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타이를 매고 팬츠를 입은 여학생과 리본 장식 블라우스와 스커트를 입은 남학생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드라마나 영화 속 장면이 아니다. 실제로 일본 지바현 가시와시의 한 중학교에서 젠더리스 교복을 채택하며 일어난 일이다.
최근 뉴욕과 런던에서는 성 중립 화장실에 대한 논란으로 뜨겁다. 놀랍게도 국내 모 대학과 카페에도 생겨났다는 사실. 비좁은 도심 공간의 활용이라는 쟁점에 성범죄 노출이 반론으로 재기되고 있는 상황. 또 미국에서는 젊은 부모들이 태어난 아이들에게 중성적인 이름(Post Gender Name)을 짓는 것이 트렌드로 떠올랐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헤이든(Hayden), 에머슨(Emerson), 로완(Rowan), 스카이러(Skyler)란 이름이 대표적.
개인의 취향을 중시하는 것을 넘어서 사회문화적으로 성 다양성을 인정하는 분위기에 따라 성벽이 차츰 무너지고 있는 것. 실제로 성에 대해 끊임없는 관점을 제기해온 패션계에서의 젠더리스 열풍은 거의 절정에 이르렀다. 평소 여성복을 즐겨 입는 제이든 스미스가 루이 비통의 광고에 모습을 드러내고, 지드래곤이 샤넬 여성복을 입고 쇼를 보는 광경이 그리 어색하지만은 않다. 로레알파리 헤어팩 광고 모델로 긴 머리의 남자 장문복이 인기를 얻고 있고. 더 이상 누가, 무엇을 입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스타일리시하게 보이느냐가 관건인 셈.
지난 가을 밀라노의 어두침침하고 담배 연기로 자욱한 지하 클럽. 그 속에서 걸어나온 2018 S/S 시즌 구찌 모델들이 입은 옷을 잘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나 스스로를 잃어버리도록 관습과 속도에 저항하라.”
알레산드레 미켈레는 몇 시즌 전부터 남녀 통합 쇼를 선보인 대표적인 디자이너다. 그뿐인가. 곱상한 얼굴에 빼빼 마른 남자 모델들이 핑크 컬러나 화려한 플라워 프린트의 옷을 입고, 스킨 헤드의 여자 모델이 주얼 디테일의 화이트 실크 드레스(마치 웨딩 드레스를 연상시키는)를 걸치고 눈앞을 지나간다.
이번 시즌 헬무트 랭의 새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셰인 올리버는 ‘디자이너들의 디자이너’라 불리는 랭을 오마주한 컬렉션으로 찬사를 받았다. H 테이프를 붙인 니플을 훤히 드러낸 채 블랙 팬츠수트를 입고 오프닝에 선 남자 모델. 입술엔 레드 립을 오버해 그린 살짝은 우스꽝스러운 모습. 페티시적 관점과 젠더리스 룩이 전반적으로 쇼를 지배했고 이는 동시대적인 스타일이란 평을 받으며 성공을 거뒀다.
패션계의 핫 가이 뎀나 바잘리아의 시선도 마찬가지다. 베트멍의 중성적인 아이템, 커다란 스웨트셔츠와 양말 스니커즈는 엄청난 히트를 쳤다. 그는 발렌시아가에서도 마른 여자 둘은 족히 들어갈 만한 남성용 스트라이프 셔츠와 아노락 같은 아이템을 제안한다. “우리가 사는 방식, 좀 더 사악하고 위험한 일이 벌어질 것 같은 느낌을 원했어요” 이번 시즌에 대한 그의 설명마저 의미심장하다.
여심을 자극하는 스텔라 매카트니 역시 이번 시즌 빈티지한 데님 카고 팬츠, 오버올 같은 아이템으로 젠더리스 룩을 선보였고, 남녀 통합 컬렉션을 선보이는 버버리, 몽클레르, J.W 앤더슨도 그 뒤를 따른다. 리아나가 즐겨 입는 남성 레이블인 준지 역시 이번 시즌 런웨이에 여성 모델을 반 이상 세웠다.
남성과 여성의 경계를 구분 짓지 말자는 젠더리스 트렌드는 유니섹스보다 한 단계 진화한 사회적 개념이다. ‘젠더’가 아닌 ‘피플’을 생각한다는 디자이너 미우치아 프라다의 신념처럼 폭넓은 시야와 관대한 애티튜드가 당신을 더 쿨하게 만들 것이다. 지금 이 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