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위크는 더 이상 새로운 시즌의 의상을 소개하는 쇼케이스로 그치지 않는다. 전시, 행위예술, 비디오그래피 등 패션과 예술을 넘나드는 차별화된 프레젠테이션과 브랜드의 상업적이고 즉각적인 비전을 보여주는 ‘시 나우, 바이 나우’ 등이 그 증거다. 단순히 옷을 창조해내는 것을 넘어 브랜드 전체를 브랜딩하는 방식에 보다 디테일한 창의력을 요하게 된 것.
그리고 지난 밀라노 패션 위크 기간 이탈리아 라벨인 몽클레르가 그들의 새롭고 창조적인 비전을 향한 첫 발걸음을 알렸다. 행사를 사흘 앞둔 시점에도 프로젝트에 참여한 디자이너들의 이름만이 발표됐을 뿐, 어떠한 시선과 방식으로 브랜드를 리뉴얼했는지에 대해서는 힌트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행사 당일 이번 프로젝트를 위해 서울에서 초청된 크리스탈이 <바자>와 함께 팔라초 델레 신틸라(Palazzo Delle Scintilla)를 찾았다. 거대하게 드레이핑된 커튼과 미래적인 은색 천이 드리워진 8개의 공간으로 분리된 ‘몽클레르 지니어스 빌딩’ 내부는 금세 수많은 인파로 가득 메워졌다. 이 8개의 공간엔 ‘몽클레르 지니어스’ 8인에 선정된 크레이그 그린, 시몬 로샤, 피에르파올로 피치올리, 케이 니노미야, 히로시 후지와라, 프란체스코 라가치, 산드로 만드리노, 칼 템플러가 각자의 스타일로 재해석한 몽클레르의 클래식 다운 재킷과 근사한 인스톨레이션이 전시되어 있었다. 뚜렷하게 차별화된 각각의 공간은 아트 갤러리를 방불케 했을 정도!
힙한 네온 조명 아래 자리한 디자이너 칼 템플러의 팜 엔젤스 공간은 이번 프로젝트의 메시지를 홍보하기 위한 기프트 숍으로 꾸며졌다. ‘I'm So High’ ‘Make it Rain’ 같은 슬로건과 로고를 활용한 머천다이징을 선보였고, 방문한 이들에게 몽클레르 빌딩 심벌이 프린트된 티셔츠를 증정하기도 했다.
눈 덮인 산악 경관을 배경으로 빅토리아 시대 산악인들의 이미지를 그리고자 했다는 시몬 로샤는 브랜드의 기능성에 그녀의 로맨틱한 취향을 더해 큼직한 실루엣과 해체적인 비율을 완성했다. 꽃과 파스텔 컬러가 드리워진 다운 소재 드레스와 재킷에 크리스탈의 시선이 오래 머물렀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공간은 1번과 5번으로 ‘순수한 본질’을 테마로 접근한 1번 공간은 발렌티노의 디자이너 피에르파올로 피치올리의 의상으로 채워져 있었다. 가늘고 긴 마네킹에는 색색의 다운 코트가 입혀졌고 아래로 갈수록 넓고 반듯하게 펼쳐진 조형적인 실루엣은 발렌티노의 고전적인 쿠튀르 드레스를 연상시켰다. 고요한 기계음이 궁금증을 자아냈던 5번 공간은 영국 디자이너 크레이그 그린이 창조해냈다. ‘편안함’을 테마로 옷과 신체 간의 대화를 재구성하고자 했다는 크레이그 그린은 추상적인 스타일을 추구하면서도 실용성과 기능적인 측면을 반영했다.
행사는 성공적이었다. 각국에서 온 프레스와 나오미 캠벨, 애리조나 뮤즈, 마르게리타 미소니, 아이린 등 세계적인 셀러브리티와 모델, 디자이너가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사람들과 어울리며 각각의 공간을 감상했다. 이날 함께한 크리스탈 역시 몽클레르의 진화에 눈을 떼지 못하며 파티를 즐겼다.
“창의성에는 한계가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몽클레르 지니어스가 창의적인 디자이너들의 중심축이라고 여겼고, 이는 그들의 브랜드와 함께 작동하는 동시에 몽클레르의 DNA를 보존한다.” 몽클레르의 CEO인 레모 루피니(Remo Ruffini)가 이번 프로젝트에 대한 소회를 밝혔다.
그의 선택은 옳았다.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몽클레르는 젊고 창조적인 에너지로 가득한 동시대적인 브랜드로 자리매김했으니까. 6월 히로시 후지와라의 프래그먼트 라인을 시작으로 각 라인의 제품들이 발표되는 동시에 다양한 팝업 스토어도 전개된다고 하니 기대해도 좋을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