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istian Dior
디올의 새로운 오트 쿠튀르 컬렉션을 정의함에 있어 절대 빼놓을 수 없는 단어는 바로 ‘초현실주의’일 것이다.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가 “초현실주의 심장에 창의적인 상상의 숨결을 불어넣은 컬렉션”이라 설명한 이번 쿠튀르 쇼는 쇼장의 데커레이션부터 초현실적인 요소로 가득했다. 마치 르네상스 조각상을 분해해놓은 듯한 천장의 장식물, 체커보드 패턴의 캣워크, 공중에 띄운 거대한 케이지 장식, 블랙 & 화이트로 교차해놓은 의자까지 말이다.
치우리가 지난 몇 시즌 동안 몰두해온 여성 예술가를 향한 오마주는 이번 컬렉션에도 어김없이 이어졌다. “마치 필연과 같은, 제 삶의 극적인 측면만이 저를 매료시킵니다.” 여성의 에로티시즘을 특유의 판타지로 승화시킨 작품들을 선보인 아르헨티나 출신 여성화가, 레오노르 피니의 한마디는 이번 컬렉션을 이끈 원동력이었다. 그 결과 모노 컬러를 주조로 한 구조적인 실루엣에 초현실적인 모티프, 독창적인 디테일이 조화를 이룬 룩들이 탄생했다. 아울러 가면에 가까운 섬세한 아이웨어 역시 초현실적 무드에 날개를 달아준 일등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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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ambattista Valli
지암바티스타 발리만큼 오트 쿠튀르의 순수한 아름다움에 집중하는 디자이너가 또 있을까. “최근많은 디자이너들이 낭만적인 아름다움에 대해 두려움을 갖고 있는 것 같아요. 보다 예리하고 날렵한 것에만 몰두하죠.” 그러나 그는 여전히 조화롭고 관능적인 아름다움에 심취해 있음을 고백했고, 이번 쇼에서도 그 사실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오프닝을 연 섬세한 플라워 아플리케의 레이스 드레스부터, 무려 350미터의 옷감이 사용된 피날레의 튤 드레스에 이르기까지(피치, 핑크, 레몬 그린 컬러 세 가지로 등장했다), 그가 책 <야생의 정원>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드라마틱한 드레스의 향연이 펼쳐졌다. 복잡하고 냉정한 현실 속에서 사람들은 환상적이고 동화 같은 순간을 꿈꾸기 마련, 지암바티스타 발리의 컬렉션은 바로 이 부분을 어루만져줄 수 있는 순수한 아름다움으로 충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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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alentino
“전통은 연결고리와 같은 역할을 한다. 오랜 시간에 걸쳐 지식과 가치를 전달하는 오트 쿠튀르의 역사, 그것이 현재에 존재하는 이유다.”
발렌티노 쇼 시작 전 받아 든 쇼 노트의 첫 번째 문장은 큰 울림이 되어 다가왔다. 이윽고 시작된 쇼에서 시선을 사로잡은 건 크게 세 가지. 매력적인 컬러 매치, 리본, 마지막 하나는 깃털이었다. 옅은 하늘색과 노랑, 캐멀 컬러의 조합, 오렌지와 화이트, 그 사이에 매치한 하늘색에서 색(色)이 가진 힘이 무엇인지 여실히 느낄 수 있었고, 루시 더프 고든에게서 영감을 받은 리본들은 목과 허리선에 우아함을 더해주었다.
아울러 피에르 파올로 피치올리가 ‘호소력 있는 가벼움’이라 표현한 깃털 소재의 커다란 모자는 쇼의 드라마틱한 요소로 제 몫을 톡톡히 해냈다. 피날레에 등장한 피치올리에게 쏟아진 우레 같은 박수 소리와 함성만으로 얼마나 성공적인 컬렉션이었는지 가늠할 수 있었던 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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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venchy
오케스트라의 웅장한 사운드트랙을 배경으로, 마치 달빛이 스며든 복도를 걸어 나와 깊은 밤 정원을 산책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 지방시 쇼의 오프닝은 이번 시즌을 통틀어 가장 인상적인 순간으로 남았다.
자신의 첫 번째 쿠튀르 쇼이자 1년여 만에 부활한 지방시의 오트 쿠튀르 쇼를 진두지휘하게 된 클레어 웨이트 켈러는 ‘밤의 비전’을 컨셉트로, 하우스의 견고한 테일러링에 특유의 페미닌함을 녹여낸 이브닝웨어를 선보였다.
“테일러링의 강인함을 충분히 활용하되 매우 여성스러운 방법으로 접근하고 싶었죠.”
달빛을 받아 은빛으로 반짝이는 꽃잎, 이슬을 닮은 투명한 크리스털 구슬이 드레스에 장식되었고, 정원을 연상케 하는 핑크 및 레인보 컬러의 드레스는 컬렉션에 로맨틱한 무드를 불어넣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