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아트를 느껴볼려면 이곳을!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Art&Culture

홍콩 아트를 느껴볼려면 이곳을!

일주일이 유독 짧았다. 6회를 맞은 아트 바젤 홍콩을 기점으로 올해의 핫 스팟 H 퀸스 빌딩, 홍콩 아트 신의 뉴 웨이브로 떠오르는 웡척항, 구룡반도에 새로운 비전을 쓰고 있는 웨스트 카오룬 컬처럴 디스트릭트까지 홍콩은 아시아 최고의 아트 전진기지, 아시아를 너머 전 세계의 문화적 수도로 거듭나고 있다.

BAZAAR BY BAZAAR 2018.05.23

H 퀸스 빌딩은 각 갤러리 플로어에서 파사드를 통해 작품 운반이 가능한 리프팅 시스템을 특징으로 한다.

Central

스위스 바젤 아트 페어가 아시아 거점으로 2013년부터 시작한 아트 바젤 홍콩이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는 동안 세계의 금융, 건축, 패션, 아트가 집약적으로 모여 있는 센트럴 지역의 갤러리들 역시 확장과 신축을 거듭해왔다. 컬렉터, 미술계 관계자, 관람객들은 우선 아트 바젤 홍콩이 열리는 완차이 지역의 홍콩컨벤션센터를 정복한 뒤 센트럴 지역의 갤러리 빌딩을 순회하는 것으로 일정을 잡는다. 페로탱, 화이트 큐브, 가고시안, 리먼 머핀 등이 이 지역에 자리한 월드 클래스 갤러리다. 그리고 이번 아트 바젤 기간에 H 퀸스(H Queen’s) 빌딩의 갤러리 여러 곳이 동시에 문을 열었다. “사실상 센트럴 지역에는 페더 빌딩을 제외하고는 거대한 작품들을 들여올 수 있는 알맞은 천장 높이와 시설을 갖춘 건물을 찾기 힘듭니다.” 홍콩 베이스 건축가로 아트 컬렉터이기도 한 윌리엄 림은 <아트 뉴스페이퍼>에서 이렇게 말하며 3.5~4m 높이의 천장, 커튼 월 입면을 통해 작품을 용이하게 갤러리 안으로 들여올 수 있는 리프팅 시스템을 고안해 설계한 H 퀸스를 소개했다. 작품을 담은 거대한 나무 상자가 헬기에 들려 갤러리의 파사드를 통해 안으로 옮겨지는 사진이 귀엽게 보였다.

'Mark Bradford' 전시 전경, Hauser & Wirth Hong Kong, 2018 ⓒ Mark Bradford Courtesy the artist and Hauser & Wirth Photo: JJYPHOTO

아트 위크 동안 H 퀸스 빌딩의 엘리베이터를 타기 위해선 줄을 서야 했다. 특히 아트 바젤 Vip 오프닝 하루 전인 3월 26일에는 빌딩 전체가 오프닝 행사로 들썩거렸다. 이럴 땐 제일 높은 곳부터 훑는 게 최선이다. 15층, 16층에 자리한 하우저 & 워스에서는 지난해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미국관을 꾸린 마크 브래드포드의 신작 회화를 선보였다. 브래드포드는 오래전부터 ‘지도’ 모티프를 다뤄왔다. “나는 언제나 커뮤니티라는 개념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특정 그룹을 가장 근본적인 방식으로 구분하는 것이지요. 전통적으로 지도는 정보 도구입니다. 그러나 지도의 인쇄된 라인 속에 감춰진 것이 무엇인지에 관해 질문해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작가는 환승 지도, 광고, 유가증권에 사용되었던 오래된 지도를 참고해 도시 레이아웃을 주관적으로 표현했다. 캔버스 표면을 레이어링하고 찢고 표백하고 색색의 줄을 네크워크처럼 사용한, 멀리서 봤을 땐 고운 컬러의 거대한 회화작품들은 우리 사회의 시스템이 어떻게 소외 당하는 이들 위에 군림하는지 고발한다.

