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의 개인전은 10여 년 만이다. 과거에는 정체성이나 동서양에 대한 사유 등을 보여주었다면 최근에는 지질학에 대한 관심과 물리적인 법칙 등의 실험을 다채로운 방식으로 보여주는 것 같다. 지난 10년 동안 당신 작업에 어떤 변화가 있었나?
2007년 로댕 갤러리에서의 전시와도 연결되는 지점이 있는데, 특히 퍼포먼스가 강조된 점에서 초기 작업으로의 회귀로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내 작업에는 언제나 퍼포먼스와 장소성이 강조되곤 했는데, 어떤 장소 고유의 특정성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그러한 맥락에서 예전에는 오브제를 중심으로 주변 배경이 형성되었다면, 이번에는 오브제를 탈피시키고 배경과 장소 자체를 중심 테마로 삼았다는 점에서 변화했다고도 볼 수 있겠다.
이번 전시에서 두드러지는 지질학에 대한 관심은 최근에 작품으로 선보이기 시작한 것 같다.
나는 늘 장소의 특정성과 그것이 수반하는 의미에 많은 관심을 가져왔다. 유타와 알래스카, 강원도에 이르기까지 그곳이 어디가 되었든 각 장소가 갖고 있는 내러티브와 신화 그리고 영적인 에너지가 존재한다. 지질학은 이러한 이상적인 장소를 물질화하는 수단이며, 작업에 영감을 주는 것들을 완벽하게 구현한다. 시간과 화석 같은 지질학의 요소들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장소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탐구하면서 그 생각들을 작업으로 연결하는 지점이 무척 흥미롭다.
좋은 작업은 변덕스럽고 연약한 작업의 맥락 안에서 늘 시간의 시험을 견뎌낸다고 생각한다.
이번 전시는 신체와 에너지, 지형학적 개념, 시간과 문화 같은 다채로운 테마를 내포하고 있다. 이 다양한 주제를 아울러 당신이 전달하고자 했던 메시지가 있나?
전시된 작품 대부분이 ‘남은 것들의 흔적’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것은 덧없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강렬한 형태와 아이덴티티를 지니고 있다. 그 흔적들을 통해 우리가 어떻게 현재의 시간을 살아내고 있고,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형태나 가능성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탐색해보고 싶었다. 이전까지 우리는 모든 자연의 물질들이 변하지 않는 고유한 성질을 갖고 있다고 믿어왔다. 그러나 물질 자체는 아무런 성질을 갖고 있지 않다는 생각을 해볼 필요를 느꼈고, 물질의 정체성이란 우리 주변의 환경과 콘텍스트에 의해서 결정될 수 있다는 이해에 도달했다. 결국 시간이나 물질이 조각, 더 나아가 예술과 어떤 관계가 있다고 생각했다.
특정 장소에 72시간 동안 노출시킨 캔버스나 화산에서 채취한 돌, 유리 같은 재료들에 내포되어 있는 시간성은 어떤 의미에서 중요했나?
는 사람의 날숨을 종이 쇼핑백과 비닐봉투로 포착해 유리로 캐스팅한 작품으로, 여기서 모든 형태는 호흡에 따라 달라진다. 호흡을 불어넣는 속도 자체가 빠르고 연약한 것처럼 나의 관심은 그 과정에서의 속도에 있었다. 내 기억 속의 산이나 구름에 대한 이미지를 만들어 형상화하고 싶었는데, 이때 생각이 물성을 통해서 형태화되는 과정 자체를 호흡의 속도와 비교해서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호흡이 순간적이고 빠른 것처럼, 생각이나 기억이 구현되는 것도 빠르고 순간적이다. 그리고 유리는 고체에서 액체로, 액체에서 고체로 변하는 물질의 전이 상태를 완벽하게 반영하는 매체다. 한마디로 생각이 고체라는 물성으로 표현되는 과정을 실험해본 거다. 생각이 호흡으로 이어지고 튜브를 통해 숨을 불면 형태가 만들어지고 결국은 유리가 식어 날카로운 오브제가 되는 모든 과정이 인생의 순환, 자연이 순환하는 방식과 같다고 생각한다.
