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사주
19세기 중반, 파리의 ‘신유행품점’들은 대부분 오늘날 백화점의 원형이라고도 할 수 있는 ‘아케이드’에 늘어서 있었다. 풍성한 채광과 우아한 대리석 장식을 자랑하던 이 아케이드의 곁가지들은 저마다 이름을 달리했다. ‘파사주(Passage) 콜베르’, ‘파사주 비비엔’. 파리 시민들은 파사주에 모여 앉아 식사나 와인을 하며 시간과 공간을 공유했다. 볕 좋은 ‘파사주 합정동’은 21세기 서울러들에게 골목 안 살뜰한 모임 공간이 될 전망. 꼬맹이 시절부터 오락기보단 도마 앞에서 설레었다는 이병곤 셰프는 신세계푸드 상품개발팀과 파리 유학을 거쳐 어엿한 셰프가 됐다. 오늘의 앙트레(Entrée)는 디종머스터드와 아이올리소스를 요 삼고 두툼한 치즈 슈레드와 베이컨 크럼블을 이불 삼은 아스파라거스. 토핑 사이로 머리와 발만 내민 채 가지런히 누운 아스파라거스 무리가 온화하고 겸손한 이병곤 셰프를 닮아 있다. 아빠와 아들처럼, 셰프와 요리는 닮나 보다. 플라(Plat)는 그 이름도 싱그러운 ‘봄의 리조토’. 점도가 덜한 리조토용 쌀보리에 꽃망울 여물듯 툭 터뜨린 반숙 달걀 노른자를 슬며시 버무려 한입 넣으면 여름도 봄, 겨울도 봄이 된다.
ADD 서울시 마포구 합정동 369-32
TEL 02-332-8994
INSTAGRAM @passageseoul
롱침
방콕의 미쉐린 스타 셰프 데이비드 톰슨의 지휘 하에 있다는 사실 말고도 우리가 롱침을 찾아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태국 요리를 태국 요리답게 만드는 식재료들. 그간 국내 조달에만 만족해야 했던 실정에 롱침이 세관 문을 열며젖히며 종지부를 찍었다. 프레시한 현지 재료로 꾸려지는 롱침의 식탁은 사뭇 다르다. 구운 새우와 고수를 듬뿍 올려 팬째로 오븐에 구워낸 베이크드 프론은 비주얼과 맛을 알맞게 겸비한 롱침의 아이유. 가느다란 글라스누들을 포크에 한 움큼 말고 통새우를 껍질째 쿡 찍어 한입에 밀어넣어보자. 보들보들 간간한 누들과, 속은 포슬포슬 겉은 바삭한 새우의 케미가 기막히다. 신나는 저작운동에 입이 텁텁할 때쯤 피시덤플링 락사 국물을 한 숟갈 후루룩. 매일 아침 롱침 키친이 제조하는 수제 코코넛 크림의 고소함과 맵싸한 칠리의 풍미가 대번에 입속을 개운하게 훔쳐준다. 페어링한 수박 칵테일이 파도처럼 식도 너머로 미끄러지면 비로소 고개를 든다. 태국 그래피티 아티스트 알렉스 페이스의 알렉스 버니가 두 눈, 아니 세 눈을 게슴츠레 뜨고 주시 중이다. 눈을 왜 그렇게 뜨냐며 노여워 말자. 우리 또 볼 거란 버니의 선견(先見)일지도.
ADD 서울시 마포구 서교동 354-5
TEL 02-330-7700
카라반 베이커리
이제 언제든 ‘사워도’를 씹고 뜯고 맛볼 수 있는 한남동 주민들은 좋겠다. 카라반 베이커리가 합정점과 도산공원점에 이어 올해 유엔빌리지길에 세 번째 둥지를 틀었다. 열한 살 소녀 시절부터 <하퍼스 바자>의 애독자였다는 오너가 말갛게 웃으며 맞이한다. 그녀가 오랫동안 거주하던 호주에서는 반죽을 발효시켜 만드는 건강한 빵이 지극히도 자연스러웠다. 그 특유의 담백하고 고소한 풍미는 물론, 쑥쑥 소화도 잘 되는 발효 호밀빵을 한국에서도 매일 아침 먹고 싶었단다. 더구나 고사리손을 한 딸이 커다란 로프를 야무지게 뜯어 금세 뚝딱 할 만큼 사워도를 사랑한다고. ‘사워도(Sourdough)’는 젖산과 초산이 주성분인 산성 반죽을 말한다. 사워도란 이름이 우리에겐 좀 낯설어도, 사실 인류가 빵을 만들어 먹기 시작할 때부터 시작된 유서 깊은 제빵 레시피다. 트렌디한 ‘핫 스팟’보다 따뜻한 ‘커뮤니티의 일원’을 지향한다는 카라반 베이커리 한남점에 들러 바쁜 일상의 숨을 고르자. 데 쿠닝이 떠오르는 호주 작가 얀 파스코 화이트의 그림, 햇살 한 줌 같은 오너의 미소가 우릴 반겨줄 테니.
ADD 서울시 용산구 한남동 274-13
TEL 02-749-2272
INSTAGRAM @caravanbake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