'Refutation' 전시 전경, Tang Contemporary Art, 2018 ⓒ Ai Weiwei Courtesy the artist and Tang Contemporary Art

나라 요시토모의 사랑스러운 세라믹 작품들을 소개한 12층 페이스 갤러리를 지나(모든 작품이 판매되었다는 얘기가 들려왔다.) 10층에 위치한 탕 컨템퍼러리로 내려갔다. 길이 60m, 폭 3m의 보트에 258명의 난민 피겨를 가득 태운 작품이 미끈한 자동 유리문이 열림과 동시에 위압적으로 관객을 맞이했다. 오늘날의 정치적 상황에 대해 다양한 매체를 이용해 강력한 미적 진술을 쏟아내는 중국 작가 아이 웨이웨이의 작품이었다. 전시 제목도 직설적으로 ‘Refutation’. 중국 정부로부터 블로그가 강제 폐쇄되고 폭행을 당하는 등 고초를 겪으며 작품 활동을 해온 웨이웨이는 2011년 베이징 공항에서 출국 심사를 받다가 중국 경찰에 끌려가 3개월 동안 수감되었다. 풀려난 후 여행의 자유의 빼앗긴 채 베이징에 갇혀 살다가 2015년 베를린으로 이주했다. 그리고 그해 그리스에 갔다가 작가는 실제 난민들을 태운 보트가 해안가에 도착하는 것을 목격했다. 타의에 의해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는 6천5백만 명의 난민들과 감정적인 관계를 맺게 된 웨이웨이는 얼마 후 아니시 카푸어와 함께 난민에 대한 세계인의 도움을 촉구하며 런던의 피카디리 거리를 행진하기도 했다. 시커먼 ‘노아의 방주’ 맞은편 벽면에는 검정 바탕에 단순한 선을 이용해 오디세이부터 유럽에서 발생하고 있는 다양한 종류의 폭력, 시리아 난민 캠프에서의 삶을 관통한 그림이 그려져 있다. 그리고 그 옆에는 같은 이야기를 매체를 달리해 6층으로 쌓은 도자기 꽃병으로 변주한다. 신화와 역사 그리고 현실을 유려하게 엮어낸 웨이웨이. 그는 자신을 ‘하이엔드 난민’으로 지칭하며 불굴의 실천적 미술을 강행하고 있다.

볼프강 틸먼스, ‘Argonaut’, 2017 ⓒ Wolfgang Tillmans Courtesy David Zwirner, New York/HongKong, Galerie Buchholz, Berlin/Cologne, and Maureen Paley, London 2017

이틀 뒤엔 데이비드 즈워너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선보인 볼프강 틸먼스와 큐레이터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의 토크가 있었다. 2000년에 터너 상을 수상한 최초의 사진작가인 볼프강 틸먼스만큼 젊은 세대 예술가들에게 영향을 준 작가는 없을 것이다. 1990년대 초부터 틸먼스의 사진작품은 친밀감과 장난기를 기존 가치와 계급에 대한 질문과 결합해왔다. 적외선 자화상, 사진 복사 기계로 만들어낸 추상 사진, 비행기에서 찍은 사하라 사막 등이 산재한 전시를 찍어 인스타그램에 올리자 내가 아는 대부분의 패션 포토그래퍼들이 부럽다고, 틸먼스를 너무 좋아한다고 메시지를 보내왔다. 데이비드 즈워너는 이번 전시에 그가 어떤 작품을 가져올지 정확히 몰랐다고 하는데, 틸먼스가 구성한 프레젠테이션의 미적 요소가 세월이 지나도 낡지 않을 영원한 동시대적 감각처럼 느껴졌다. 아마도 포토그래퍼들은 특히 틸먼스 그런 재능을 경외하는 게 아닐까? 이미지가 차고 넘치는 시대에 사진을 찍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틸먼스. 그는 작품이 인쇄된 종이 그 자체의 물성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것 같다. 아트 북 편집에도 특별히 신경을 쓰고 정기적으로 잡지에 기고하는 일도 놓지 않는 걸 보면. 토크 후 가진 도록의 북 사인회에서 여전히 잡지를 만드는 한 사람으로서 존경한다고 말하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다.

