델에 의해 되살아난 모던의 신전처럼 보였다. 모두가 고전과 결별해가던 시절에 그는 거꾸로 그리스, 로마 고대조각의 미감과 양식으로 복귀하면서 신화적 영웅에 심취했다. 그러면서 동시에 이사도라 던컨, 니진스키의 무용에서 구상된 샹젤리제 극장 벽의 장식 부조를 제작한 20세기적 인간이기도 했다. 굳게 닫힌 문을 밀어 그의 아틀리에로 들어섰다. 순간 부르델이 머물던 시간의 온기가 나를 감싸는 듯 오감은 바로 거기에 멈추어 섰다. 높은 유리 천장으로 뻗어 들어오던 북쪽의 빛은 낡은 나무 좌대 위의 두상과 조각들을 간지럽히고 있었다. 어둑한 조도 아래, 채 완성시키지 못하고 금방 문을 나서버린 조각가의 손길이 여기저기 묻어 있는 듯했다. 아득한 고대를 꿈꾼 인간이 대리석과 흙, 청동을 만지며 무거운 시간을 천천히 밀어낸 아틀리에. 그곳은 고요와 사색, 노동이 응축된 정신성의 공간이었다. 나뭇잎과 태양빛, 그의 커다란 청동 조각이 충돌하여 반짝이는 정원에 한참을 머물며, 파리의 고요를 감각한다. 각자에게 몰두했으나 같은 형상을 되새기는 몇몇의 아름다운 사람들 사이에서.파리는 늘 예기치 않은 흐름과 풍경으로목석같은 여행자도 도취되게 만들고는 한다.넘쳐나는 파리의 이미지는 도리어 이 도시의 깊이를가늠할 수 없게 만드는지 모른다.19세기 또 하나의 비밀스러운 예술가 귀스타브 모로(Gustave Moreau) 역시 자신이 살던 저택을 미술관으로 남겼다. 미술관을 만들고 떠나겠다는 말년의 결심, 그것이 내내 독신으로 고요히 살았던 예술가의 마지막 집착이었을까. 그곳엔 그가 평생 동안 그린 유화와 데생, 드로잉 수천 점으로 가득 차 있다. 붉게 장식된 거실과 탐미적인 다이닝룸, 침실과 서재로 이루어진 1층을 지나 2층으로 올라가면 삶의 공간과 선을 긋는 듯 온통 금빛 프레임의 그림들을 벽 위아래로 가득 채워놓은 스튜디오를 만난다. 진지하게 모사를 하고 있는 학생 사이에 서서 너무 많은 그림들을 천천히 훑어보았다. “나는 보이지 않는 것과 느끼는 것만을 믿는다”고 했던 모로 그림의 낭만성은 신화와 종교의 이야기에서 유추한 기이하면서도 신비로운 화면을 만들어냈다. 오이디푸스, 이아손과 같은 모순으로 엮인 인간상에 탐닉하는가 하면, 세기말의 주인공이 된 오르페우스, 프로메테우스와 화폭 안에서 밀교를 나누었던 모로. 황금빛 광휘에 둘러싸인 그의 인물들은 악몽과 비극 속에서도 너무나 나른하고 매혹적이라 멀미가 날 지경이다. 파리 한복판에 살았지만 주로 칩거하며 지냈다는 그가 이 집에 차곡차곡 지어올린 미망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미술관에 머무는 내내 출구를 생각할 겨를이 없었던 경험은 처음이었다. 누구라도 잊지 않고 모로 미술관을 찾는다면, 가장 데카당스한 신화를 만나게 될 것이다.밤 11시가 되어야 어두워지는 여름의 파리에서 하루는 더욱 길고 오묘하다. 저녁 이후의 몇 시간은 조금 멀리까지 산책을 하거나 멋진 저녁 만남을 이룰 수 있을 만큼 충분하다. 지는 해를 등지고 앉아 붉게 물들어가는 물빛을 바라보던 생마르탱 운하에서 거의 매일 밤을 보냈다. 담배와 맥주, 기타를 들고 나와 한 소리로 노래를 부르던 청년들, 기대어 앉아 끊임없이 속삭이는 연인의 모습은 생의 한가운데처럼 풋풋해 보였다. 이따금 파리에 없는 ‘산’의 지형을 만끽할 수 있는 뷔트 쇼몽 공원으로 가 능선을 오르내리며 에너제틱하게 걸어보기도 했다. 나폴레옹 3세가 기획했다는 파리 북쪽 19구의 이 공원은 인공적인 프랑스식 정원과 달리 뾰족한 바위산과 쭉쭉 뻗은 나무들, 구스타브 에펠이 설계한 아찔한 구름다리까지 어딘가 야생적인 힘이 느껴지는 곳이다. 공원이 개장한 1867년부터 자라 무성한 떡갈나무, 전나무, 은행나무들이 만들어준 넓은 그늘은 누구라도 드러누워 쉬어 갈 수 있게 한다. 그 속에서 책을 읽거나 홀로 풀밭 위의 식사를 하거나 자기보다 덩치 큰 개와 놀아주는 사람들은 분명 이 계절이 가장 행복하지 않을까.