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전 여름, 소녀시대의 ‘Divine’ 뮤직비디오 속에서 옅은 미소를 짓고 있던 맑은 얼굴의 소녀가 있었다. 조심스럽게 그리고 조금씩 자신의 감정을 쏟아내던 그 소녀는 배우 카라타 에리카가 난생 처음으로 연기한 캐릭터였다.
“그 작품이 저의 첫 연기 경험이었어요. 그전까지는 연기를 해본 적도, 레슨을 받아본 적도 없었거든요. 그런데 막상 하고 나니 왠지 ‘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연기가 어떤 것인지도 몰랐는데 말이에요. 모르니까 알고 싶더라고요.”
한없이 수줍고 여려 보이는 그녀가 배우로서의 삶을 결정한 이유는 의외로 간단했다. 궁금증이었다. 그리고 결정을 하기가 무섭게 드라마 <사랑하는 사이> <오모테산도 고교 합창부!> <블랭킷 캣> 등에 캐스팅되었고, 그녀는 자신의 궁금증을 해소하는 동시에 필모그래피를 탄탄히 채워나갔다. 카라타 에리카가 국내에 얼굴을 알린 건 뮤지션 나얼의 ‘기억의 빈자리’ 뮤직비디오를 통해서다. 헤어진 연인의 빈자리를 무엇으로도 채우지 못한 채 눈물을 흘리는 연기를 본 사람들은 하나같이 그녀의 정체를 궁금해했고, 그녀의 인스타그램을 팔로했다. 그렇게 한국과 일본에서 맑고 청순한 캐릭터를 가진 배우로 인식되는 사이, 카라타 에리카는 자신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첫 영화 <아사코 I&II>를 만났다. 그리고 이 영화를 통해 제71회 칸 영화제에 참석한다.
첫 영화로 칸 영화제에 가게 되었어요. 칸에 간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어떤 반응을 보였나요?
대박! (그녀는 질문을 듣자마자 한국말로 ‘대박’이라고 답했다.) 당연히 믿을 수 없었어요. 칸에 가기로 결정된 날 생일파티가 있어 영화를 찍은 팀이 다 같이 모이게 됐어요. 감독님이 기분이 어떠냐고 물어보셨는데, “야바이(‘미쳤나봐’ 혹은 ‘대박’)”라는 말만 나왔죠. 감독님이 칸에 가서 인터뷰할 때는 절대 그 말을 쓰지 말라고 하셨어요.(웃음)
반응을 보니까 영화가 더 궁금해지네요. 어떤 내용의 영화인가요?
어른들의 연애 이야기예요. 아사코라는 여자가 운명이라 생각하고 사랑했던 남자가 있었어요.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그가 사라지고, 2년 뒤 그 남자와 똑같은 외모를 가진 전혀 다른 사람이 나타나 사랑을 갈구해요. 아사코는 이전에 사랑했던 사람의 얼굴과 똑같이 생겼다는 말은 하지 못한 채, 새로운 남자와 결혼 직전까지 가죠. 그 상황에서 예전에 사랑했던 그 남자가 갑자기 눈앞에 나타나요. 이 세 사람이 어떤 감정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는지를 보여주는 영화예요.
줄거리만 들었을 때는 영화 제목이 똑같은 외모를 가진 두 남자 ‘바코 & 료헤이’여야 할 것 같아요. 그런데 제목이 <아사코 I&II>라는 건, 아사코라는 여자가 스토리의 키를 쥐고 있다고 추측해도 될까요?
사실 영화 자체가 아사코의 감정을 기본 축으로 진행돼요. 영화 촬영이 다 끝나고 나서 남자 주인공이 “이건 카라타 영화 아니야?”라는 말을 한 적이 있기도 하고요.(웃음) 감사하게 실제 촬영 현장에서도 제가 아사코로 살 수 있도록 저를 중심으로 하는 환경을 만들어주셨어요.
아사코를 연기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건 무엇이었나요?
처음 촬영을 시작할 때 감독님이 해주신 말이 있었어요. “주위 사람들에게 많이 기대고, 그들의 연기를 최대한 많이 봐라. 만약 보면서 직접적으로 상대의 연기를 마주하는 것이 힘들면,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라. 그리고 느낀 그대로를 연기 하면 좋겠다.” 감독님의 말을 믿고서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정말 배우들의 연기에서 받은 느낌 그대로를 표출했어요. 그런 걸 경험하면서 연기에 대한 생각이 긍정적으로 바뀐 것 같아요. ‘이렇게 연기를 해도 괜찮은 거구나’라고 생각하게 됐죠. 연기에 대한 즐거움도 처음으로 느꼈고요.
첫 영화라는 것 외에도 배우로서 살아가는 데 굉장히 유의미한 작품을 만난 거네요. 혹시 감독님에게 왜 자신이 아사코가 되었는지 물어본 적 있나요?