 

Wan Chai 

홍콩에 머무는 일주일 동안 완차이 지역의 호텔에 머물렀다. 아트 바젤 홍콩이 열리는 컨벤션센터를 동네 마실 가듯이 드나들 수 있는 위치였기 때문이다. 아트 위크의 메인 디시인 아트 바젤 부스들을 하루에 다 둘러보기란 애당초 불가능하다. 한껏 드레스업하고 아트 쇼핑에 나서려는 이들에게 유언처럼 전하고 싶은 한마디는 이거다. “운동화를 신을 것.” 올해는 32개 국가의 248개 갤러리들이 아트 바젤 홍콩에 참여했다.

접근성과 시장성이 좋은 아트 바젤 홍콩은 한국의 갤러리들에게도 매혹적인 시장이다. 올해는 국제 갤러리, PKM 갤러리, 리안 갤러리, 아라리오 갤러리, 학고재 갤러리, 갤러리 바톤, 조현 화랑 등의 한국 갤러리들이 부스를 차렸다. “한국 미술계가 통째로 이곳에 옮겨온 것 같다”는 말이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많은 아트인들이 홍콩을 방문하였는데, 이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VIP 오프닝 첫날의 분위기가 그 어느 때보다 활기찼다고 말했다. 작년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로 붐볐고, 세일즈도 좋았다고 말이다. 아트 위크 기간 이후 발표된 아트 바젤 리포트에서 페이스 갤러리 대표 마크 글림처는 이렇게 말했다. “올해는 홍콩이라는 도시와 아트 바젤의 진정한 전환점이 되는 해인 것 같습니다.”

신디 셔먼의 작품들로 꾸민 메트로 픽처스 부스. 1976년대 작품부터 할리우드의 황금 시대에서 영감을 얻은 최근의 작품들까지 볼 수 있는 작은 회고전과 같았다.

자신의 설치작품 안에 누워 있는 퍼포먼스를 선보인 덴마크 아티스트 릴리베트 쿠엥카 라스무센(Lilibeth Cuenca Rasmussen).

페어장을 방문하니 마켓의 열기를 고스란히 체감할 수 있었다. 가장 놀라운 것은 일반인에게도 전시가 오픈된 공식 개막일의 풍경이었다. 마치 슈프림에서 무언가가 출시되는 날처럼 긴 행렬이 컨벤션센터를 여러 겹으로 둘러싸고 이어졌다.

페어장에 들어서자 전 세계에서 온 세련된 컬렉터와 미술 애호가들은 신중하게 작품을 응시하고 있었고, 실제로 판매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증거로 곳곳에서 가격을 흥정하는 소리도 들려 왔다. 아트 작품 또한 돈에 의해 움직이는 상품이라는 것, 그리고 이곳이 홍콩이라는 사실을 새삼 실감하게 하는 장면이었다.

흥정에 익숙한 중국 문화권의 고객들은 ‘네고’를 원하고, 더 이상 아시아의 구매력에 의심을 가지고 있지 않은 전 세계의 갤러리스트들은 열정적인 태도로 고객과의 협상에 나선다. “당신만을 위한 좋은 가격이 준비되어 있다”는 말과 함께. 이곳에서는 협상도 예술이다.

레비 고비 갤러리에서 판매한 빌럼 데 쿠닝의 ‘Untitled XII’.