7대 죄악이라는 성서 속 텍스트를 언급한 ‘7 Sins’는 인간이 죄를 지을 때 소모되는 칼로리를 상정했다는 점에서 무척 흥미롭다. 물론 작품에 담긴 의미는 신앙 혹은 칼로리 그 자체가 아니겠지만 말이다. 어제 기자간담회에서는 ‘마주하기(Mirroring)’라는 말을 했는데, 우리의 자화상과 관련된 개념인가?
내가 표현하고자 한 건 ‘신앙’에 대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세계를 보는 시각을 어떻게 수치화, 계량화 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이었다. 사람들이 특정한 죄를 지을 때 소모되는 칼로리의 의미는 구체적인 동시에 추상적인 것이기도 하다. 사람들이 신앙 혹은 신념을 지켜내려 평생 동안 노력하며 살지만, 어떤 죄는 순간적인 행동이나 결정으로 저지르곤 한다. 여기서도 내 작품 세계에서 많이 드러나는 이중적이고 모순적인 개념이 표현되었다. 죄를 짓는 행동은 순간적이지만 그 죄가 불러오는 결과와 영향력은 우리 삶에 훨씬 크고 길게 지속되는데, 그 아이디어가 무척 흥미로웠다. 이런 의미에서 숫자는 우리가 살면서 매일매일 마주하는 일과 결정 그리고 행동들을 보여준다. 신념이라는 거대한 크기와는 견줄 수 없이 작고 반복적인 소모처럼 말이다. 작품의 표면에 질산은을 이용해 관객들이 작품 앞에서 자신의 모습을 마주하도록 했는데, 이 순간은 매일의 결정을 내리며 살아가는 인간의 자화상이 되는 셈이다.
캔버스 작업 ‘Liminus’는 어떤 장소에서 땅의 본을 뜨고, 송진이 마르기까지 72시간을 기다린 뒤 다시 스튜디오에서 질산은을 덧칠하는 길고 느린 프로세스를 거친다. 그렇게 느리고 번거로운 과정 속에서 당신이 열어놓고 기대하는 건 무엇인가?
어떤 장소의 땅을 다룬 이 작업을 통해서 즉흥성과 신선함, 에너지 같은 순간성을 담아내고 싶었다. 그러나 동시에 속도를 늦추고 작품이 천천히 창조되는 과정 자체도 같은 선상에서 의미를 갖길 원했다. 어떤 장소를 캡처하는 즉시성과 작품이 천천히 만들어지는 과정이 함께 춤을 추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그 장소의 모든 움직임들, 이를테면 먼지가 발생하고 바람이 지나가는 시간 동안 캔버스를 지면에 펼쳐두었다. 그렇게 화면에 햇빛이 비추기도 하고, 여러 날 동안 낮과 밤이 순환하는 사이클을 담고 있다. 작품을 제작하는 동안 여러 종류의 시간들이 화면 안에 벌어지도록 하는 것, 그게 중요했다.
당신의 모든 작업은 마이클 주라는 한 개인의 관점과 감정이라는 필터를 거쳐 당신의 생각을 구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요즘 당신이 가장 빠져 있는 개념이나 아이디어가 무엇일지 궁금하다.
테크놀로지가 공간에 대한 우리의 감각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이제는 에너지 자원이 지구를 벗어나 저 광활한 우주로까지 넓어졌듯이 테크놀로지는 우리의 의지와 몸, 시각을 연장시켜준다. 물리적인 제한 없이 우리가 행하고자 하는 아이디어를 실현할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내가 요즘 빠져 있는 건 지하 속 탄광이나 깊은 해저에 놓인 조각 또는 어느 먼 곳에 위치한 내 작품이 자연의 순환을 따라 자연스럽게 사라지거나 자연에 의해 작품이 지배되는 아이디어들이다. 실제로 내가 만들기는 했지만 우리가 눈으로 직접 볼 수 없는 곳에 놓인 작품의 개념처럼 물질성은 내 작업 안에서 흥미롭게 지속되는 주제이다.
그러한 확장된 개념에서 비롯된 다양한 시도들이 당신 작업에 비상한 해석적 깊이를 더하는 것 같다. 이야기가 깊어질수록 현대미술에 있어 ‘조각’에 대한 당신의 견해가 듣고 싶어진다.
