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초반 오키프는 거실의 색감을 흙과 같은 색으로 바꾸면서 자신의 공간에 금욕과 고요함을 덧입혔다. 이 공간에서 오키프는 매킨토시 스테레오가 보관된 선반 근처에 놓인 초록색 에로 사리넨 웜체어(Womb Chair)와 오토만(발을 걸치는 스툴)에 앉아 음악을 들으며 휴식을 취했다. 화분 속의 식물은 큰 창에서 비쳐 들어오는 햇빛을 받아 잘 자랐고 자신의 동료이자 친구였던 후안 해밀턴의 조각이 벽난로 근처를 장식했다.
오키프는 애비퀴우 하우스의 식당 옆 야외 공간에 지붕을 짓지 않기로 했다. 지붕 대신 지어 올린 나무로 된 셔터 사이로 비가 내리고 수많은 별이 쏟아지는 걸 보기 위해 하늘을 열어놓은 것이다. 여름이면 통창으로 이어진 식당에 해 그림자가 시시각각 다른 패턴을 만들며 드리워지는 걸 바라보았다. 이 공간에 놓여 있는 조각작품 ‘Abstraction’은 1916년 어머니의 죽음을 애도하며 처음 만들었고 이후 몇 번의 모형을 만들다 1980년에 들어서야 캐스팅 작업을 했다. 나선형의 추상화는 오키프가 다양한 매체를 이용해 탐구하는 작품 주제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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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년, 조지아 오키프는 뉴멕시코 샌타페이에 정착했다. 자신을 뉴욕 미술계 한복판으로 이끌고, 남편으로서 동료 예술가로서 사랑과 상처를 모두 안겨준 사진작가 알프레드 스티글리츠가 죽은 후였다. 이스트코스트의 복잡하고 호화로운 생활을 등지고 사우스웨스트의 극적인 풍광과 고립을 선택한 것이다. 항상 자신의 삶의 자세를 대변할 만한 집을 원했던 오키프는 이내 두 채의 집을 지었다. 광활한 모래 평지에 완전히 고립되어 있으며 높다랗고 험준한 절벽과 언덕이 집 뒤로 아스라이 펼쳐지는 고스트 랜치 하우스와 점토 담이 둘러쳐져 있고 작은 도시와 인접해 있으며 보다 자애로운 자연을 배경으로 하는 애비퀴우 하우스는 그렇게 탄생했다. 오키프는 그 집들에 작업실을 마련하고 황량하면서도 타협하지 않는 풍경을 내면화해 작품 속에 녹여냈다.
이곳에서 오키프의 삶은 단순하고 절제된 채로 충만했다. 단순한 스타일의 핸드메이드 가구들로 띄엄띄엄 채운 두 집에 남아 있는 사진들은 오키프가 어떻게 자신만의 고요한 삶을 운영했는지 보여준다. 오키프의 옷차림은 그녀의 집, 그녀의 작품과 더없이 잘 어울렸다. 과거 재봉사로도 일한 적이 있었기에 자신의 기준에 맞는 옷을 만들 수 있었던 오키프는 아무런 장식이 없는 흑백의 의상을 가지고 실용적이고 단순하면서도 우아한 실루엣을 완성했다. 현재 두 채의 오키프 하우스 중에 애비퀴우는 대중에 공개돼 투어가 가능하다. 삶과 예술이 이음새 없이 하나가 되었던 예술가의 흔적 속에서 그녀가 정의한 삶을 탐구해볼 수 있다.
애비퀴우 하우스 북쪽의 한쪽 벽면을 모두 차지하는 거대한 창문은 시시각각 차마 강 계곡과 그 땅의 다양한 풍경을 보여주었고, 이곳에서 오키프는 강 계곡의 미루나무를 그린 30점의 그림을 남겼다.
1929년에 처음 뉴멕시코를 여행했을 때 오키프는 광활한 풍경 속에서 바람과 물에 닳은 죽은 동물의 뼈를 발견하고 매료되어 그것들을 수집했고, 그것들은 이내 사막의 상징이 되어 오키프의 여러 그림에서 묘사됐다. 고스트 랜치 하우스에서 머물면서 오키프는 동물의 골반뼈를 그렸는데, 뼈의 여러 구멍을 통해 보이는 하늘이 묘사된 시리즈가 이때 탄생했다.
조지아 오키프는 1948년에서 1956년 사이 문을 주제로 열 점이 넘는 그림을 그렸다. 문을 소재로 한 초기 그림들에서는 문이 벽 위에 떠 있는 것처럼 묘사됐다. 이들 그림은 추상화로 해석되지만 실은 벽과 테라스의 구성 요소들을 정확히 있는 그대로 표현한 것이다. 오키프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문을 그린 그림에 등장하는 작은 사각형들은 문 앞에 있는 타일이다. 그것들은 실제로 거기 있다. 그러니까 그림을 추상화로 보면 안 된다. 지극히 현실적인 것이다.”
페더럴 산은 조지아 오키프가 고스트 랜치의 스튜디오에서 작업할 때 많은 영감을 주었다. “페더럴 산은 나의 ‘프라이빗 마운틴’이다. 신이 내가 그 산을 잘 그린다면 가질 수 있을 거라고 말했다.” 오키프는 페더럴 산을 그린 많은 작품을 남겼고, 유언에 따라 사후 그녀의 유골은 산꼭대기에 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