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어는 기묘한 생명체다. 괴짜 아티스트 무라카미 다카시에게 영감을 주는 뮤즈인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다카시의 문어들은 시카고, 텍사스, 보스턴, 파리, 모스크바를 돌고 돌아 밴쿠버로 건너갔다. 얼마 전부터 캐나다에서 그의 첫 회고전이 열리고 있다.(밴쿠버 아트 갤러리에서 라는 타이틀의 전시회가 5월 6일까지 이어진다.) 포토월이나 다름없는 매직아이 같은 대왕문어 그림 앞에서 다카시가 정신 산만한 문어 프린트 수트를 입고 치아를 환하게 드러내며 웃고 있다. 부스스한 장발 위에 다리가 여덟 개 달린 조악한 문어 코스튬 모자를 쓴 채로 말이다. 도대체 문어가 뭐기에, 슈퍼스타의 분신이 됐을까? 어느 기자의 질문에 다카시가 짧고 굵게 대답했다. 그런 착장은 일종의 “보호색 같은 것.”
문어는 신비한 두족류다. 지능이 높고 영리하다. TPO(Time, Place, Occasion)에 맞춰 수시로 몸의 색을 바꾼다. <문어의 영혼>이란 책은 문어에 대해 믿기 어려운 사실을 풀어놓는다. 이 책을 덮은 후 한동안 문어를 먹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꽤나 진지하게 고민했을 정도다. 이를테면 문어들은 야구공 크기의 플라스틱 공을 즐겨 가지고 놀며 움직임과 색이 다양한 스포츠와 만화를 유독 좋아한다. 일부 과학자 중에서는 “문어에게 생각과 감정과 개성이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오죽하면 조선시대 양반들은 ‘글을 아는 물고기’라는 뜻으로 ‘文魚’라고 이름 지어줬다는 ‘먹물스러운’ 이야기가 있을까.
문어는 기괴한 괴물이다. 영화 <아가씨>엔 촉각으로 기억하는 몇 장면이 있는데, 그중 압권은 블랙 선글라스와 콧수염을 장착한 코우즈키(조진웅 역)가 붓을 쥐고서 먹물을 쿡쿡 찍어 혓바닥에 툭툭 터는 신이다. 그리고 차마 문자로 대사를 옮길 수 없는 문제적 마지막 장면. 하의를 홀랑 벗은 두 남자의 뒤로 괴물 같은 것이 꿈틀거린다. 개봉 후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박찬욱 감독은 “그것 말고는 <아가씨>를 만들면서 더 처절하게 고민한 건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여기서 그것은 문어. 어린 히데코가 지하실에서 도대체 무엇을 보고 트라우마가 생겼을지에 대해 도통 마땅한 것을 찾지 못했던 것. 실제로 이 장면은 보통 사이즈의 문어를 촬영해서 확대했다. 수족관 위로 팔딱거리던 대형 문어는 정말이지 끔찍했다. 실제로도 문어는 괴물 같은 측면이 있다. 파란색 피, 끈적거리는 점액, 겨드랑이에 달린 입, 절단돼도 몇 시간 동안 움직일 수 있는 여덟 개의 팔, 교미 후 수컷을 먹어치우는 암컷.
문어 레시피
각설하고 문어는 맛있다. 푸드 칼럼의 본분을 잊고 식욕 감퇴용 ‘썰’을 실컷 풀었지만 본론으로 돌아가겠다. 문어와 궁합이 좋은 재료는 단연 감자다. 오픈 이래로 꾸준히 사랑받아온 몽로의 ‘문어 샐러드’는 피문어, (깍뚝썰기 한) 감자, 토마토, 셀러리 등의 재료에 상큼한 레몬 드레싱이 더해진 메뉴다. 여기에 ‘팔랑기나’ 품종의 화이트 와인을 곁들이는 걸 좋아한다. 금호동의 고메트리에는 가면 구운 문어 다리가 호방하게 접시 위에 올라간 ‘문어 오일 파스타’가 있다. 탄수화물과 단백질의 질긴 만남은 거부할 도리가 없다.
문어로 테린을 만들기도 한다. 서래마을에는 이름부터 ‘뽈뽀’인 작은 레스토랑이 있다. 아보카도를 넣고 버무린 문어 샐러드를 비롯해 트위터(@bistro POLPO)에 부지런히 업데이트되는 제철 식재료로 만든 특선 요리를 맛볼 수 있다. 특히 늦은 저녁 시간에는 4~8명 정원으로 미리 예약을 받아 심야 식당을 운영한다. 얼마 전에 트위터 피드에 올라온 문어 테린도 그때 선보인 메뉴다. 신선도가 남다른 좋은 문어가 들어왔을 때만 만들 수 있다고 했다. 테린은 돼지, 소, 오리 등 육류를 재료로 하는 것이 익숙한 조리법이지만 이탈리아 사람들은 종종 문어로 테린을 만들기도 한다. 문어는 원체 많은 점액을 가지고 있는 동물이다. 문어를 오래 삶은 다음 커다란 통에 삶을 때 생긴 국물과 함께 담아서 3~4일 정도 두면 젤라틴을 넣지 않아도 문어 조각이 서로 엉겨 붙으며 묵처럼 굳는다. 이탈리아에서 요리를 배운 친구가 알려준 레시피다. 테린은 손이 많이 가는 요리이지만 문어 본연의 맛을 잘 느낄 수 있는 방식이다.
문어를 날로 먹을 수 있는 곳이 있다. 이번 칼럼을 위해 특별히 ‘여의도 용왕님’이라 불리는 쿠마의 김민성 셰프에게 전화를 걸었다. 매체명을 밝히며 공손하게 문안인사를 드리자 수화기 너머로 “뭐 어디라고요? <한 박스 바다>?” 라고 화답했다. 사람은 듣고 싶은 대로 듣는다고 했던가? 수산시장에 그가 뜨면 ‘VVIP’ 대접을 받는다는 소문처럼 제 스스로 노량진의 왕자임을 인증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일반인은 감히 짊어질 엄두조차 낼 수 없는 40kg급 대문어를 일주일에 두어 번 턱턱 사 가는 사람이니까. 오마카세 형태로 주인장이 엄선한 그날의 최상급 해산물이 올라가는 쿠마에 가면 ‘문어회’를 맛볼 수 있다.(매번 있는 메뉴는 아니고, 아주 신선한 상태의 문어가 들어왔을 때만 선보인다.) “문어 다리를 얇게 회로 떠서 먹으면 엄청 달고 부드러워요. 엄청 질길 것 같죠? 안 그래. 이건 초장 찍으면 안 되고 기름장에 살짝 찍어서 먹으면 기가 막힙니다. 여기에 소주를 마시면 너무 강하고, 사케 중에서도 은은한 준마이 긴조랑 먹으면 마리아주가 또 달라집니다.” 삼가 문어의 명목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