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웨이에 핀 플라워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2018 S/S 시즌 런웨이는 꽃으로 찬란하게 만개했다. 그 아름다움이 그대의 마음에 위안이 되길! | 플라워,런웨이,플라워 프린트

"지상에서는 더 이상 갈 곳이 없어. 뜨거운 술에 붉은 독약 타서 마시고. 천 길 절벽 위로 뛰어내리는 사랑. 가장 눈부신 꽃은. 가장 눈부신 소멸의 다른 이름이라.” 문정희의 ‘동백’이라는 시 구절이 떠올랐다. 이번 시즌 런웨이를 뒤덮은 꽃 물결을 보면서. 만물의 생명력이 움트는 봄, 패션계는 그 어느 때보다 꽃으로 만개한 풍경을 마주하고 있다.2018 S/S 시즌 디자이너들이 선보인 플라워 프린트는 보다 강인하고 역동적인 모습이라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최근 여성 디자이너들의 활약으로 페미니즘이 화두인 데다, 지금 사회가 처한 어렵고 고단한 이슈들을 이겨내려는 메시지가 담겨 있는 것. 먼저 알렉산더 맥퀸의 사라 버튼은 꽃 덩굴 캐노피를 걸친 아치형 건축물을 벽돌 런웨이 위에 세웠다. 자연 치유의 힘을 가진 영국의 정원을 만들었다고 언급한 디자이너. 젖은 머리를 한 영국 시골의 귀족 소녀들은 닳고 낡은 플라워 패턴의 시폰 원피스에 청키한 워커를 신고 걸어 나왔다. 거칠고도 서정적인 여전사의 모습으로! 또 장미가 가득 피어난 영국식 정원에서 쿠튀르 쇼를 펼친 로다테 역시 향기로운 신을 완성했다.“로버트 올트먼 감독의 영화 에서 영감을 받아 각기 다른 스타일과 성격을 지닌 세 명의 여성 캐릭터를 떠올렸죠.”머리 위에 안개꽃 화환을 쓰고 블랙 시스루에 수놓인 엠브로이더리 드레스에 케이프를 걸친 여인은 현실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자아도취형 캐릭터가 오버랩되기도 했다.나무 그늘이 드리워진 마르니 쇼장에서도 커다란 장미와 알리움이 피어난 신비로운 정원이 펼쳐졌다. 특히 장미를 다채로운 프린팅으로 구현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1950년대 볼륨감 있는 실루엣에 수놓은 장미에서는 장인의 섬세한 손길이 느껴졌고, 체크 프린트와 매치된 장미 프린트는 옵아트 작품을 연상시켰다.엘튼 존에게서 영감을 받은 알레산드로 미켈레는 1970년대 글램 무드로 구찌식 플라워 프린트를 선보였다. 야생화 일러스트의 점프수트에 레오퍼드 프린트 보머 재킷을 걸치고 커다란 안경을 쓴 너드 스타일로 자유를 갈망하는 듯했다.루이 비통의 니콜라 제스키에르는 로코코풍의 고전적인 플라워 프린트 드레스에 스니커즈를 신은 동시대 여성들을 위한 우아하고도 활동적인 룩을 제안했다. 덕분에 모델들은 기원전 2600년경의 타니스 스핑크스 사이로 굉장히 빠르게 걸어나왔다.“경계를 허문 거죠. 아나크로니즘 재미있지 않나요?”니콜라의 말처럼 플라워 프린트 역시 시대착오적 발상으로 거듭난 시즌! 여기서 리얼웨이의 스타일링 아이디어 또한 얻을 수 있다. 과감하고 화려한 플라워 프린트의 옷을 선택했다면 매치할 다른 아이템들은 중성적인 디자인으로 선택해야 한다는 사실, 예를 들어 와일드한 플라워 프린트의 맥시스커트에는 오버사이즈의 데님 재킷과 담백한 스니커즈를 매치하는 식이다. 핸드백이나 슈즈의 컬러 선택이 고민된다면 셀프 포트레이트에서처럼 프린트에 속한 컬러 중에서 선택하자. 보다 트렌디해 보이고 싶다면 알렉산더 맥퀸의 제안처럼 매니시한 부츠를 스타일링하는 것이 쿨해 보일 듯.모두가 이 시대를 헤쳐나갈 만한 강렬한 플라워만을 그려낸 것은 아니다. 플라워가 가진 궁극의 우아하고 사랑스러운 이미지를 고수한 디자이너도 있다. 런던의 맥시멀리스트 메리 카트란주는 유년 시절 가지고 놀던 장난감들을 들여다보았다고. 풍선처럼 한껏 부풀어 오른, 야생화가 그려진 나일론 이브닝드레스는 그야말로 압권이었다.아름다운 사랑을 테마로 내세운 도메니코 돌체와 스테파노 가바나는 이번 시즌 역시 ‘달콤한 인생(La Dolce Vita)’를 외쳤다. 하트의 여왕 퀸에서부터 지중해를 연상시키는 과일, 채소, 그리고 활짝 피어난 색색의 장미까지 적어도 그들의 쇼 타임만큼은 잠시나마 행복할 수 있었다.제레미 스콧은 이번 시즌 모스키노 런웨이에 인간 ‘꽃’들을 등장시켰다. 무대에 오른 모델들을 아예 한 송이의 꽃 혹은 꽃다발로 형상화한 것. 장미, 난초, 칸나로 변신한 모델들이 차례로 걸어 나왔고, 안나 클리블랜드는 옷에 달린 커다란 꽃잎을 하나씩 뜯어냈다. 인간 부케가 된 지지 하디드까지. 제레미 스콧은 쇼가 끝난 후 백스테이지에서 이렇게 말했다.“저는 사람들에게 긍정을 선사해야 할 의무가 있어요.”절대 입을 수 있는 옷들은 아니었지만 기분 좋게 웃어 넘길 수 있는 유쾌한 퍼포먼스였음은 확실하다. 이렇게 꽃은 여자에게 감동과 환희를 주는 존재다. 패션이 가진 힘이 그러하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