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드레이크는 현재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래퍼다. 아니, 가장 영향력 있는 뮤지션이다. 미안하다. 한 번만 더 정정하자. 드레이크는 현재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사람’이다. 못 믿겠다면 현재 그의 인스타그램 팔로어가 4천371만 명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자. 한국인 전부가 그의 인스타그램을 팔로하고 있는 셈이다.
새 앨범 의 흥행은 그의 위엄을 다시 한 번 증명한다. 이 앨범과 관련한 숫자들은 강렬하다 못해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먼저 드레이크는 빌보드 HOT 100 차트에 자신의 새 앨범 에 수록된 전곡(25곡)을 진입시켰다. 더 놀라운 것은 이중 7곡이 10위 안에 진입했다는 사실이다. 최상위 10곡 중 7곡이 한 뮤지션의 노래라는 뜻이다. 이로써 드레이크는 비틀스가 54년 동안 지켰던 기록(5곡)을 넘어섰다. 스트리밍의 역사 또한 새로 썼다. 은 첫 주 동안 스트리밍 횟수 7억 4천592만 회를 기록하며 역대 1위에 올랐다.
숫자 놀음은 그만하자. 드레이크를 앨범만 많이 파는 대중 래퍼로 규정할 수는 없다. 그는 최근 10여 년간의 힙합 사운드 흐름을 이끈 인물로 기록돼야 마땅하다. 다음은 몇 가지 질문이다. 1) 피비알앤비(PBR&B)의 핵심에는 누가 있었는가? 2) 누구 이후로 래퍼들이 노래하듯 랩하게 되었나? 3) 힙합을 팝의 동의어로 확장시킨 인물은 누구인가? 정답은 모두 한 남자의 이름이다. 랩과 노래를 넘나드는 동시에 힙합과 팝을 도시의 야경 느낌으로 섞어내며 젊은 왕이 된 남자 말이다. 그러나 드레이크의 가장 중요한 성취는 그가 ‘남자답지 않은’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함으로써 힙합의 금기를 깨뜨렸다는 점에 있다. 많은 래퍼가 학습된 남성성에 갇혀 강하게만 굴 때, 드레이크는 홀로 광야에 서서 자신의 유약함을 기꺼이 드러냈다. 즉 드레이크에 이르러서야 힙합은 비로소 남성이 아니라 ‘인간’을 완성했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새 앨범 이야기로 돌아가자. 은 파격적이거나 혁신적인 작품은 아니다. 드레이크는 여전히 미니멀한 비트 위에 랩을 하거나, 까다롭지 않은 보컬로 알앤비를 소화한다. 그의 앨범을 즐겨 들어온 이라면 새 앨범 역시 편안하게 즐길 수 있다. A 사이드(힙합)와 B 사이드(알앤비)를 장르적으로 명확히 구분해놓았다. 무려 25곡이 수록된 더블 앨범이다. 이 ‘대-스트리밍 시대’의 한복판에서 살아남는 법은 앨범을 ‘길게’ 만드는 것이니까.
의 가사 포인트는 최근 발생한 몇몇 논란에 관한 대답이다. 드레이크는 첫 곡 ‘Survival’에서부터 푸샤티와의 갈등에 관해 이야기하고, ‘Emotionless’에서는 자신의 아이가 존재함을 인정하는 듯한 발언도 한다. 상대가 랩으로 제기한 문제에 관해 랩으로 대답하는 모양새다. 랩스타로서 자신의 업적을 과시하다가도 유명인의 고충을 토로하고, 여성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다양한 관점의 메시지를 각각의 노래로 만들었다. 에는 한 인간의 최대치의 솔직함이 담겨 있다. 한편 이번 앨범에서도 ‘고인’과의 협업을 이어갔다. ‘Don't Matter to Me’에서는 마이클 잭슨의 미공개 보컬을 자신의 색깔 안에 준수하게 녹여낸다. ‘피처링’ 대신 ‘샘플링’을 선호했다는 점도 흥미롭다. 머라이어 캐리나 로린 힐의 과거 음원을 보컬까지 통째로 샘플링하는 방식을 택했다. 더불어 은 90년대 알앤비 음악을 본격적으로 샘플링하기 시작한 작품 중 하나로 역사에 기록될지도 모르겠다. 남들처럼 70~80년대의 소울로 거슬러 올라가는 대신 맥스웰, 디앤젤로, 보이즈투멘의 음악을 가져와 재창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은 드레이크가 여전히 성실하고, 세심하며, (세간의 편견과 달리) 음악적 진지함을 갖춘 인물임을 보여준다. 글/ 김봉현(힙합 칼럼니스트) 에디터/ 김지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