페어장의 1층에는 데이비드 즈워너, 리먼 머핀, 가고시안, 페이스, 레비 고비, 하우저 & 워스, 빅토리아 미로, 국제 갤러리 등의 주요 갤러리 부스가 모여 있었다. VIP 오프닝 첫날, 두어 시간 만에 빌럼 데 쿠닝의 1975년도 작품(마이크로소프트 공동 설립자인 폴 앨런이 판매하기 위해 내놓은 것이라고 한다)을 3천500만 달러(약 374억 5천만원)에 판매하는 기록적인 성과를 낸 레비 고비 갤러리의 공동 설립자 브렛 고비는 이렇게 말했다.

“저희 팀에게는 환상적인 시간이었죠. 시작 전에도 홍콩에 대해 낙관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지만, 오픈 직후에 컬렉터와 재단, 그리고 관람객의 열정과 수준에 또 한번 놀랐어요. 이 지역의 컬렉터 커뮤니티는 놀랍도록 확장하고 있어요.”

레비 고비 갤러리는 ‘이번 페어에서 가장 비싸게 팔린 작품’ 이외에 명상적인 추상 작업을 하는 팻 스티어(Pat Steir)의 회화작품도 들고 왔다. 팻 스티어의 ‘For Hong Kong’ 시리즈로 꾸민 작은 룸은, 작품과 인간 양쪽 모두가 미어터질 정도로 소란스러운 페어장 한복판에서도 잠깐의 고요한 시공간을 선사했다. 반면 데이비드 즈워너 부스에 설치된 제프 쿤스의 작품 ‘Bluebird Planter’는 마치 페어장을 찾은 사람들을 맞이하는 쾌활한 호스트 같았다. 이 작품은 모든 이들의 ‘셀피존’이 되었다. 실제로 제프 쿤스는 올해 아트 바젤 홍콩 쇼의 아이돌이나 다름없었다. 아트 위크 기간 중 어퍼 하우스에서 열린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와의 토크에서 번쩍이는 작품만큼이나 번뜩이는 언변을 보여준 그는 페어장에 설치된 자신의 작품 앞에서 재기발랄한 포즈로 사진을 찍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다.

제프 쿤스의 작품이 전시된 데이비드 즈워너 부스 전경.

아포스토로스 조르지오(Apostolos Georgiou)의 회화작품이 걸린 gb 에이전시 부스.

아티스트 황롱파(Morgan Wong)는 A+ 컨템퍼러리 부스에 인상적인 문구를 새겨 놓았다.

취리히 갤러리 마이 36 갤러리(Mai 36 Galerie)의 부스 전경.

노부부 컬렉터들이 많던 스위스 아트 바젤과 달리 홍콩에서는 젊은 컬렉터들도 많이 눈에 띄었는데, 실제로 아트 바젤 홍콩의 고객층에는 미술품에 대한 안목과 취향을 가지고 있는 거부의 자녀들과 경제 허브 홍콩에서 일하는 20~30대 전문직 종사자들이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페어장은 보수적인 성향의 컬렉터의 구미에 맞는 작품뿐 아니라 진취적인 발견을 즐기거나 아카데믹한 태도로 작품을 들여다보는 컬렉터들을 위한 작품들도 채워져 있다.

아시아의 갤러리들이 모여 있는 인사이트(Insights) 섹션을 훑으면서 아시아 아트의 맥락을 들여다보거나, 신진 갤러리들이 모여 있는 디스커버리(Discovery) 섹션에서 유명한 누군가가 아닌 나에게 의미가 있는 신진 작가의 작품을 찾아 보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었다.

올해 처음으로 아트 페어에 참여한 코먼웰스 앤 카운실(Commonwealth and Council) 부스에서 만난 소더비 인스티튜트 교수 김기범은 갈라포라스 킴이라는 흥미로운 작가를 소개해주며 이렇게 말했다.

