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빙의 매력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Lifestyle

다이빙의 매력

웨트수트를 입으면 '어벤져스'의 블랙위도우처럼 보일 수 있다는 점 말고도 다이빙의 매력은 더 있다. 다이빙에 미친 사람들은 물속에서 호흡하는 행위 자체를 사랑한다.

BAZAAR BY BAZAAR 2018.07.05

물고기 비가 내리는 숲을 본 적이 있는가? 운 좋게도, 나는 첫 다이빙에서 그것을 경험했다. 당신은 아마 어항 가게에서 조그맣고 알록달록한 열대어들을 본 적이 있을 거다. 낯선 세계에 잡혀 와 어리둥절 눈을 끔뻑이는 그들에게선 아무런 활력도 느낄 수 없다. 하지만 우리가 그들의 세계로 뛰어들어가 이방인이 되었을 때는 얘기가 전혀 달라진다. 해류를 따라 줄지어 몰려다니는 거대한 물고기 떼와 마주치고, 인간의 상상력을 뛰어넘는 다양한 패턴과 색감의 해양 생물이 사방에서 정신없이 튀어 오르는 순간, 그들의 압도적인 생명력이 우리를 전율시킨다.

패턴과 색감 얘길 좀 더 해보자. 일찍이 내게 같이 다이빙을 하자고 권한 친구들이 있었다. 하지만 누구도 바다 속 세계가 얼마나 패셔너블한지는 말해주지 않았다. 그들이 이런 세계를 증언했다면 나는 좀 더 일찍 다이빙을 시작했을 거다. 어쩌면 나의 첫 다이브 사이트가 인도네시아여서, 누사페니다의 토야 파케여서 그랬을 수도 있다. 인스트럭터가 나의 재킷을 도시락통처럼 끌고 다니며 물속 세계를 안내하는 동안 나는 보는 곳마다 손가락질을 해대며 “음, 으음, 으으음!” 감탄의 신음을 냈다. 마치 3D 패션 판타지 필름 속을 떠다니는 기분이었다. 나는 패브릭 디자이너, 추상화가, 일러스트레이터들이 반드시 열대지방에서 다이빙을 해봤으면 좋겠다.

일찍 다이빙을 시작한 친구들이 물속 세계의 아름다움 대신 내게 강조한 건 ‘동아리 활동의 즐거움’이었다. 다양한 사람을 사귀고, 갓 잡은 싱싱한 해산물을 먹을 수 있다고 선전했다. 물에 빠진 여자가 자신을 건져준 해병대 출신 다이버와 사랑에 빠졌다는 통속극 도입부 같은 일화도 들려주었다. 내 반응은 이랬다. “음, 물에 빠져 구조가 필요할 수도 있단 말이지? 역시 난 안 되겠는걸.” 하지만 친구들의 제안을 거절한 더 큰 이유는 따로 있다. 나는 친교를 목적으로 이질적인 부류가 뒤섞인 집단에 동화되려 노력하는 건 질색이다. 평생 어떤 동호회도 가입해본 적이 없다. 금방 제 둥지에서 살아 돌아다니는 생명체를 목격하고는 그와 같은 종을 썰어서 입에 넣는 게 즐거울 것 같지도 않았다. 기왕 먹어야 한다면 살아 있는 모습은 안 보고 싶다. 다이빙을 시작한 지금은 이런 한국형 다이빙 문화가 더욱 끌리지 않는다. 그럼 도대체 왜 다이빙을 하는가? 내겐 여전히 아름답고 신기한 해양 생물이 1순위지만 다이빙에 심취한 나머지 동남아로 이주해 직업 다이버가 된 친구들에게 물었을 때 그건 기껏해야 2순위 혹은 3순위에 그쳤다.

나는 현재 인도네시아의 누사페니다에 산다. 마침 와보니 다이빙으로 유명한 동네였고, 남들은 애써 휴가 내고 돈 써서도 오는 곳이라니까 사는 김에 체험해보자, 해서 다이빙을 시작했다. 그리고 말했다시피 첫 다이빙에서 물고기 비가 내리는 숲을 목격했고, 두 번째 다이빙에서는 커다란 만타가오리 수십 마리가 춤추듯 우아하게 지느러미를 펄럭이며 호기심 어린 태도로 내 주위를 유영하는 것을 경험했다. 프랑스인 ‘마스터 인스트럭터’ 해럴드 르 갈(Harold Le Gal)은 아기일 때를 포함해 평생 눈물을 흘린 적이 별로 없는데 만타가오리를 처음 보고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태국과 인도네시아 여러 곳에서 다이빙 강사로 일하던 그는 결국 만타 사이트로 유명한 누사페니다에 정착했다. 하지만 그에게 해양 생물은 다이빙을 사랑하는 세 번째 이유에 불과하다. 첫째는 ‘마음의 평화’다.

“다이버들에겐 ‘오일 온 더 워터’라는 표현이 있어요. 물이 기름에 뜨듯 우리가 물속으로 가라앉는 순간 잡념들은 표면에 남게 되죠. 물속에서는 오직 내가 뿜어내는 거품에만 집중해야 하니까요.” 그는 아홉 살 때 튀니지 해안에서 조류에 휘말려 죽을 뻔한 후 줄곧 바다 수영을 무서워했는데, 성인이 되고 나서 “무언가를 두려움의 영역에 남겨두기 싫다”는 이유로 바다로 돌아갔다. 그리고는 첫 다이빙에서 곧장 바다와 사랑에 빠졌다. “바다가 나를 따뜻하게 환영하는 느낌이었어요.” 다이빙을 시작한 후 그는 채식주의자가 되었다. 인간은 해양 세계의 방문객일 뿐이므로 아무것도 훼손해선 안 된다고 고객들에게도 철저하게 에코 다이빙을 강조한다.

