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유희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무인도에 세 권의 책을 들고 갈 수 있다면? 이 진부하면서도 흥미로운 유희에 움베르토 에코, 폴 오스터, 미셸 우엘벡 같은 작가들이 응했다. | 책,움베르토 에코,폴 오스터,미셸 우엘벡

무인도에 세 권의 책을 들고 갈 수 있다면, 무슨 책을 가져가시겠어요? 진부해 보이지만 그 사람에 대해 많은 것을 알 수 있는 질문이다. 은 바로 그 오래된 질문을 던지는 책이다. 프랑스 일간지 과 주간지 의 편집장을 지낸 저술가이자 영화감독이기도 한 저자 프랑수아 아르마네는 작가 196명에게 “당신이 무인도에 갇히게 된다면 가져갈 책 세 권은 무엇입니까?”라고 질문한 뒤 그 답을 한 권의 책으로 엮었다. 일본의 오에 겐자부로에서부터 영국의 이언 매큐언까지, 1929년생인 밀란 쿤데라부터 1982년생인 파올로 조르다노까지, 지역과 세대를 망라하여 우리가 사랑하는 작가들의 답변이 실렸다.이 고민은 사실 하루이틀 된 것이 아니다. 1913년 앙드레 지드는 잡지 기고글에 무인도에 가져가고 싶은 프랑스 소설 10권에 대해 썼다. 고등학교 졸업반 때 그는 친구와 새 학기가 될 때면 무인도에 가져갈 책 스무 권을 작성했는데, 지드에게 이는 양심의 선택이자 까다로운 실험이었다. “선택한다는 것은 나머지 전부를 영원히, 완전히 포기한다는 것을 의미하며,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그 나머지는 어떤 하나보다도 더 나아 보인다.” 그 글에서 지드는 과 사이에서 갈등하다 후자를 택했고, 발자크의 소설 중에는 대신 를 선택했다. 이렇게 한 권씩 채워가던 그는 9권까지만 꼽고 마지막 한 권은 독자의 선택에 맡겼다. 로빈슨 크루소 이야기를 다시 쓴 미셸 투르니에의 에서 투르니에는 로빈슨 크루소의 손에 을 쥐어준다. 심지어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조차 이 질문에 도전했다. 1938년부터 거의 시력을 잃어 저작의 4분의 3을 구술로 집필한 그의 드문 육필 원고 이야기가 이 책에 등장한다. 이 미발표 원고에서 그는 버트런드 러셀의 을 비롯해 대수학서, 형이상학 책, 역사서 중 한 권씩을 가져가겠다고 썼다.우리와 동시대의 작가들 이야기는 더 흥미롭다. 바로 이 책이 질문하고 답을 실은 196명 작가들의 답이다. 폴 오스터는 무척 두꺼운 책이어야 한다고 운을 뗀 뒤 꼼수를 썼다. 셰익스피어 전집을 한 권으로 퉁친 뒤, 세르반테스의 와 몽테뉴의 을 언급했다. 공교롭게도 셋 다 동시대인이었다. 로 부커상을 수상한 존 밴빌은 “섬에서 오래 지내야 한다는 가정하에, 나는 꼭 내가 좋아하는 책보다는 충분히 길고 치밀하며 끝없이 다시 읽을 수 있는 매혹적이고 시사적인 책들을 가져가겠다”면서, 시는 음악과 너무도 가까워서 반복이 결코 괴롭지 않다고 했다. 그러니 그의 첫 번째 선택은 놀랍지 않게도 이나 미국 문학 선집이다. 그 외에는 자코모 레오파르디의 , 그리고 ‘정통 이탈리아 요리의 성서’라는 를 가져가겠다고 했다. 요리법이 적힌 책을 꼽은 작가는 또 있다. 역시 영국 작가로, 로 부커상을 받은 줄리언 반스. 그는 시선집이면서 다람쥐 요리법도 실린 를 선택하고, 프랑스 소설가 플로베르의 이라는 편지 모음집을 고르며 그 편지들이 자신에게 온 것이라 상상하며 읽겠다고 덧붙였다. 그리고 바이런의 .스릴러소설 작가들은 또 다르다. 할런 코벤은 한 번도 읽지 않은 책들을 가져갈 것이라고 했고, 마이클 코넬리는 레이먼드 챈들러의 와 로버트 쿠퍼의 , 마지막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을 꼽았다. 를 쓴 브렛 이스턴 앨리스는 참고서적과 에세이만을 원했다. 데이비드 톰슨의 , 영화평론가 폴린 카엘의 평론집 , 그리고 소설가 조앤 디디온의 에세이 를 선정했다. 의 작가 제임스 엘로이는 , 제임스 존스의 와 을 길다는 이유로 선정했다.의 길리언 플린은 첫 번째로 빌리 콜린스의 시집을, 윌리엄 새커리의 을, 조이 윌리엄스의 를 선택했다.선정한 책들을 보면 어떤 면에서든 작가와 닮아 있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미셸 우엘벡은 “나는 설문조사에는 절대 답하지 않는다”고만 적었다. 히라노 게이치로는 세 권을 적은 뒤, “네 번째의 책을 숨겨갈 것이다. 나는 소심하기 때문에, 무인도에서 살아남는 법에 대한 책을.”이라고 했다. 움베르토 에코는 전화번호부 한 권만 가져가겠다고 말했다. 전화번호부의 많은 이름들을 보면 무한한 이야기를 쓸 수 있을 거라고 말이다. 가장 자주 언급된 책은 무엇일까? 성경이 꽤 많이 언급되고, 셰익스피어 전집을 비롯한 그의 희곡들이 드물지 않게 보인다. 하지만 놀라운 빈도로 가장 자주 보이는 책은 바로 세르반테스의 다. 무인도에 가진 않겠지만 나 역시 이번 휴가의 독서를 로 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