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목하고 있는 벨기에 작가, 마이클 보레만스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몇 년 전 아트바젤 홍콩에서 마이클 보레만스의 작품을 보고 그 위협적인 멜랑콜리에 한눈에 반했다. 부드럽고 섬세하지만 설명이 생략되어 있고, 모호하지만 칼날처럼 예리했다. 이토록 현란한 세상에서 그림에 사로잡히는 일은 여전히 근사하다는 걸 알려주는 아티스트 마이클 보레만스. 그의 이름이 각인된 지 여러 해가 지나서 데이비드 즈워너 홍콩의 개관전 <Fire from the Sun>을 선보이기 위해 홍콩에 온 작가를 만났다. 언제나 수트를 입고 서서 그림을 그린다는 보레만스는 완벽한 피트의 블랙 수트와 블랙 부츠 차림이었다. 그의 청회색 눈동자는 예민하면서도 친절한 빛을 띠었고, 자신의 작품을 얘기하는 데 있어서는 기진맥진한 채로도 단호함이 느껴졌다. | 벨기에,마이클 보레만스

데이비드 즈워너 홍콩 개관전으로 새로운 전시를 선보였다. 갤러리 공간이 완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준비해야 했을 텐데 어려운 점은 없었나?그 점은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 약간은 불안한, 불확실한 면이긴 했다. 물론 도면이라든지 축적 모형이 있었지만 실제로 공간을 마주하는 것은 전혀 다른 경험이기 때문이다. 역시나 모형을 만들어 전시를 가늠해보았지만 결국 실제로 설치를 할 때에는 사전 계획을 다 바꿀 수밖에 없었다. 전시 공간에 대해서는 매우 만족스럽다. 너무 크지도, 작지도 않고 갤러리의 완전한 새로운 벽에 내 작품을 걸 수 있게 되어 기쁘다.홍콩에서의 첫 개인전이라는 건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가?개인적으로 아시아에서 미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시기여서 매우 흥미진진하게 지켜보고 있다. 많은 일들이 매우 빠른 속도로 일어나고 있는데 그 일부가 될 수 있어서 기쁘다. 사실 홍콩이든 어디든 작가로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내 작품을 선보이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예술은 커뮤니케이션의 한 형태이기 때문이다. 좀 더 간접적인 방법으로 말이다.이번 전시 에서는 르네상스 회화의 아기 천사를 떠올리게 하는 아기들이 시공간을 알 수 없는 곳에서 피 칠갑을 하고 있다. 뭔가 무서운 일이 일어나고 있는 듯한데 구체적인 단서는 없다. 도대체 어떻게 시작된 시리즈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그림 속 아이들은 인간 조건의 알레고리로 묘사한 것이다. 이 시리즈는 하루아침에 시작된 것이 아니다. 여러 ‘혁명’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한 작품, 두 작품, 세 작품 천천히 합쳐져 지금 이 갤러리에서 보고 있는 작품들로 완성되었다. 내 생각이 계속하여 발전한 결과이고 전통적인 회화의 우아한 부분과 아름다운 부분을 계승하고 싶었던 동시에 무섭고 위협적인 요소를 충돌하게 하여 하나로 합치고 싶었다. 나는 이러한 비유를 통해 많은 예술가들이 중요하게 다루는 주제인 사람의 상태를 나만의 버전으로 표현한 것이다.