“백인 남성이 아닌 소수자에 해당하는 작가들의 목소리를 내는 갤러리예요. 작품 판매와 같은 상업적인 부분보다는 몇 만 명이 모이는 자리에 노출되는 것이 우리 작가들에게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참여하게 됐어요.”

카델 윌본 부스에서 발견한 아얀 파라(Ayan Farah)라는 이름은 아이폰 메모장에 적어두었다. 에미라티 아티스트 아얀 파라는 모로코, 사하라 지역들을 포함한 아프리카 국경 지역에서 수집한 재료로 만들어진 근사한 직물과 추상화 작품을 선보였다.

곳곳에서 존재감을 뽐내고 있는 모던 아트 피스 중에는 특히 피카소의 작품이 많았는데, 이는 중화권에서 피카소가 가진 파워 때문이다.

색채가 또렷하고 형상이 강하며 사이즈가 큰 피카소의 후반 작품을 선호하는 중국, 대만, 홍콩의 컬렉터들은 최근 몇 년 사이에 경매에 오른 피카소의 1930년대 작품들을 몽땅 ‘픽업’해 갔다고 한다.

아트 위크 기간 동안에 피카소와 조지 콘도의 작품을 나란히 배치한 소더비의 셀링 전시에 잠시 방문했다. 두 작가가 가진 강렬한 에너지를 비교하며 보는 재미가 있는 전시를 기획한 소더비의 재스민 첸은 이렇게 말했다.

“컨템퍼러리 아트에서는 개념이 가장 중요하죠. 개념은 과정에 대한 것이고 추상적이어서 관객은 실제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잘 알지 못해요. 그러나 조지 콘도와 피카소의 작품은 그렇지 않죠. 그것이 사람들이 이들의 작품을 좋아하는 이유일 거예요.”

아트 위크 기간에 홍콩에서는 아트 바젤뿐 아니라 작은 위성 페어도 열린다. 하버프런트의 텐트에서 열리는 아트 센트럴(Art Central)은 아트 바젤 홍콩의 규모에 비하면 동네에서 열리는 소규모 장터 같은 느낌이지만, 그것이 이 페어가 시시하다는 뜻은 아니다.

젊은 미술 애호가들이 사고 싶어할 만한 다양한 가격대의 작품들로 영리하게 꾸려져 있는 아트 센트럴의 분위기는 산뜻하고 역동적이었다. 나 역시 이 페어에 가서야 내가 실제로 작품을 구입할 수 있는 장소는 이곳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매년 아트 바젤 홍콩을 방문하는 아티스트 류은영도 올해는 아트 센트럴에서 데이비드 호크니의 판화 한 점을 구입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아트 센트럴의 디렉터 슈인 양은 이 페어를 ‘중간 마켓’이라고 설명했다. “컬렉팅을 처음 시작하는 사람부터 작품 한 점에 50만 달러 이상을 쓸 수 있는 사람들까지, 모두를 위한 작품이 판매되고 있어요. 데님, 수트, 드레스가 모두 섞여 있는 셈이에요.”

서로 다른 매력을 가진 두 페어는 홍콩이 품고 있는 컬렉터들의 수준을 짐작할 수 있게 해주었다. 경제력과 열정, 예술에 대한 호기심을 갖춘 그들은 저돌적으로 홍콩의 아트 시장의 덩치를 키워나가고 있다.

하버프런트의 텐트에서 열리는 위성 아트 페어 아트 센트럴 전경.

 

Wong Chuk Hang 

웡척항(Wong Chuk Hang)에 간다고 했을 때 홍콩 사는 지인은 그랬다. “몇 달 전에 MTR이 생겼다고 얘기를 듣긴 했는데 거기에 갤러리가 있다고? 진짜?” 세계 각국에서 찾아볼 수 있는 예처럼, 오래된 공장 지구인 웡척항은 치솟는 센트럴 지역의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한 중소 갤러리들이 속속 모여들기 시작해 2013년부터 ‘사우스 아일랜드 컬처럴 디스트릭트(South Island Cultural District: SICD)’라는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불과 몇 달 전 개통된 홍콩 지하철 MTR을 타고 홍콩 섬 남쪽 끝자락으로 내려간 외지인이라면 웡척항의 터프한 첫인상에 다소 당황할지도 모르겠다.