오랫동안 조각은 덩어리와 형태에 의해서 그 의미가 규정되어왔지만, 지금의 조각적 개념은 무척 달라졌으며 일종의 하이브리드로서의 조각을 의미한다. 이번 전시에서도 역시 많은 역할과 의미의 변환 속에서 조각이 드러나고 있다. 우리가 감각할 수 있는 어떤 지속성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 안에서의 조각인 것이다. 조각은 무언가에서 나온 무언가(Something from Something)이어서, 무에서 유(Something from Nothing)를 만들어내는 회화가 늘 조각을 질투한다는 농담 같은 말이 있다. 그것이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조각의 물질성을 다시 면밀히 바라보고 과거로부터 이어진 물질의 정체성을 재정립하는 것이 현대의 조각적 실천이라고 생각한다.
작품을 위해 지난 2년간 뉴욕과 독도, 비무장지대 등 특정 지역을 방문해서 작업을 지속해왔는데, 각 지역의 에너지나 특성이 작업을 행하는 당신에게 어떤 식으로 영향을 미쳤나?
오랫동안 특수성을 가진 장소에 많은 관심을 가져온 만큼, 내 작업에서 장소와 관련된 맥락을 고려하는 비중이 점점 커지고 있다. 장소는 개념적으로뿐만 아니라 물리적으로 접근하는 과정도 수반되는데, 온라인을 통한 접근과 달리 직접 장소를 방문하는 일은 무척 아날로그적이다. 독도라는 섬에 닿기 위해서는 여러 기상 조건과 기다리는 시간을 감내해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나는 예술 활동을 할 수 있는 마음과 몸의 상태, 그리고 행위자로서의 의지가 형성된다고 생각한다. 장소가 지정학적 또는 지질학적인 의미를 갖기도 하지만 아티스트, 의지자로서의 몸과 마음을 준비시켜주는 곳이기도 하다. 여기서 작품은 모든 조건과 행위가 관계를 맺은 안정적인 플랫폼이 되는 셈이다.
나는 늘 장소의 특정성과 그것이 수반하는 의미에 많은 관심을 가져왔다. 유타와 알래스카, 강원도에 이르기까지 그곳이 어디가 되었든 각 장소가 갖고 있는 내러티브와 신화 그리고 영적인 에너지가 존재한다.
화산석과 건물의 토대였을 마모된 돌 그리고 3D 스캔으로 만든 인공의 돌로 만든 ‘The Story of Us’의 시각적으로 완벽한 밸런스가 인상적이었다. 가장 순수한 자연의 소산으로 여겨온 ‘돌’이라는 물질에 새로운 아이덴티티를 부여한 셈인가?
이 작업을 통해 우리의 지금을 뒷받침해주는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자리를 마련해보고 싶었다. 화산에서 나온 돌과 무너진 건물 파편인 돌, 그리고 인공의 돌은 지구와 자연의 순환뿐 아니라 우리와 조우하는 시간을 은유한다. 우리가 각각의 돌들을 탐구하고 규정하려 하는 순간 비로소 돌들은 의미를 갖게 되며, 특히 3D 프린팅으로 만든 인공의 돌은 직선적인 시간을 깨뜨리며 미래에 관한 무언가로서 새로운 차원에 들어선다. 이를 통해 나란히 걸린 세 개의 돌은 소용돌이치며 회전하는 순환의 시간을 의미하게 된다.
생물학을 전공하고 과학 분야에서 일을 했던 당신이 아티스트가 되어야겠다고 결심한 동기는 무엇이었나?
시대적인 분위기가 작용했는지 아니면 지극히 개인적인 발로였는지 궁금하다. 생물학 분야의 학위를 딴 후, 실험실에서 일을 하면서 그 흥미로운 과정에 매진했었다. 80년대 후반에 오스트리아로 직장을 옮겨 리서치를 하며 비엔나 북쪽의 농장에서 매일같이 해바라기 씨앗을 세는 일을 했다. 그때 함께 일했던 생물학자가 있었는데 그와 아주 자연스럽게 예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내 생각엔 1980년대 비엔나에서의 생활이 예술과 회화, 텍스타일과 연결되는 퍼포먼스 아트를 하는 데 큰 영향을 준 것 같다. 모든 것이 종합적이고 심오한 경험이었다. 아마도 해바라기 씨앗을 세던 들판에서의 명상적이고 단조로운 행위가 나에게 어떤 예언적인 순간이 된 것 같다. 그때 예술의 길로 들어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으니까.