벨라스케스와 마네, 고야를 동경하고 그들의 회화 테크닉을 참고했다고 알려져 있다. 이번 전시 또한 고야의 그림에서 받은 영향으로 시작하게 되었다고.어릴 때 고야의 작품을 많이 보면서 자랐다. 그의 정신을 받아들여 내 것이 되게 만들었다. 이번 전시는 오랫동안 알아왔던 고야의 그림이 도화선이 되었는데, 작은 모닥불을 둘러싸고 사내들이 저녁을 먹는 것처럼 보이는 작품이다. 나에겐 이 장면이 인간 상태에 대한 완벽한 설명으로 여겨졌고 내 자신의 버전으로 만들고 싶다는 충동이 일었다. 그 그림과 관련해 오랫동안 식인 주제가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처음에는 작은 페인팅으로 시작하였는데 그 당시엔 이렇게 큰 여러 작품의 시리즈가 될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첫 작품이 매우 마음에 들게 완성된 후에 두 번째 작품을 그렸지만 예상했던 만큼 나오지 않아 더 그리게 되고…. 그렇게 해서 여기 소개된 작품들이 선보여지게 된 것이다.혼자 또는 여럿의 아이들이 등장하는 작품들 가운데 몇 점의 그림에서는 어디에 사용하는지 뚜렷하지 않은 기계를 묘사하고 있다. 불가사의한 기계들은 전체 이야기의 맥락에서 어딘지 모르게 불길한 분위기를 품고 있고, 이 모든 게 과학적 실험의 한 요소가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하게 만든다.이번 시리즈에는 많은 비유가 있으며 문화, 역사적으로 다양한 요소가 들어 있다. 어떠한 결론을 도출하듯 의미를 부여하고 해석을 제한하고 싶지 않다.그렇다면 이 궁금증에 대해서는 말해줄 수 있나?그림 곳곳에 유령이나 그림자처럼 미완성인 부분이 있다. 모호하게 처리된 부분이 으스스하기도 하고 신비스러운 느낌을 자아내기도 할 텐데 나는 그런 것들이 그림에 에너지를 준다고 생각한다. 만약 모든 것이 구석구석 세세하게 완벽하다면 생명력 없이 진부하고 재미가 없을 것 같다. 생기 있게 두고 싶었다. 나는 작업을 시작하면 빠르게 마무리하는 편이고 아주 작은 그림을 그릴 때도 항상 서서 작업을 하는데 이런 작업 방식 또한 내게도, 그림에도 에너지를 불어넣어주는 것 같다. 2014년 벨기에 보자르 아트센터에서 회고전을 가졌고, 그 회고전은 텔아비브, 댈러스로 투어를 했다. 그러고 나서 그림에 변화가 있다고 느껴졌는데, 2015년 데이비드 즈워너 런던에서 선보인 ‘Black Mould’ 시리즈부터 명백히 그렇다. 어떤 구체적인 변화가 있었나?그 회고전은 그동안 내가 해온 것들을 정면으로 마주할 수 있게 해주었다. 그리고 나의 작품에 대한 생각을 변하게 했다. 내가 해온 것들이 나쁘진 않지만 더 잘할 수 있다고 말이다. 새로운 터를 찾아야 했다. 내 작품에서 나 자신을 찾는 게 이미 어렵다고 느껴졌고, 더 발전해야 했다. 스스로의 진화, 혁명을 위해 노력했고, 지금은 해냈다는 것에 성취감을 느낀다. 컬렉터와 관람객들이 특정 스타일에 익숙해지면 자연히 상업적인 작품들이 나오고 모두가 그 스타일을 찾는다. 바로 그때가 작가들이 변화해야 하는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요즘 나는 일하는 게 정말 즐겁다. 일을 하면 할수록 내가 하는 일과 내가 더 연결되어 있는 것 같다. 나는 한 사람의 아티스트로 성장하고자 한다. 겸손한 방법으로, 최대한 노력하면서.나는 일하는 게 정말 즐겁다. 일을 하면 할수록 내가 하는 일과 내가 더 연결되어 있는 것 같다. 나는 한 사람의 아티스트로 성장하고자 한다. 