영국인 크리스토퍼 로저스(Christopher Rogers)는 ‘무중력 환경’을 다이빙의 첫 번째 매력으로 꼽는다. 올해 쉰 살인 그는 마흔다섯 살에 오픈 워터 자격증을 땄다. 다이빙 자격증은 발급기관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대강 오픈 워터, 어드밴스드 오픈 워터, 레스큐, 다이브 마스터, 인스트럭터, 마스터 인스트럭터 등의 단계가 있다. 그 위에도 레벨이 있지만 그건 제다이와 마스터 요다의 세계 같은 거라 알 사람만 알면 된다. 다이브 마스터부터는 직업 다이버에게 필요한 것이므로, 크리스토퍼는 로그수가 충분함에도 자격증 갱신에 열을 올리는 대신 누사페니다에 살면서 취미로 다이빙을 한다. 오픈 워터만 따도 다이빙 컴퓨터와 웨트수트를 사 들이고는 “다이빙은 돈이 많이 드는 스포츠야.”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에게는 어떤 장비도 없다. “그건 내 스타일이 아니에요.” 그에게 다이빙은 일상적인 취미다. ‘오늘 날씨도 좋은데 바다에나 나가볼까?’ 하고 어슬렁어슬렁 동네 다이빙 숍에 가서 투어에 합류하는 식이다.

“내게 다이빙의 매력은 한마디로 ‘무중력 상태에서 떠다니는 것’입니다. 매우 평화롭고 신비로운 경험이죠. 차원을 건너뛰는 것처럼요. 특히 나이트 다이빙을 할 때는 우주인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위아래조차 분간하기 힘들고, 내가 라이트로 비추는 부분 외에는 무한대의 어둠과 고요가 펼쳐져 있어요. 물론 물속 세계에도 소리가 있어요. 하지만 지상과는 다른 소리들이죠. 그 순간 라이트에 집중하면 새로운 것들이 보입니다. 낮에는 볼 수 없었던 해양 생물들의 새로운 면모를, 더욱 자세하게, 완전히 새로운 시각에서 볼 수 있어요.”

이런저런 매력에도 불구하고, 처음 바다에 뛰어들기까지는 큰 결심이 필요하다. 무시무시한 호흡기와 공기 탱크, 뻑뻑한 웨트수트, 물속에서 호흡기를 놓치면 어쩌나, 장비가 고장 나서 공기가 제대로 공급되지 않으면 어떡하지, 만약의 사태에 혼자 물 위로 돌아올 수 있을 만큼 내 수영 실력이 괜찮나, 조류에 휩쓸려 떠내려가지는 않을까, 패닉이 오거나 쥐가 나거나 고막이 터지면 어쩌나, 상어한테 물릴지도 몰라…. 오만 가지 걱정이 앞선다. 특히 생활 체육에 익숙지 않은 한국 여자들로서는 쉽게 도전정신이 들지 않는다.

“장비들은 완전히 안전합니다.” 남아프리카 출신 여성 다이브 마스터 레이첼 도허티(Rachel Dougherty)의 말이다. 사고는 대개 뻔한 안전 규정을 무시하다가 발생한다. 예컨대 여기서도, 외지에서 온 다이빙 투어 보트가 일정을 맞추려고 조류가 높은 날 무리해서 손님을 입수시켰다가 인명 사고가 난 적 있다. 하지만 믿을 만한 강사를 찾고 그들의 지시에 철저히 따르는 한, 당신이 상상하는 사고들은 거의 벌어지지 않을뿐더러, 설령 그런 순간이 온다 해도 혼자 해결할 필요도 없다. 다이빙 가이드는 귀찮을 정도로 당신의 상태를 체크하고, 당신이 눈치 못 챈 문제까지 파악해서 대처할 것이다. 특히 당신이 초보자라면 스스로 해야 할 건 호흡뿐이다.

레이첼은 다른 여성 다이버들과의 교류가 용기를 더해줄 거라고 말한다. 그는 회원이 2만 명 남짓한 페이스북 커뮤니티 ‘걸스 댓 스쿠바(Girls That Scuba)’를 추천했다. 다양한 레벨의 전 세계 여성 스쿠버들이 서로를 격려하고 다이빙 트립을 조직하고 정보를 교환하는 곳이다. “경쟁하고 잘난 척하고 그런 거 전혀 없어요. 철저하게 우호적인 분위기예요. 여자들끼리니까 뭐든 물어볼 수도 있죠. 웨트수트에 대해서든 여행 친구 찾기든.” 레이첼은 다이빙의 또 다른 결정적 매력 한 가지를 상기시킨다. “지상과 다른 환경에서 다른 방식으로 호흡하는 건 분명 일종의 도전이에요. 하지만 그 도전을 해내고 나면 당신은 자신이 더 강해졌다는 느낌을 받을 겁니다. 그게 정말 기분 좋죠. 일단 물속에 들어가 거품을 만들어보세요. 딱 한 번 시도해보는 거예요. 평화롭고 고요하고 편안한 세계가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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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디터|김 지선,사진|Getty 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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