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스틱의 신분 상승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싸구려 소재로 외면받던 플라스틱의 우아한 신분 상승! 이번 시즌 강렬한 존재감의 플라스틱 피스가 런웨이를 장악했다. | 플라스틱

그간 실용적이지 못하다거나, 혹은 저렴해 보인다는 이유로 하이패션계의 아웃사이더처럼 존재해왔던 플라스틱 피스의 반란이 시작됐다. 지금껏 이들을 단순한 기분 전환용 아이템이라 여겨왔던 이들조차 매혹시킬 만큼, 특유의 매끈한 광택과 독특한 질감, 여기에 동시대 디자이너들의 독창적인 영감과 섬세한 손길을 거쳐 재탄생한 플라스틱 소재 제품은 사심을 내려놓은 객관적인 시각에서 바라봐도 무척이나 매력적이니 말이다.이 거대한 흐름의 시작을 감지할 수 있었던 건 작년 2월 뉴욕에서 열린 라프 시몬스의 첫 번째 캘빈 클라인 쇼. 강렬한 옐로 컬러의 모피 코트부터 드라마틱한 깃털 장식 드레스까지, 투명한 PVC 소재를 덧입은 피스들은 분명 플라스틱 소재를 겉으로 내보이고 있었으나 놀랍도록 섬세하게 느껴졌다.(그는 단지 미국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플라스틱 커버 소파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말했지만!)그 뒤를 이어 버버리의 9월 컬렉션 오프닝에는 불투명한 플라스틱 소재의 레인코트 룩이 연이어 등장해 눈길을 끌었고, 쇼 후반부 즈음 버버리 체크 패턴의 레인코트까지 등장해 플라스틱 코트 룩에 정점을 찍었다.그리고 2018 S/S 패션 위크가 시작되자 매력적인 러버 소재 드레스를 선보인 캘빈 클라인을 비롯해 발맹, 크리스토퍼 케인, 마크 제이콥스, 발렌시아가, 펜디 등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들 만큼 다수의 패션 하우스에서 숨겨왔던 애정을 폭발해내듯 다채로운 플라스틱 룩을 쏟아냈고, 패션계의 마에스트로 칼 라거펠트의 손에서 절정을 맞이했다.(그렇다. 올 시즌 플라스틱 트렌드의 가장 충실한 전도사는 바로 샤넬이다.)‘다채롭다’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한 디자인과 컬러, 디테일의 옷과 가방, 슈즈가 등장했다는 것이 바로 이번 시즌 플라스틱 트렌드의 포인트. 그러므로 부디 이 다양하고 흥미로운 피스들을 마음껏 즐겨보길 바란다.그 여정에 길잡이가 되어줄 대표적인 룩 몇 가지를 소개하자면 먼저 화려한 주얼 장식 단추와 꽃무늬 벽지 프린트가 어우러진 크리스토퍼 케인의 코트 룩을 꼽을 수 있겠다. 정숙함을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불투명한 플라스틱 코트가 은근하게 속살을 드러내고 있는 룩으로 플라스틱 소재로도 충분히 여성스러운 스타일을 완성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이와 반대로 발렌시아가 쇼에서는 공업용 비닐 혹은 가게 입구에 달린 차양으로 만든 듯한 박시한 셔츠가 눈길을 끌었다. 애시드한 그린, 네이비, 블랙 컬러의 셔츠들은 플라스틱 특유의 글로시한 광택이 그대로 살아 있어 단순한 디자인임에도 시선을 사로잡는다.마지막은 샤넬 쇼에 등장한 투명한 플라스틱 케이프 룩. 어깨만 살포시 감싸는 길이부터 무릎을 덮는 길이까지 총 네 가지 디자인으로 등장한 PVC 케이프는 후드가 달려 있어 동화적인 무드까지 더한다. 여기에 허벅지까지 오는 투명한 사이하이 부츠를 비롯해 버킷 모자, 핑거리스 장갑, PVC 백들은 섬세한 디테일로 인해 클래식한 샤넬 수트와도 완벽한 조합을 이뤘다. 폭포수가 쏟아져 내리는 웅장한 절벽과 협곡으로 꾸며진 그랑 팔레의 드라마틱한 배경이 이를 더 돋보이게 했음은 물론이다.이번 시즌의 다양한 플라스틱 룩을 훑어보고 나니 ‘가장 현실적으로 접근 가능한 제품은 무엇일까?’에 대한 궁금증이 뒤따른다. 참고로 에디터의 위시 리스트를 살짝 공개하자면 셀린 쇼에서 모델 다니엘라가 블랙 가죽 파우치 백과 함께 손에 쥐고 등장했던 비닐봉투 모양의 플라스틱 백(가방 속에 든 지갑도 함께 구입해야 한다), 그리고 앞서 언급한 발렌시아가의 박스 셔츠 중 블랙 버전, 이렇게 두 가지. 겉은 화려하지만 실용적이지 않을 것 같은 트렌드 앞에서 ‘얼마나 오래 입을 수 있을까’를 고민할 필요는 없다. 플라스틱 소재 제품을 티셔츠나 청바지처럼 매일같이 입을 수 없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니까. 플라스틱 피스가 가진 특별함과 밝고 명랑한 에너지, 그로 인한 즐거움을 그들이 가장 빛나는 순간에 충분히 만끽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