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세먼지로 뒤덮인 뿌연 하늘에 기분마저 우울한 아침, 아파트 31층에서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와 차에 시동을 건다. 서울 도심 한가운데 위치한 회사까지 40여 분 남짓 달려 출근을 한다. 창문도 열지 못하는 답답한 사무실에서 미팅을 연달아 하고, 원고와 씨름을 하며 야근을 한다. 게다가 손에는 하루 종일 아이폰을 풀로 붙인 듯 밀착시켜 전자파를 온몸으로 흡수하고, 통장은 마이너스 상태를 면치 못하는 것이 현실. 이렇게 쓰고 보니 참으로 팍팍한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최근 들어 남편과 아이와 함께 종종 외곽으로 캠핑을 떠나기 시작했다. 짧게나마 자연 속에서 시간을 보내면 도시의 일상과 트렌드의 최전선에서 받은 스트레스가 조금은 치유되는 느낌이 든다. 자연에서 온 인간이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려는 회귀 본능 때문일까. 이렇게 도시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이 다시 자연을 찾는 움직임, ‘그린’은 여전히 화두의 상위권을 차지한다.
동시대의 그린 트렌드는 미래 생존을 위한 지속 가능성도 동반되어야 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삭막한 아파트에 살며, 대화하지 않아도 스마트폰으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도시인들이 다시금 흙과 나무가 주는 에너지와 생명력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것. 그래서 요즘 TV를 켜면 모든 것을 훌훌 털어내고 자연으로 돌아간 사람들, 인적 없는 숲속에서 오프그리드(Off Grid) 삶을 사는 셀러브리티들, 지천에 널린 나물을 캐서 밥상을 차리는 남자들이 등장하는 프로그램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스튜디오 밖으로 나와 자연을 보여주고 그 속에 융화되는 사람들을 등장시켜 대리만족을 주려는 것이다.
패션계에서도 이러한 건강한 휴식과 행복한 경험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스몰 럭셔리, 즉 그린 트렌드를 감지할 수 있다. 우선 이번 시즌 샤넬은 그랑 팔레에 프랑스 남부 지역의 조르주 뒤 베르동 협곡의 거대한 절벽과 폭포, 강을 고스란히 재현했다. “물에서 나오는 분자는 건강에 정말 좋답니다.”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는 대자연에서 느꼈던 행복감을 전하고 싶었다고.
조경 디자이너 미란다 브룩스는 뉴욕의 어퍼이스트사이드에 위치한 쿠퍼 휴이트 디자인 뮤지엄 정원에 나무를 가져다 미로 정원으로 만들었다. 이 푸르른 런웨이에 오른 토리 버치의 편안하면서도 루스한 실루엣의 옷들은 동시대적인 라이프스타일을 보여주고 있다.
디자이너 스텔라 매카트니는 환경에 나쁜 영향을 덜 미치며, 지구를 살리기 위한 아이디어 개발에 힘을 써왔다. 인조가죽과 대체 모피를 개발해왔고, 이번 시즌에는 ‘스킨-프리스킨’이라 이름 붙인 신소재로 만든 룩을 선보였다. 유연하고 부드러운 캐멀 컬러의 페이크 레더는 진짜보다 더 고급스러워 보인다는 사실.
뿐만 아니라 다양한 패션 브랜드들이 업사이클을 통해 패션은 소모적이고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친환경적이며 지속 가능하다는 인식 전환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아디다스는 해양 플라스틱 폐기물로 만든 ‘오션 플라스틱’ 소재를 다양한 제품에 활용하고 있으며, 파타고니아는 버려진 페트병을 재활용해 만든 스냅티를 매년 선보인다. 또한 제작 과정에서도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는 노력과 동시에 매년 매출의 1%를 환경보호 활동에 지원하고 있다고. 유니클로는 ‘옷의 힘을 사회의 힘으로’라는 타이틀의 2018 지속가능경영 보고서를 발표했다. 2020년까지 상품의 위험 화학물질 배출량 제로(0)에 도전하는 프로젝트와 내수 발수 가공제이자 유해 성분인 PFC 사용을 중지하겠다고 선언했다. H&M 역시 해양 폐기물로 제작한 재활용 폴리에스터 바이오닉과 유기농 실크와 면을 사용하고 있으며, 2030년까지 재활용 가능한 소재를 100%로 끌어올리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자라 역시 유기농 코튼과 텐셀 리오셀 같은 자연 친화적 소재로 제작한 ‘조인 라이프’ 컬렉션을 선보이고 있으며 기존 매장보다 에너지와 물 소비를 30% 이상 줄인 친환경 매장도 운영 중이다.
자연을 갈망하는 것을 넘어서 환경과 윤리를 고려한 지속 가능한 패션은 미래 세대를 위한 사회적 가치라 할 수 있다. “삶을 단순화하고 즐길 수 있는 시간을 찾고 싶었어요. 우리의 목표는 사람과 환경 그리고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에게 지속 가능성을 제공하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가 그 길을 함께 가면서 살아가고, 서로 즐길 수 있을 테니까요.” 하반기 국내 론칭 예정인 스웨덴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그라닛(Granit)의 창립자 아네트 요르뫼스(Anett Jorméus)와 주자네 일옌베리(Susanne Liljenberg)의 말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