프랑스 아티스트 암투안 다가타(Antoine D’Agata)의 전시 포스터가 붙어있는 싱텍 팩토리 빌딩 1층의 엘리베이터.

'FACE: Figures and Portraits' 전시 전경, Pekin Fine Arts, 2018

웡척항 로드를 따라 양쪽으로 흩어져 있는 20여 곳의 갤러리들은 기름때 얼룩진 인더스트리얼 빌딩 안에 숨겨져 있다. 자동차 정비소와 공업사를 지나 어두컴컴한 건물로 들어가 덜컹거리는 화물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목적지에 내리기 전까지는 어떤 공간이 나타날지 전혀 알 수가 없다.

웡척항의 인근 지역인 애버딘에 위치한 엠프티 갤러리에서 열린 홍콩 작가 제스 판(Jes Fan) 개인전 'Mother is a Woman' 전시 전경.

홍콩과 베이징에서 활동하는 유럽 출신 갤러리인 드 사르트(de Sarthe)나 런던과 홍콩에 지점이 있는 로시 & 로시(Rossi & Rossi)처럼 익숙한 이름도 있지만 지역 갤러리와 작가의 스튜디오 등도 많은 수를 차지한다. 킹글리 인더스트리얼 빌딩 25층에 자리한 포드햄 & 플라스트리지 스튜디오(Fordham & Plastridge Studio)에 들어섰을 때 우리를 맞이한 건 블론드 헤어의 미국 작가와 그녀가 10평 남짓한 작업실 한쪽 벽면에 액자 없이 걸어둔 초상화와 누드화였다. 홍콩에 거주한 지 10년이 되어가는 앨리슨 플라스트리지는 말했다.

“웡척항에 대해 알려면 도미니크 페르고(Dominique Perregaux)에 대해 알 필요가 있어요. 그는 이곳을 베이징의 798처럼 만들고 싶어했죠.”

프랑스 출신의 갤러리스트인 페르고는 일본에서도 갤러리를 운영한 바 있지만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경험하고 홍콩에 정착했다. 그는 세계 유수의 갤러리가 지점을 열고 아트 바젤이 승승장구하는 이 나라에 지극히 홍콩다운 아트 신을 만들기로 했다. 특히 매년 아트 바젤 기간에 하루 동안 열리는 아트 데이 행사에는 웡척항의 모든 갤러리는 물론 작가들의 개인 스튜디오를 오픈하고 이 지역 작가들의 작품을 소개한다.

드 사르트에서 열린 스페인의 거장 마놀로 밀라레스와 안토니 타피에스의 2인전 'An Informel Step' 전시 전경.

회화 작가 그리어 호어랜드 스미스의 작업실 전경. SNS 유저들의 커뮤니케이션을 회화로 표현했다.

아트 데이 행사의 본거지인 ADC 아트스페이스(Artspace) 16~17층에는 17명의 작가들이 작업실을 갖고 있다. 동아리 방처럼 즐비한 낯 모르는 작가들의 작업실 문을 노크하며 전혀 새로운 작품들을 만나는 일은 페어장에서 수억 달러를 호가하는 유명 작품을 만나는 일과는 다른 종류의 설렘과 즐거움을 주었다. 런던에서 공부하고 홍콩으로 돌아와 작업을 하고 있는 응카섬(Ng Ka Sum)의 작품이 그랬다. 그녀의 작업실에 들어서자 화선지가 덮인 캔버스가 이젤에 세팅돼 있었다. 낯선 비주얼에 머뭇거리자 작가가 말했다.

