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LF PORTRAITS
하나의 작품을 함께 만들어낸다는 것은 영혼을 공유한다는 뜻일 것이다. 아트 월드에서 가장 유명한 듀오인 엘름그린 & 드라그셋(Elmgreen & Dragset)은 거울을 들여다보듯이 서로의 영혼을 들여다본다.
듀오로 활동한 지 벌써 20년이 넘었다. 협업의 의미도 이제는 남다를 것 같다. 정확히 23년째다. 1995년부터 모든 프로젝트를 함께 해왔다. 근본적으로 늘 주고받는 대화가 협업의 핵심이다. 끊임없이 소통하면서 작업도 발전해나간다. 각자 따로, 독단적으로 작업할 수 있을 거라 상상해본 적도 없다. 생각만 해도 매우 외로울 것 같다. 함께 해온 시간이 있는 만큼 이제는 서로를 자기 자신만큼이나 잘 안다. 물론 각자 달리 가진 배경, 겪는 경험, 얻는 정보 등에서 비롯한 다양한 아이디어들을 활용할 수 있다는 점도 중요하다. 둘이 함께 할 수 있어 이로운 게 많다. 서로를 자극하기도, 점검하기도, 나태해지거나 되풀이하지 않도록 도울 수 있다. 그럼으로써 우리의 호기심은 늘 생생히 살아 있다.
연작 ‘자화상(Self-Portraits, 2015~)’에 관해 이야기해보자. 미술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작품 캡션 자체를 소재로 삼아 그대로 본뜬 듯이 제작된 작품이다. 듀오이기 때문에 전형적인 ‘자화상’을 만드는 게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착안한 듯하다. ‘자화상’은 보통 작품 정보를 적어 벽에 붙여놓은 라벨을 크게 확대해서 유화나 대리석 조각같이 클래식한 매체로 재제작한 시리즈 작품이다. 단, 이 캡션들은 우리의 작품이 아니라 모두 다른 작가의 작품들에 관한 것으로, 부차적인 캡션이 고스란히 미술작품이 된 셈이다. ‘자화상’이라고 이름 지은 이유는, 이 연작에 포함된 작품들 모두가 그간 우리에게 큰 영감을 주었기 때문이다. 듀오 작가로서 우리의 정체성은 두 사람이라는 복수의 합산물이고 또 둘 간의 창의력에서 비롯한 것이기 때문에 ‘자화상’이라는 개념 자체가 다소 애매모호하고 어렴풋하다. 진정한 의미의 자화상은 ‘셀카’ 몇 장 그 이상이다.
지난 작업을 선형적으로 망라하는 회고전 제의를 받았을 때, 이를 거부하고 개인전 <일대기(Biography)>를 기획했다. 더불어 텍스트만 모은 출판물과 함께, 두 사람 각각 혹은 공동의 산재한 기억들을 그러모은 600여 쪽 분량의 대형 사진 앨범을 메인 전시 도록으로 만들었다. 아직도 세상에 하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아서인지, 그저 오래된 것들을 한데 모아놓거나 지난 행적에만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는 게 썩 편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일대기> 전시는 우리 둘만의 이야기를 풀어 쓴 게 아니라 ‘일대기’라는 개념 자체가 무엇인지 고민한 전시였다. 오늘날 우리의 정체성은 너무나도 다채로운 것에 영향을 받아 형성되기 때문이다. 함께 제작된 출판물은 전시의 기록물 형태가 아니라 매우 개인적인 사진첩으로 구성됐다. 넓은 의미로 확장된 어떤 한 가족의 앨범이랄까.
올해 두 개의 대형 개인전을 앞두고 있다. 9월 26일 런던 화이트채플 갤러리에서의 개인전 <이렇게 우리는 혀를 깨문다(This Is How We Bite Our Tongue)>는 기존의 조각작품들, 그리고 새로운 대형 장소 특정적 설치작품으로 꾸려진다. 오늘날 여러 시민들이 누리는 공간에서 믿음과 신뢰가 무너져가는 양상에 관한 전시이다. 10월 중순에 열릴 파리 페로탱 갤러리 개인전은 맥락상 런던의 전시와도 연결되는데, 공공장소에 대한 생각을 담을 예정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의 내외부 모두가 각종 산업 및 통제 메커니즘에 의해 장악되고, 우리의 정신적신체적 공간들이 더욱더 축소되고 한정되어가는 상황에 대한 코멘트다. 또한 피악(FIAC) 아트 페어 주최로, 파리의 역사적인 방돔 광장을 100개의 빨간색 불가사리 조각으로 뒤덮는 작품도 공개된다. 마치 거대한 파도가 도시를 휩쓸고 지나간 뒤 덩그러니 남겨진 것처럼.