겸손한 방법으로, 최대한 노력하면서.나로 말할 것 같으면 당신이 말한 작가가 변화해야 하는 시점 이전의 작품들을 좋아하는 당신의 팬이다. 한 인터뷰에서 사람들이 자신을 새로운 구상회화의 리더처럼 바라보는 게 싫다고 말한 게 기억난다. 나는 아직 당신의 새로운 그림들이 낯설지만 스스로의 혁명을 응원하겠다.작가는 스스로 흥미로운 존재가 되어야 한다. 변화해야 한다는 나의 의지는 상업적으로 볼 때는 그다지 좋은 시도가 아닐 수도 있겠지만 나는 좀 더 좋은 아티스트가 돼야 한다는 책임감을 부쩍 느끼며 작업하고 있다.당신에 관한 몇몇 영상을 보면서 그림을 그리기 전 사전 연구의 차원에서 실제 모델을 데리고 사진을 찍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번 시리즈 역시 사전 연구가 있었나?물론이다. 내 친구들의 아이들이 모델이었다. 나는 내가 작업하고 싶은 것을 먼저 머릿속에서 구상하고 이미지를 구축한다. 그 다음에 주변에서 그 이미지에 걸맞는 모델을 물색한다. 예를 들어 ‘The Angel’(회고전 의 메인 작품으로 분홍색 드레스를 입고 얼굴에 검은 칠을 한 여자의 그림) 같은 경우는 드레스를 먼저 선택했고, 그 긴 드레스에 몸이 맞는 사람을 찾아나섰다. 키가 크고 중성적인 얼굴을 가진 여자 말이다. 그러던 중 시골 별장에서 열린 바비큐 파티에서 친구인 비디오 아티스트 니콜라스 프로보스트의 여자친구이자 벨기에에서 모델로 활동하는 하늘로어 크넛츠를 만나게 되었는데 보자마자 완벽한 얼굴이라고 생각해 모델을 서줄 것을 부탁했다.또 그 영상 속에서 특이한 점은 드넓은 스튜디오에 어시스턴트가 한 명도 없다는 것이었다. 수트를 입고 바삐 걸어다니며 그림을 그리고 사진 촬영을 하는 당신만 있었다. 혼자 모든 것을 하는 방식을 여전히 고수하고 있나?어시스턴트와 함께 일하는 것을 선호하지 않는다. 어시스턴트에게 계속 할 일을 줘야 할 것 같고 정신이 분산된다. 작업실에서 혼자 있는 걸 좋아한다. 나 자신에게 말을 걸고 소리도 지르고 하는데 다른 사람이 있으면 좀 불편할 거다.(웃음) 벨기에 겐트에 두 개의 작업실이 있고 좀 더 시골에 한 개의 작업실이 있는데 현재 시골 작업실에는 어시스턴트가 한 명 있다. 같이 일한 지 한 일 년 정도 되었다. 따로 어시스턴트를 찾은 건 아닌데 우연찮게 그렇게 되었고, 그는 황금손을 갖고 있어 내게 많은 도움을 준다. 벨기에는 항상 춥고 어두워서 언젠가 L.A에 작업실을 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빛과 날씨, 햇빛 등이 내 작품에 어떠한 영향을 끼칠지, 실제로 이 바람이 실행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생각은 해보고 있다.‘A Knife in the Eye’, ‘Modern Mystery’, ‘Dark Humor’ 같은 단어로 표현되곤 하는 당신의 작품이 L.A의 화사한 스튜디오에서 그려질 걸 생각하니 상상이 잘 안 된다.(웃음) 지금까지는 숨겨진 미디엄이었던 당신의 조각작품 ‘Rosa’(2017)를 사진으로 봤는데 시원스러운 유머가 담긴 뜻밖의 작품이었다. ‘Black Mould’ 시리즈에서 파생된 5m가 넘는 거대한 수도사 조각은 아직도 하늘에서 떨어져 스위스 그슈타트의 눈밭에 거꾸로 박혀 있는가?아쉽지만 지금은 철거되었다. ‘Rosa’는 장소 특정적 설치작품들을 선보이는 ‘엘리베이션 1049(Elevation 1049)’에서 공개한 조각작품인데, 나에겐 한마디로 ‘실험’이었다. 