“종이를 넘겨 보셔도 돼요. 저는 회화를 완성하고 그 위에 종이를 덮어 회화 표면의 질감을 트레이싱 합니다. 이 작품을 만들면서 우리는 그림을 그리는 일반적인 방식에 너무 길들여져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대부분 준비 단계에서 드로잉을 하고 그 위에 채색을 하잖아요? 나는 그걸 뒤집어보고 싶었어요.”

지앙 지, 'Going and Coming' 전시 전경, Blindspot Gallery, 2018 courtesy of artist and Blindspot Gallery

센트럴에 즐비한 톱 클래스 갤러리들에서 개성적인 지역색을 느끼지 못해 조금 심심하다고 느끼는 아트 러버들에게 웡척항은 모험심을 불러일으키는 대안이 될 수 있다.

아트 데이의 이른 아침부터 웡척항의 메인 도로에는 이곳 갤러리들 약도가 그려진 아트 데이 브로셔를 든 이들이 하나 둘 모여들었다. 꽃을 주제로 한 사진과 회화 작품이 짝을 이루는 중국 작가 지앙 지(Jiang Zhi)의 개인전을 선보인 블라인드스팟 갤러리에서 본 친구를 페킨 파인 아트의 옥상에서 만나는 식으로 동선이 겹친다.

중국과 홍콩 그리고 덴마크 작가의 작품을 모아 21세기에도 완고하게 살아남은 구상회화에 대해 돌아보는 페킨 파인 아트의 그룹전은 꼭대기 층에 자리한 갤러리의 위치를 이용해 옥상 테라스로 이어지게 설치를 해놓았다.

앙 포르말 무브먼트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두 명의 스페인 작가, 마놀로 밀라레스와 안토니 타피에스의 작품부터 이제 막 첫 개인전을 여는 홍콩 작가까지 다양한 작품을 만날 수 있는 웡척항에는 예상보다 많은 이들이 눈빛을 빛내며 집중력 있게 갤러리 호핑을 즐기고 있었다.

그 가운데 주요 미술관 큐레이터나 미술 평론가도 섞여 있었다. SICD에는 실제 위원회도 없고 설립자인 페르고 역시 공식 직함이 없다. 그래서인지 아트 데이 행사는 완차이나 센트럴에서 열린 다른 행사에 비해 조금 미숙하고 투박했지만 그것이 이 느슨한 연대의 매력으로, 매끈한 아트 비즈니스의 대안으로 느껴졌다.

 

West Kowloon Cultural District 

택시가 홍콩 섬과 구룡반도를 잇는 웨스턴 터널을 지나 거대한 공사장에 들어섰다. 저 멀리 하버 시티 연안이 펼쳐지고 높다랗게 철골이 솟아 있는 건물에서 많은 이들이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M+ 파빌리온에서 진행 중인 홍콩 작가 삼손 영의 전시 포스터를 보기 전까지는 택시에서 내릴 엄두도 나지 않았다.

M+ 파빌리온 조감도 Courtesy of West Kowloon Cultural District Authority

2008년 홍콩 정부 주도 하에 개발이 시작된 웨스트 카오룬 컬처럴 디스트릭트(West Kowloon Cultural District)는 구룡해안반도에 들어설 예정인 40헥타르 규모의 예술, 교육, 호텔, 사무실, 거주지가 어우러진 문화 구역이다.

그 가운데 지난 몇 년 동안 미술계의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시각예술 전시 공간 M+는 세계에서 가장 큰 미술관으로 향후 5년 안에 개관할 것이다. 건물이 지어지는 동안 M+의 큐레이터들은 컬렉션 확장에 주력하고 있다.

최근에는 홍콩에서 가장 중요한 작가인 이레네 초우, 멕시코 작가 가브리엘 오로즈코, 현대미술의 아이콘 마르셀 뒤샹의 작품을 인수했다. 갤러리 안에 실제 운영되는 편의점 체인 OXXO 매장을 들여다 놓은 오로즈코 작품의 경우 일부는 작가의 기부로 인수가 이뤄졌다.

