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style

철 지난 모던

구찌는 2018년부터 동물 모피 사용을 중단하겠다고 발표하며 “그것은 더 이상 모던하지 않다.”고 말했다.패션과 예술과 문화와 사회에서 일어나는 멋진 일들은 언제나 시대 정신을 함유하고 있었다. 2018년을 맞으며, 더 이상 모던하지 않은 일들에 대하여. 

BYBAZAAR2018.01.24

컬래버레이션. 이것과 저것을 엮어서, 이것과 저것의 특별함을 담아, 이것과 저것을 좋아했던 소비자들에게 들이미는 소비산업의 알량한 아포칼립스적 자긍책에, 이것과 저것을 막 알게 되어 라이크를 누르고, 이것과 저것을 알고 있다는 것에 참 스스로가 대견한 사람들만 줄을 서는 현상은, 뭐랄까, 참 멋없다.

–김희정, 큐레이터

아이폰을 쓴다는 것. 세련된 사람들은 아이폰을 쓴다는 공식은 이제 성립하지 않는 것 같다. 예전에는 아이폰을 사용하는 것이 어떤 감성과 문화를 상징하는 일이었는데, 지금은 그저 대안이 없기 때문에 쓰는 스마트폰이 되어버렸다. 애플 워치는 분명히 좋은 제품이지만 사실 더 좋은 ‘시계’가 수두룩하며, 맥북은… 스타벅스를 한 바퀴 돌아보라. 온통 사과다.

-이진영, 뮤지션

1989년에 태어나 2018년을 살아가는 나에게 피카소, 폴록은 파격이 아닌 전통이다.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의 아방가르드한 영상 예술도 그저 유튜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수많은 특이한 영상 중 하나일 뿐이다. 요즘 시대에 아방가르드하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구회일, 프리랜스 에디터

Made in Italy is not Modern. 원산지 표시가 무의미하게 느껴진다. 우리는 이미 근본 없이 혼재된 세계에 살고 있기에.

–김사과, 소설가

가부장제. 그 자체로 전근대적 발명품이고, 자유롭고 평등한 시민사회라는 근대적 이상과 모순되는 제도니까.

–위근우, 칼럼니스트

영 포티. 20대처럼 보이는 40대 이야기는, 다 큰 어른들의 장기자랑처럼 괴괴망측하다. 나이 듦을 받아들이고, 제 나이답게 보이는 것에 대해 당당한 것이야말로 가장 세련된 태도다.

–박은성, <매거진 B> 편집장

정치 분야의 우상 숭배. 전 대통령의 파면으로 우상 숭배 시대가 막을 내린 것 같지만, 아직 시대 파악 못하는 소수의 ‘빠’들이 남아 있다. 노사모가 정치 마케팅의 변화를 불러온 트렌디한 움직임이었다면 문빠들은 모처럼 한국에 불어닥친 리버럴리즘의 물결을 퇴행하는 올드한 인간들이다.

–전진수, 칼럼니스트

전송 속도가 느린 고퀄의 이미지와 영상. 이젠 하이파이(Hi-fi)보다는 로파이(Lo-fi)의 시대가 된 것 같다. 디지털 월드에서도 인간적인 면을 찾고 싶어진 사람들은 세련되고 완전한 영상보다는 스마트폰으로 찍은, 조금 더 사적이고 내밀한 시선의 영상에 ‘좋아요’를 누른다.

-이가혜, 디지털 컨텐츠 크리에이터

(종류에 관계없이) 새로운 것을 찾는 것. 지금 시대를 주름잡는 것들은 대체로 과거의 지루한 답습이다. 과거에는 새로운 걸 찾기 위해 하는 종류 불문의 ‘모험’이 존재했다. 이제는 그 모험을 대체로 표면을 건드리는 식으로 손바닥 위 까만 유리 화면 안에서 한다. ‘장점’이 없으리라곤 말하지 않겠다. 다만, 새로움을 발견하려는 행위가 2018년을 앞두고 있는 지금 더는 모던하지 않다.

–홍석우, 패션 저널리스트

지금 제일 잘 팔리는 미술이 뭘까? 막대한 국가 예산으로 마구 사들이는 소위 ‘모두’를 위한 공공미술이다. 이제는 한번 돌이켜보자. ‘모두’를 빙자해 정책 입안자의 안일함과 무지함을 감추려고 했던 건 아닌지? 가치 있는 미술은 가치가 있을 뿐, 쉽다 어렵다로 구분할 문제가 아니다. 모두를 위한 미술은 모던하지 않다.

–이형진, 건축가

공간을 디자인 가구와 오브제로 가득 채우는 것. 특히 세르주 무이, 르 코르뷔지에, 장 프루베!

–이지은, 오브제 경매사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결혼이나 연애 상황을 묻는 것. 밥을 혼자 먹겠다는데 왜 그러냐고 묻는 것. 묻지 말란다고 서운해하는 것. 즉, 세상의 모든 오지랖.

–김유진, 번역가

사회 비판을 해야 ‘진정한 힙합’이라는 생각. 물론 사회 비판이나 정치적 메시지는 힙합의 중요한 한 부분이 맞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One of Them’이다. 사실 힙합은 태생부터 원래 그랬다.

–김봉현, 힙합 저널리스트

‘모던’이라는 단어. 1920년대 새로운 것을 추구하려는 예술의 경향을 가리켜 모더니즘이라고 불렀다. 1백 년 가까이 우리는 모던과 함께해온 셈이다. 모던은 늘 갱신되기 때문에, 더 열심히 ‘다음’을 바라봐야 하는데 모던이라는 말의 범람이 모던이 모던일 수 있는 기회를 앗아간 것 같다. 21세기에 모던은, 역설적으로 모던하지 않은 단어가 되어버렸다.

–오은, 시인

단순함은 시대 착오적이다. 세계는 갈수록 다양하고 복잡해지고 인종, 젠더, 계급, 각자의 중층적 욕망이 얽혀 있는 상황에서 갈수록 더 섬세하고 예민하게 생각하는 능력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게 우리를 더디고 비효율적으로 만들지라도, 덜 예쁘고 명쾌하지 않더라도, 조금은 복잡해지는 것이 맞을 것 같다.

–정지돈,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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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에디터|김 지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