작업 과정에서의 과학적인 접근과 완벽에 가까운 물질성, 거대한 개념에 비해 완성된 작품들은 시각적으로 정적이고 고요한 느낌을 준다. 앞에 언급한 요소들을 모른다 해도 시각적인 울림을 준다는 뜻이다. 개념이 시각화되는 과정에서 어떤 고민들을 거치는지 궁금하다.
작업을 시각화하는 과정은 무척 중요하다. 작업 구상에 있어 그것의 개념이 먼저인지, 이미지가 먼저인지 혹은 내러티브가 먼저인지를 생각할 때 그 결정 과정에는 늘 수많은 접근이 존재한다. 작품에 있어 어떤 순간이 물질로서 순환하는 곳인지 그리고 관객이 어떤 지점에 들어갈 수 있도록 허용할지를 항상 고민한다. 그래서 모든 작품이 관객과 마주치는 만남의 순간이 되며 관객이 작품을 만나게 되면 그 작품은 완전히 다른 차원이 되는 것이다. 나는 물질의 액체, 고체 그리고 기체 상태에서 작업하기를 좋아하는데, 그 때문에 내 작업이 시각적으로 고요하고 정적인 면을 지니고 있는 것 같다. 그런 정적인 상태가 보는 이들의 숨을 멎게 할 것이고, 결국 작업은 관객의 숨으로 완성되는 셈이다.
작업에 임하는 데 있어 ‘좋은 작업’인가 아닌가에 대한 스스로의 판단 기준이 있나?
스스로를 납득시킬 만큼 중요한 당위로 삼는 것은 무엇인가? 좋은 작업은 변덕스럽고 연약한 작업의 맥락 안에서 늘 시간의 시험을 견뎌낸다고 생각한다. 내가 생각할 때 좋은 작업이란 매 순간순간 나의 주의를 붙잡아놓는 작업이다. 밀어내고 반박할지라도 나를 늘 어딘가로 밀어넣는 듯한 느낌으로 출발하는 작업은 대부분 강렬하고 성공적이다. 제작자의 존재와 내러티브 그리고 그것의 개념적이며 물리적인 현존이 담기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티스트 마이클 주와 뉴욕은 뗄 수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뉴욕이라는 도시가 당신에게 어떤 에너지와 영감을 선사하나?
내 스튜디오는 브루클린에 있는데, 맨해튼 섬을 바라보고 있다. 아주 멋진 곳이다. 내가 좋아하는 브루클린의 에너지에는 항상 어떤 역사성이 묻어나고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과 다채로운 문화 안에서 전 세계가 밀려드는 듯한 느낌이 공존한다. 전 세계가 뉴욕을 이야기하지 않나. 그리고 맨해튼에서는 이 도시에서 살아내기 위해서 사람들이 배워야만 하는 타협의 속도감이 거대한 에너지로 느껴진다. 그렇기 때문에 맨해튼에서는 무엇이든 즐거움이 될 수 있다. 맨해튼과 브루클린을 오고 가면서 내가 얻는 감정은 진정한 쾌락적 즐거움으로 느껴지곤 한다. 그런 시간이 많지는 않지만 말이다.
예술은 끊임없는 자기 소모의 연속이다. 소모의 공백이 느껴질 때 무엇으로 채우나?
너무 고전적인 방식이긴 하지만 난 자연으로 나간다. 나를 아주 도전적으로 만들어주는 산이나 사막이 바로 그런 장소다. 자연은 도시를 벗어난 내 몸을 훨씬 더 섬세하게 인식하도록 만들어준다.
한국을 방문할 때면 특별히 어떤 경험들이 즐거움을 선사하나?
이번 전시를 만들어나가는 과정 자체가 내게 많은 것들을 보여주고 경험하게 했다. 가장 좋았던 건 동해안을 따라 드라이빙하는 것 그리고 산에서 보낸 시간들이다. 다시 온다면 강원도로 화석을 보러 가고 싶고, 북쪽의 산들을 오르고 싶다. 모터사이클 투어와 캠핑도 좋아하는데, 한국의 어딘가에서 경험한다면 너무 멋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