오디션을 볼 때, 감독님께서 대본을 주시며 감정을 넣지 말고 글자 그대로 읽어보라 하셨어요. 그래서 정말 글자만 읽었던 것 같아요. 나중에 붙고 나서 듣게 된 이야기인데, 감독님이 이 사람의 목소리는 믿을 수 있을 것 같다고 하셨대요. 이후에 제가 대본을 읽으면서 느낀 건 아사코라는 캐릭터 자체가 저랑 굉장히 닮았다는 거였어요. 원작소설을 읽었을 때 아사코는 거짓말을 할 수 없는 캐릭터라고 생각했는데, 그 부분에서 왠지 저 같다고 느꼈거든요. 그래서 처음으로 맡은 주연인데도 너무 어렵고 힘들지 않게 편하게 연기할 수 있었어요.
새로운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 같아요. 호기심이 많아서요. 잘 모르는 건 알고 싶어하는 성격이거든요. 그래서 생각을 바로 행동으로 옮기는 편이에요.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전작인 <해피 아워>와 이번 작품 <아사코 I&II>는 전혀 다른 작품이지만, 갑자기 누군가가 떠나버리고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는 점에서 닮아 있기도 해요. 남겨진 사람인 ‘아사코’의 상황과 감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했나요?
아사코는 자신의 ‘어떤 행동’으로 인해 스스로의 행복을 놓쳐버리는 사람이에요. 사실 저는 그런 상황은 겪어본 적이 없어 처음에는 좀 어렵게 느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스토리의 흐름 순으로 촬영이 진행되어서, 실제로 그 상황에 빠져 제가 느낀 그대로 연기할 수 있었어요. 아사코의 감정 중에서 중요한 건 괴로움이라고 이야기해야 할까요? 아, 그건 틀린 것 같아요. 그보다 좀 더 복잡한 무언가인 것 같아요. 아사코라는 캐릭터는 사실 영화 안에서 남겨진 사람이자 떠난 사람이기도 하고, 나중에는 쫓아가는 사람이기도 했어요. 그래서 여러 가지 감정을 느낄 수 있었죠. 아사코가 떠난 사람이 되었을 때엔 주위 사람들을 생각하지 못하고, 자기만 생각할 수밖에 없던 상황이었어요. 확실한 건 그때 무서운 감정을 느꼈다는 거예요.
촬영을 끝내고 영화 밖으로 나온 상황에서 아사코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영화를 보면 아시겠지만 아사코는 최악의 행동을 하기도 했어요. 그렇지만 만약 그런 순간이 없었다면, 그런 행동을 하지 않았다면, 그녀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을 거예요. 그 행동이 아사코라는 캐릭터의 시작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최악의 선택이었지만, 그럼에도 자신을 믿고 행동하면 좋겠다는 말을 전하고 싶어요.
이 작품을 하면서 연기하는 즐거움을 찾았다고 했는데, 어떤 순간에 연기의 재미를 느끼는 편인가요?
처음 연기를 시작했을 때에는 감정적인 부분보다 어떻게 보일지에 대해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늘 ‘이렇게 하면 이렇게 보이겠구나’에 대해서 고민했거든요. 그런데 이번 작품을 하면서 제가 느끼는 그대로, 감각적으로 연기하는 걸 경험해보며 이런 방식이 저한테 더 맞고 또 연기가 재미있다고 느꼈죠. 계산하지 않고 감정 그대로 표출하는 것에 즐거움을 느끼는 것 같아요.
재미있고 매력적인 것을 만났을 때에는 어떤 태도를 취하나요? 적극적으로 도전하는 편인가요? 아니면 흐름에 맡기는 편인가요?
작품이 결정되고 준비하는 기간에는 주위의 내가 믿는 사람들과 어울리며 그 흐름 안에서 최선을 다하는 스타일이에요. 하지만, 결정되기 전에는 좀 적극적인 것 같아요. 얼마 전에 정말 큰 충격을 받을 정도로 대단한 영화를 봤는데, 영화가 끝난 뒤 진행되는 무대인사 이벤트에서 영화 포스터를 사면 감독님 사인을 받을 수 있다는 거예요. 줄도 길었고, 포스터도 꽤 비쌌는데 감독님을 뵙고 싶어서 포스터를 사서 기다려 사인을 받았어요. 심지어 감독님이 알아봐주시기에 “같이 영화하고 싶어요.”라고 적극적으로 어필했어요. 그런 걸 보면 아마도 제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선 적극적인 스타일인 것 같아요.
보여지는 모습에 비해 실제 성향은 꽤 대담한 것 같네요. 한국에서의 활동도 케이팝을 좋아해 회사에 적극적으로 어필했다고 들었어요.
초등학교 시절 일본 음악방송에 나온 빅뱅을 보고 충격을 받았어요. 한동안 빅뱅이랑 소녀시대를 좋아했고, 지금은 갓세븐을 엄청 좋아해요. 그래서 연기를 시작하면서 한국과 연결된 일이 있으면 하고 싶다고 적극적으로 피력했어요.(웃음)
다른 환경에서 활동하는 것은 사실 쉽지 않은 도전이에요. 새로운 환경에 잘 적응하는 편인가요?
새로운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 같아요. 호기심이 많아서요. 잘 모르는 건 알고 싶어하는 성격이거든요. 그래서 생각을 바로 행동으로 옮기는 편이에요. 물론 그러고 나서 ‘조금 더 고민해볼걸’ 하고 돌아보기도 하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