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들이 말하는 오래된 차의 미덕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내 손이 닿으면 닿는대로 나아가는 정직함과 순수함, 오래된 차의 미덕. | 자동차,올드카

지프 랭글러김진엽, 포토그래퍼사진가로서의 꼼꼼한 작업 방식과 예민한 성격을 돌아보니 일일이 ‘취미 삼아’ 정비를 하는 클래식 카 오너의 성향과 일맥상통한다. 클래식 카 오너들에게 흔히 일어나는 일 중에 재미있는 것은 자신의 차를 고치는 일은 취미가 될 수 있지만 막상 “내 차 좀 고쳐줘!”라는 요청이 들어오면 해주지 않게 된다는 것. 차를 내 손으로 직접 고치고, 또 저렴한 가격을 찾아 직접 부품을 구입하게 되기까지는 뼈아픈 실패 경험이 있었다. 첫 번째 실패는 돈을 많이 들인 공부였다고 위안을 삼으며 클래식 카 공부에 본격적으로 돌입했다. 그 과정을 거쳐 현재 내가 소유한 클래식 카는 ‘엔카’에서 구입한 지프 랭글러인데 최대한 안 꾸미려고 한다. 사실 지프 같은 경우는 액세서리가 다양하게 나오기 때문에 꾸미고 싶은 유혹이 크긴 하다. 예민한 성격 탓에 차의 매일매일의 상태와 변화를 ‘몸으로’ 느끼는 편이다. “어제 이랬던 이 부분이 오늘은 왜 다르지?” 이럴 땐 단단히 대비를 하고 장거리 주행에 나서지만, 클래식 카의 장거리 주행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어느 날 혼자 강원도로 떠났다가 길 한가운데에서 차가 멈추었던 적도 있었으니 말이다. 포르쉐 911 964 이민규, 클래식 카 숍 오너클래식 카에 대해선 ‘항상 고치면서 탄다’라고 마음먹어야 속이 편하다. 내가 소유하고 있는 클래식 카는 포르쉐 911 964이지만 데일리 용도로는 사용하지 않는다. 보통 공랭식 엔진을 냉각수로 식히는 데 비해 이 모델은 공기로 식혀서 외국에서는 ‘에어쿨 포르쉐’라고 불리기도 한다. 어떤 흔적이 개선되거나 나아지는 모습을 보면 희열을 느끼는 독특한 성격을 타고난 탓에, 클래식 카의 컨디션을 회복시키는 작업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큰 편이다. 과거 몸담았던 그래픽디자인과 의류 유통업계를 뒤로하고 현재 클래식 카 숍 오너라는 직함을 달게 된 것도 그 때문이다. 나도 클래식 카에 열광하는 남자지만 자동차라는 것 자체가 허세, 보여지기의 상징일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차를 소유하다 보면 “아! 나만 타야 되는데, 쟤도 탄단 말이야?” 이런 심리가 타오를 때가 분명히 있다. 비유를 하자면 이번 시즌 백 대신에 구하기 어려운 초창기 에르메스 빈티지 백으로 돌아가는 것이랄까? 폭스바겐 파사트 바리안트 b4최원영, 허그플러스 대표1988년식 BMW E32 735IL를 타던 중에 많은 짐을 실을 수 있는 공간의 필요성을 느꼈다. 작은 회사를 운영하는 나의 생활 패턴을 고려해보았을 때 짐을 많이 실을 수 있는 파사트 왜건이 더없이 적합하다고 판단, 이 차를 1초의 망설임도 없이 구입하게 되었다. 흔히들 클래식 카에 대해 화려한 이미지로 생각할 수 있지만 내가 클래식 카를 선택한 이유는 오히려 담백한 직선의 미학 같은 것이다. 차와 라이프스타일이 미니멀해지면서 내 생각과 마음 또한 심플해진 것을 느낀다. 비우고 난 뒤의 얻어지는 채움이랄까. 게다가 이 차를 구입할 때 대한민국에 단 한 대만 남아 있다는 희소성도 굉장히 마음에 들었다. 눈, 비, 바람을 피해야 하기 때문에 실내 주차장을 찾아야 하는 수고스러움이 따르기도 한다. 기름만 넣는 게 아니라 세세한 관심과 사랑을 주고 있는 내 모습을 보면 차가 아닌 사람을 키우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기아 프라이드김경업, Kasina 영업팀 과장대학교 1학년 때, 운전면허를 취득했지만 사이클과 러닝에 심취해 자동차에 손도 대지 않았던 5~6년 정도의 공백 기간이 있었다. 이 공백 기간을 깨준 차가 바로 지인에게 구입한 프라이드다. 애초의 계획대로라면 지인으로부터 BMW E30을 구입했어야 했지만, 어느 날 프라이드를 먼저 사면 이후에 약속대로 BMW E30을 팔겠다는 조건이 붙었다. 하지만 프라이드의 매력에 빠지면서 클래식 카를 손수 뜯고 보고 만지고 노는 재미가 들렸다. 프라이드와 클래식 카가 공통적으로 보여주는 매력은 소위 말하는 ‘정비빨’이 잘 나온다는 것. 요즘 나온 최신 차들은 기계식과 전자식이 결합이 되어서 컴퓨터가 나를 제어하지만 클래식 카는 내가 고치면 고치는 대로 바로 그 효과가 나타난다. 무엇보다 클래식 카는 결국 사람으로 귀결되는 매개체다. 프라이드를 소유하는 사람들이 한 번 모이면 자동차 50대가 한 곳에 모이는데, 똑같은 프라이드는 단 한 대도 찾아볼 수가 없다. 이쯤이면 “클래식 카는 불편하다”라는 공식보단 “클래식 카는 내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도구”라는 말이 더 어울리지 않을까? BMW M5박정수, 외국계 자동차 회사 트레이너6년 전쯤, 미국 시애틀에서 시동도 안 걸리는 상태로 방치된 이 차를 우연히 보았을 때, 살까 말까를 고민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클래식 카의 단점은 끊임없는 고장이라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으니까. 하지만 1987년 9월인 이 차의 연식이 나의 생일과 고작 한 달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 고민이 끝났다. ‘내가 평생 가져갈 차’로 여기고 수리를 시작했다. 당연히 기억에 남는 드라이브를 꼽자면 그때의 첫 테스트 드라이브. 한국에서는 현재 취미로 운영하는 오토모티브 크리에이티브 그룹 ‘AT LAB’에 두고 있지만 미국에서는 데일리 카로 타면서 여기저기 참 잘 다녔다. 성당에라도 가는 날이면 포멀하게 차려입고 주일 오전의 드라이브를 즐길 수 있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클래식 카에 가장 잘 어울렸던 순간인 듯하다. 하지만 언제나 성당에 가는 길처럼 우아한 것만은 아니다. 고장 횟수가 더 많고, 길거리에 주차해놓으면 누군가 긁어놓고 가기도 한다. 이 차가 지닌 값어치에 팔고 싶은 순간이 찾아오는가 하면 자식이 생겼을 때 물려주고 싶은 마음도 생긴다. 이렇게 애증의 관계를 왔다갔다하면서도 클래식 카를 포기할 수 없는 이유는 기계식 자동차의 정직함과 순수함, 그리고 나의 주행거리에 비례하는 고유한 스토리이다. 그래서 클래식 카는 다른 누구보다 내 눈에 예쁜 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