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 지난 모던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구찌는 2018년부터 동물 모피 사용을 중단하겠다고 발표하며 “그것은 더 이상 모던하지 않다.”고 말했다.패션과 예술과 문화와 사회에서 일어나는 멋진 일들은 언제나 시대 정신을 함유하고 있었다. 2018년을 맞으며, 더 이상 모던하지 않은 일들에 대하여.  | 모던

컬래버레이션. 이것과 저것을 엮어서, 이것과 저것의 특별함을 담아, 이것과 저것을 좋아했던 소비자들에게 들이미는 소비산업의 알량한 아포칼립스적 자긍책에, 이것과 저것을 막 알게 되어 라이크를 누르고, 이것과 저것을 알고 있다는 것에 참 스스로가 대견한 사람들만 줄을 서는 현상은, 뭐랄까, 참 멋없다.–김희정, 큐레이터 아이폰을 쓴다는 것. 세련된 사람들은 아이폰을 쓴다는 공식은 이제 성립하지 않는 것 같다. 예전에는 아이폰을 사용하는 것이 어떤 감성과 문화를 상징하는 일이었는데, 지금은 그저 대안이 없기 때문에 쓰는 스마트폰이 되어버렸다. 애플 워치는 분명히 좋은 제품이지만 사실 더 좋은 ‘시계’가 수두룩하며, 맥북은… 스타벅스를 한 바퀴 돌아보라. 온통 사과다.-이진영, 뮤지션 1989년에 태어나 2018년을 살아가는 나에게 피카소, 폴록은 파격이 아닌 전통이다.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의 아방가르드한 영상 예술도 그저 유튜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수많은 특이한 영상 중 하나일 뿐이다. 요즘 시대에 아방가르드하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구회일, 프리랜스 에디터Made in Italy is not Modern. 원산지 표시가 무의미하게 느껴진다. 우리는 이미 근본 없이 혼재된 세계에 살고 있기에.–김사과, 소설가가부장제. 그 자체로 전근대적 발명품이고, 자유롭고 평등한 시민사회라는 근대적 이상과 모순되는 제도니까.–위근우, 칼럼니스트영 포티. 20대처럼 보이는 40대 이야기는, 다 큰 어른들의 장기자랑처럼 괴괴망측하다. 나이 듦을 받아들이고, 제 나이답게 보이는 것에 대해 당당한 것이야말로 가장 세련된 태도다.–박은성, 편집장 정치 분야의 우상 숭배. 전 대통령의 파면으로 우상 숭배 시대가 막을 내린 것 같지만, 아직 시대 파악 못하는 소수의 ‘빠’들이 남아 있다. 노사모가 정치 마케팅의 변화를 불러온 트렌디한 움직임이었다면 문빠들은 모처럼 한국에 불어닥친 리버럴리즘의 물결을 퇴행하는 올드한 인간들이다.–전진수, 칼럼니스트 전송 속도가 느린 고퀄의 이미지와 영상. 이젠 하이파이(Hi-fi)보다는 로파이(Lo-fi)의 시대가 된 것 같다. 디지털 월드에서도 인간적인 면을 찾고 싶어진 사람들은 세련되고 완전한 영상보다는 스마트폰으로 찍은, 조금 더 사적이고 내밀한 시선의 영상에 ‘좋아요’를 누른다.-이가혜, 디지털 컨텐츠 크리에이터 (종류에 관계없이) 새로운 것을 찾는 것. 지금 시대를 주름잡는 것들은 대체로 과거의 지루한 답습이다. 과거에는 새로운 걸 찾기 위해 하는 종류 불문의 ‘모험’이 존재했다. 이제는 그 모험을 대체로 표면을 건드리는 식으로 손바닥 위 까만 유리 화면 안에서 한다. ‘장점’이 없으리라곤 말하지 않겠다. 다만, 새로움을 발견하려는 행위가 2018년을 앞두고 있는 지금 더는 모던하지 않다.–홍석우, 패션 저널리스트지금 제일 잘 팔리는 미술이 뭘까? 막대한 국가 예산으로 마구 사들이는 소위 ‘모두’를 위한 공공미술이다. 이제는 한번 돌이켜보자. ‘모두’를 빙자해 정책 입안자의 안일함과 무지함을 감추려고 했던 건 아닌지? 가치 있는 미술은 가치가 있을 뿐, 쉽다 어렵다로 구분할 문제가 아니다. 모두를 위한 미술은 모던하지 않다.–이형진, 건축가 공간을 디자인 가구와 오브제로 가득 채우는 것. 특히 세르주 무이, 르 코르뷔지에, 장 프루베!–이지은, 오브제 경매사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결혼이나 연애 상황을 묻는 것. 밥을 혼자 먹겠다는데 왜 그러냐고 묻는 것. 묻지 말란다고 서운해하는 것. 즉, 세상의 모든 오지랖.–김유진, 번역가사회 비판을 해야 ‘진정한 힙합’이라는 생각. 물론 사회 비판이나 정치적 메시지는 힙합의 중요한 한 부분이 맞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One of Them’이다. 사실 힙합은 태생부터 원래 그랬다.–김봉현, 힙합 저널리스트‘모던’이라는 단어. 1920년대 새로운 것을 추구하려는 예술의 경향을 가리켜 모더니즘이라고 불렀다. 1백 년 가까이 우리는 모던과 함께해온 셈이다. 모던은 늘 갱신되기 때문에, 더 열심히 ‘다음’을 바라봐야 하는데 모던이라는 말의 범람이 모던이 모던일 수 있는 기회를 앗아간 것 같다. 21세기에 모던은, 역설적으로 모던하지 않은 단어가 되어버렸다.–오은, 시인 단순함은 시대 착오적이다. 세계는 갈수록 다양하고 복잡해지고 인종, 젠더, 계급, 각자의 중층적 욕망이 얽혀 있는 상황에서 갈수록 더 섬세하고 예민하게 생각하는 능력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그게 우리를 더디고 비효율적으로 만들지라도, 덜 예쁘고 명쾌하지 않더라도, 조금은 복잡해지는 것이 맞을 것 같다.–정지돈,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