\파리를 걷는 일은 10년 전 기억의 궤적을 더듬는 동시에 새롭게 다가오는 것과의 만남에 긴장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파리 외곽의 조용한 동네 뫼동을 설렘으로 찾아간 건 작은 집 한 채를 보기 위해서였다. 매월 첫째 주 토요일 오후에만 방문을 허용하는 곳이라 번거로운 여정에도 기꺼이 나설 수밖에 없었다. 전형적인 프랑스식 메종들 한가운데 콘크리트로 지은 박스형의 하얀 집, 네덜란드 예술가이자 평론가였던 테오 반 두스부르흐(Theo Van Doesburg)가 피아니스트였던 아내를 위해 1931년에 지은 집이다. 1917년 태동한 아방가르드 잡지 을 창간한 반 두스부르흐는 정육면체 구조에 북쪽으로 긴 유리벽 스튜디오, 발코니와 옥상이 있는 간결한 조형의 건물을 세웠다. 좁은 현관을 지나 만나는 침실과 욕실, 서재에는 놀랍게도 문이 아닌 커튼으로 공간이 구획되어 있었다. 각 공간을 유기적으로 사용하겠다는 의도, 그리고 작은 공간을 보완하고도 남을 개방감이 느껴졌다. 서재의 천장엔 빨강, 노랑, 파랑의 사각 스테인드글라스가 데 스테일의 악센트를 더하고 있었고, 두스부르흐가 디자인한 스튜디오와 주방의 콘크리트 테이블은 실용과 조화의 미학을 완성하고 있었다. 개념적 추상과 주거라는 실제적 상황의 조우, 어쩌면 이 지점이 데 스테일의 예술가들이 꿈꾸었던 이상이 아니었을까. 아쉽게도 두스부르흐는 집이 완성되기 직전 갑작스러운 폐결핵으로 스위스에서 생을 마감했지만, 아내 넬리는 40년이 넘게 집을 지키며 홀로 살았다. 지금은 네덜란드 아티스트들의 레지던스로 쓰이고 있어 스튜디오와 공간 곳곳에 리얼한 생활감이 묻어 있다. 밖으로 나와 작은 정원에서 집을 바라보면 몬드리안의 회화를 보듯 선과 색을 따라 눈으로 컴포지션을 그리게 된다. 뫼동에서 기차를 타고 나오며, 파리의 모던은 당시 파리 밖에서 모여든 여러 예술가들이 서로 만나고 충돌하고 스치며 만들어낸 창조적인 자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그윽한 밤들을 위해 택한 곳은 오페라 근처의 호텔 생마르크(Hotel Saint-Marc)였다.18세기에 세워진 백작의 집이 신문사 사무실의 흔적을 거쳐 스물여섯 개의 방을 간직한 호텔로 탄생했다. 밀라노의 디자인 듀오 디모레(Dimore) 스튜디오는 밀라노와 파리의 가장 장식적이고 화려한 무드 포인트로 호텔을 디자인했다. 때문에 미니멀한 편안함을 추구하는 최근 호텔들의 컨셉트와는 다른 시각적인 향연으로 가득하다. 흰 대리석, 녹색과 노랑, 분홍색과 같은 과감한 컬러 매치, 골드 프레임의 강조와 화려한 다이아몬드 패턴의 패브릭까지 과거의 탐미적이었던 시대를 모던하게 풀어놓은 공간은 감각적 즐거움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침대에 누워 벨벳 의자와 금빛 램프를 바라보노라면 쉽게 잠이 오질 않았지만, 지금을 둘러싸고 있는 이 드물고 특별한 아름다움과 함께 밤을 새워도 좋을 것만 같았다. 강렬한 시간은 언제나 짧다고 했던가. 파리는 늘 예기치 않은 흐름과 풍경으로 목석같은 여행자도 도취되게 만들고는 한다. 넘쳐나는 파리의 이미지는 도리어 이 도시의 깊이를 가늠할 수 없게 만드는지 모른다. 파리의 어느 골목에선가 아무런 언어도 무용해지는 순간을 마주치기 위해서는 더욱 섬세하게 걷고 보며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짝이는 것들은 우리와 파리 사이, 멀고도 가까운 곳에 고요히 숨 쉬고 있으므로.http://www.hotelsaintmarc.com36 Rue Saint-Marc, 75002 Par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