6년 전에는 중국 현대미술품을 집중적으로 수집해온 스위스인 컬렉터 율리 지그가 가격으로 환산하면 1950억원에 달하는 미술품을 기증했다.

이와 같은 사실이 M+에 대해 미술계가 거는 기대를 방증한다. 헬멧을 쓰고 안전화를 신은 채 M+의 내부를 투어하며 만난 부관장 겸 수석 큐레이터 정도련이 말했다.

“여기 온 지 4년 반 됐어요. 출근 첫 주에 헤어초크 & 드 뫼롱이 디자인 경쟁을 통해 미술관의 건축가로 선정돼 디자인 워크숍을 시작했죠. 미술관의 처음을 함께한다는 것, 큐레이터로서 누구에게나 쉽게 주어지는 기회는 아닌 것 같아요.”

미술관의 시작을 목격한 관람객으로서 아시아의 혁신적인 목소리를 들려줄 M+에 거는 기대가 크지 않을 수 없다.

‘시티 파크’ 개념을 기반으로 설계된 서구룡문화지구에는 M+가 큐레이션한 조각작품을 만날 수 있는 아트 파크가 들어설 예정이다. 그보다 앞서 올해부터 완차이 하버 프런트에는 홍콩 최초의 국제조각공원 프로젝트인 하버 아트 스컬프처 파크(Harbour Arts Sculpture Park)가 개장했다. 2월 말부터 4월 중순까지 19명 작가들의 조각 작품이 완차이 지역의 스카이라인을 수놓았다. 빅토리아 항구 주변을 거닐던 누구에게나 열린 ‘경계 없는 미술관’이었다.

이 프로젝트의 공동 큐레이터이자 영국 로열 아카데미의 아티스틱 디렉터인 팀 말로는 말한다.

“세계에서 손꼽힐 정도로 멋진 스카이라인을 자랑하는 이곳에 다채롭게 어우러질 수 있도록 재료, 문화적 경험, 연령 및 지위가 각기 다른 다양한 예술가를 선정하는 일은 내게 특권이자 즐거움이었습니다. 예술과 항구, 도시, 대중 간에 뜻깊고 즐거운 상호작용이 방대히 이루어지길 바랍니다.”

하버 아트 스컬프처 파크, 김홍석의 ‘Bearlike Construction’(2012) 설치 전경.Courtesy of the artist and Kukje Gallery Image provided by Hong Kong Arts Centre

그의 바람대로 잔디 위에 우뚝 솟은 마이클 크레이그-마틴의 거대한 분홍색 포크나 김홍석의 쓰레기봉지로 조합된 곰은 일상적인 물건의 형태와 의미에 대해서 직관적이고 신선한 의구심을 선사했다.

두 작가 외에도 트레이시 에민, 앤서니 곰리, 제니 홀저 등의 세계적인 작가들이 참여한 이번 프로젝트에는 참여 아티스트 가운데 1/4이 홍콩 출신으로 거대한 아트 플랫폼을 지역 예술가들과 공유하는 의미 또한 지닌다.

이 프로젝트는 하루아침에 생겨난 것이 아니다. 2005년 예술과 공공 장소를 주제로 한 홍콩 최초의 국제 심포지엄 ‘Soul of the City’가 시작되었고 10여 년 만에 결실을 맺은 것. “이번 프로젝트는 홍콩에 더 많은 예술의 장을 마련하고 이 도시와 이외 지역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를 위한 기회를 만들고자 한 오래된 비전의 일부”라는 팀 말로의 말처럼 올해 홍콩을 찾은 모든 이들이 경험한 홍콩 아트 신의 발전과 다채로움은 오래전부터 기반을 다져온 덕분에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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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디터|김 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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