한국에서의 다음 프로젝트가 있다면 귀띔해달라. 2019년 3월 국제 갤러리에서 두 번째 서울 개인전을 개최한다. 한국에 있는 그간 못 본 친구들을 만나자니 설레기도 하고 한국 음식 생각에 군침도 돈다.
글/ 탁영준(아티스트)
Better Together
공간에서 파생되는 여러 분야의 작업을 감각적이고 창의적인 방법으로 풀어가는 크리에이티브 스튜디오 언라벨. 이를 이끌어가고 있는 이동일과 이진경은 연인에서 부부가 되었고 동시에 동료로서의 삶을 함께하고 있다.
크리에이티브 스튜디오 언라벨은 어떤 일을 하는 집단인가? 동일: 간단하게 얘기하면 인테리어 디자인 스튜디오다. 하지만 최근 브랜드의 초기 컨셉트부터 디자인적 요소를 만들거나 아트워크를 활용한 작업이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회사 이름에 크리에이티브가 더해진 이유도 우리가 하는 일을 소개하기 좀 더 용이하다는 판단 때문이다.
스튜디오 언라벨의 아이덴티티가 집약된 대표적인 작업 몇 가지를 꼽자면? 동일: 로우 클래식의 명동 플래그십 스토어, 앤더슨 벨 플래그십 스토어, 레어마켓의 오브제를 꼽을 수 있다. 단, 상업적인 공간은 클라이언트의 아이디어가 융합되어 완성되기 때문에 오로지 언라벨만의 아이덴티티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전시처럼 자체적인 프로젝트를 할 때가 있는데 그런 작업에서 드러나는 요소가 우리의 아이덴티티와 더 가깝지 않을까 생각한다.
공간을 구성할 때 가장 중요시하는 부분은 무엇인가? 동일: 공간에 의미 부여를 하는 작업은 언제나 어렵다. 의미를 부여하다 보면 과도하거나 거짓된 표현으로 치장되기 싶다. 그래서 항상 리얼리티를 놓치지 않으려 노력한다.
둘은 언제부터 함께 작업을 해왔고, 첫 공동 작업은 무엇인가? 동일: 연애 초기부터 시작해서 7년째 함께 일하고 있다. 사실 첫 공동 작업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같이 해보자 해서 시작된 게 아니라 내가 작업할 때마다 옆에 진경이가 있었고, 어느 순간부터 자연스레 함께 하게 되었다. 진경: 사실 나는 광고를 전공했는데, 오빠의 작업실을 들락날락하면서 하고 싶은 걸 하다 보니 이쪽 세계에 스며든 것 같다.
작업에 있어 각자의 역할은 무엇인지? 동일: 나는 회사를 경영하고, 디자인과 컨셉트 기획부터 모델링이나 3D 표현까지 한다면 진경이는 2~3개 프로젝트의 컨셉트 기획부터 실제 구현까지, 즉 시작부터 마무리까지 책임지고 있다.
부부라 더욱 부딪히는 일이 많을 것도 같다. 진경: 나는 감정적인 사람이고, 오빠는 이성적인 사람이다. 초창기에는 이 문제로 싸움이 많았다. 아무래도 오빠가 사업가로서의 냉정한 판단을 하다 보니 가족이지만 선을 그어버리는 순간이 종종 있었다. 그 판단이 맞다는 걸 지금에야 깨달았지만, 당시에는 심리적으로 힘들었다. 동일: 나는 내 것을 제안하는 편이라면 진경이는 클라이언트랑 일을 할 때 그들에게 푹 빠져서 일을 하는 편이다. 동일시할 정도랄까? 클라이언트가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정확히 포착하는 편인데 이것이 진경이의 큰 장점이라 할 수 있다.
영감은 주로 어디에서 받는가? 진경: 핀터레스트(웃음)? 영감은 정말 다양한 측면에서 찾을 수 있다. 레퍼런스를 모으고 그것이 가진 성질을 추적하다 보면 해답이 나온다. 동일: 나 같은 경우 작업이 잘 풀리지 않을 때 진경이의 아이디어가 물꼬를 틔워줄 때가 많다.
현재 작업 중인 프로젝트는 무엇인가? 동일: 패션 브랜드 관련 프로젝트를 여러 개 진행 중인데 대부분이 대외비다. 또 겨울에 전시를 계획 중이라 필요한 작품들도 만들고 있다.
서로를 한 단어로 정의하자면? 동일: 뮤즈. 진경: 스승.
에디터/ 윤혜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