매우 개념적이고 비극적이면서도 웃긴 작품이었고, 행사가 끝나면 부서지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었다. 작가로서 실패해도 괜찮은 실험을 해보는 건 정말 중요한 것 같다. 어떤 사람들은 좋아할 수도 있고 또 어떤 사람들은 싫어할 수도 있지만 작가로서는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그 페스티벌에서 당신은 밴드 공연도 했다.작년에는 전시 준비로 너무 바빠서 밴드 활동을 할 수 없었는데 올해는 활동하고 음반도 낼 예정이다. 나는 기타를 치고 수년 동안 음악을 써왔다. 그림 그리는 것을 떠나서 또 다른 취미이다. 일종의 명상이라고도 할 수 있다. 기타를 칠 때 다른 것을 생각할 수가 없어서 말이다. 너무나 못 치기 때문에 집중해야 한다.(웃음) 내가 밴드 활동에 야망을 품지 않고 있기 때문에 더 즐기면서 할 수 있기도 하다. 그래도 앨범을 내면 반응이 어떨지 궁금하다. 최근에 프로페셔널 뮤지션들과 일하기 시작했는데 이제야 비로소 음악이 멋지게 들리기 시작했다!(웃음)TC 보링(TC Boring)이라는 밴드 이름이 특이해서 구글링을 해보니 윌리엄 이글스턴의 유명한 사진 작품에 나오는 사람의 이름이었다. 어떻게 그 이름을 발견하여 밴드명으로 삼게 되었나?밴드 이름은 여자친구가 지어줬다. 그녀가 내게 윌리엄 이글스턴의 작품도 소개해주었고. 나는 이글스턴이 치과의사였던 자신의 친구 TC 보링을 찍은 사진에 매료되었다. 그는 중독으로 인해 매우 비극적인 죽음을 맞았다. 어제 이글스턴의 아들과 통화를 했는데 TC 보링, 즉 톰 보링이 매우 좋은 사람이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밴드명을 TC 보링으로 지었으니 앨범 커버에 이글스턴의 사진을 쓸 수 있다면 정말 멋질 것 같다. 아니, 내 그림을 넣으면 앨범이 몇 장이라도 더 팔리려나!(웃음)아까 말한 ‘Angel’의 분홍 드레스를 입은 여자라든가 하는 대부분의 당신 작품에서 나타나는 존재감 있는 인물들은 어디서 오는 건가?그들이 어디서 온 건지가 왜 중요한가? 사실 나도 잘 모르겠다.(웃음)그들은 내가 열렬히 빠져들어 읽은 소설 속 주인공처럼 매우 강렬하고 친숙한 느낌을 준다. 시간을 들여 구축한 서사성 없이 단숨에, 비주얼만으로 그와 같은 깊은 임팩트를 준다는 게 놀랍다. 이런 휘황한 21세기에도 여전히 그림에 붙들려 있을 수 있어 행복하다는 생각도 했다.내 작품은 모두 캐릭터와 관련되어 있다. 정의할 수 없지만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작품의 주인공이다. 그림에 사로잡히는 것에 대해 나도 비슷한 생각을 한다. 하지만 페인팅은 우리가 아직도 즐겨 사용하고 또 문화권의 제약을 넘어 누구나 읽을 수 있는 ‘언어’이다. 페인팅은 인간의 손에서 탄생하는 원초적인 미디엄으로 그 존재가 매우 당연한 것이다. 물론 시기에 따라서 중요도가 높아지기도 하고 낮아지기도 하며 굴곡이 있었지만 결코 없어질 수는 없을 거다. 각 시대별 화가가 존재하고 작가들마다 자신만의 재료, 매체, 스타일이 있고 또한 각양각색이다. 오래 되었어도 참된 것이다. 그에 대해 우리는 좀 더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인간은 여전히 이성적인 것보다는 설명할 수 없고 완벽히 이해할 수 없는 것에 더 매혹된다는 것의 방증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