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 작품상
<아메리칸 반달리즘>
이 페이크 다큐멘터리가 쫓는 끔찍한 범죄는 이거다. ‘누가 그 성기를 그렸나?’ 고등학교에서 벌어진 반달리즘(Vandalism, 기물 파손), 즉 27대의 교직원 자동차에 스프레이로 남자 성기를 그린 범인이 누구냐는 거다. 학교 측에서 지목하는 이는 단연 딜런 맥스웰. 전교생이 100% 확신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1데이 1성기’를 신조로 평소 성기 습작을 즐겨왔으며 장난전화를 해대는 영상으로 유튜브 스타가 될 수 있다고 굳게 믿는, 딱 고추를 그리게 생긴 ‘꼴통’이니까. “그 성기가 웃기긴 했지만 내가 그린 건 아니야. 누군지 모르지만 뒈졌으면 좋겠다구.” 딜런의 이 말을 믿는 방송반 피터 말도나도는 사건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평소 딜런이 그리던 성기 고환엔 털이 있었지만 자동차에 그린 성기엔 없다는 식의 증거를 수집해가면서. 웃음기는 전혀 없다. 오프닝의 심각한 노래와 짙은 회색 벽을 배경으로 따는 인터뷰 방식, 내레이션 어조, 폰트까지 그간 수없이 보아왔던 범죄 다큐멘터리의 화법 그대로다. 모든 것이 쓸데없이 ‘고퀄’이라 내내 낄낄거리면서 보게 되지만 마냥 우습지는 않다. 2018년 시즌 2 예정.
Question
한심하다고? 보다 보면 점점 심각하게 질문을 던지는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루저를 만든 건 누구인가? 딜런 자신, 가식적인 교직원들 혹은 멋모르는 학생들? 아니, 그래서 그 성기는 누가 그렸는데?
감독상
<마인드 헌터>
영화 <양들의 침묵>의 시작을 기억하는지? 신입 FBI 요원 클라리스를 앉혀두고 국장 잭 크로포드가 이렇게 설명하는 장면 말이다. “행동과학부에서 일하고 싶다고? 우린 수감 중인 연쇄살인범을 인터뷰하고 있어. 심리 행동을 연구하기 위해서지.” <마인드 헌터>는 잭 크로포드의 실제 모델인 존 더글라스가 쓴 동명의 논픽션을 토대로 만든 이야기다. 사람들이 비행기에서 담배를 태우고 연쇄살인범(Serial Killer)이라는 단어조차 없던 시절, FBI 요원 홀든과 빌은 끔찍한 범죄자들을 인터뷰하며 프로파일링 시스템을 만들어나간다. 거장 데이비드 핀처를 비롯해 영화 <에이미>의 아시프 카파디아, <아미티빌 호러>의 앤드류 더글라스가 연출을 맡았다. 범죄 수사물이지만 잔혹한 살인 현장을 보여주거나 범인을 쫓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 않는다. <마인드 헌터>에서 가장 긴장감 넘치는 순간은, 바로 대화를 나눌 때다. 특히 홀든에게 가장 큰 영감을 준 연쇄살인범 에드먼드 캠퍼의 섬뜩한 존재감은 시리즈를 지배한다. 상냥하고, 매력적이며, 논리적으로 자신의 심리를 설명하는 이 지능형 살인마를 통해 데이비드 핀처는 묻는다. “우리는 인간성을 알고 싶은 것일까? 아니면 비인간성에 대해 알고 싶어하는 것일까?” 포르노에 버금갈 정도로 자극적이던 그간의 범죄 수사물을 생각해보면 참으로 합당하면서도 우아한 질문이 아닐 수 없다. 사실 다 제쳐두고, ‘이상 심리로 인한 연쇄살인’라는 소재와 ‘데이비드 핀처’라는 이름만으로도 믿고 봐도 좋다. <세븐> <조디악> <밀레니엄: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에서 그랬듯, 껄끄러울 만큼 스타일 좋은 서스펜스를 다시금 만나볼 수 있다. 2018년 시즌 2 예정.
After
완주 후 ‘에드먼드 캠퍼’를 검색해보면 실제 인물과의 쌍둥이급 싱크로율에 놀라고 말 것이다.
남우주연상
<오자크>
되는 일이 없다는 건 <오자크>의 마티 버드를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돈세탁 하다 인생을 통째로 세탁하게 된 상황도 막막한데 갈수록 첩첩산중이다. 시시때때로 살해 위협을 해대는 마약 조직, 철없는 날라리 딸, 이상행동을 보이는 아들, 바람을 피우고도 오히려 빰을 갈기는 아내. 소시오패스에 가까운 FBI, 나체로 산책을 즐기는 집주인을 비롯해 수상하기 그지없는 이웃들…. 하지만 마티는 이 모든 고난을 덤덤하고 침착하게 해결해간다. 그래서 마티가 착한 남자냐고? 절대. 마약 조직 정도를 빼면 <오자크>에는 절대악이나 절대선 같은 건 없다. 각자의 이유로 내린 선택이 예상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일이 다반사며,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때로는 타인에게 처참한 피해를 입히기도 한다. 그간 코미디 배우로 유명했던 제이슨 베이트먼이 웃음기를 싹 지운 채 회색 인간 마티 버드를 완벽하게 소화해냈다. 애달픈 눈과 굳게 닫은 입매를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미추가 헷갈린다. 2018년 시즌 2 예정.
Quotation
시즌 도입부, 상담을 받으러 온 부부를 앉혀두고 마티가 건네는 말. “돈이란 무엇일까요? 단순히 상품이나 서비스의 대가를 지불하는 장치? 혹은 무형의 가치? 안정감, 행복, 마음의 평화 등등. 제가 또 다른 개념을 제안해 보죠. 돈은 측정 도구입니다. 우린 좋은 부모에 대한 언론의 의견을 무시하고 아이들의 야구 경기, 연극 공연, 음악회에 참석하지 않습니다. 일에 파묻혀야 하니까요. 그리고 그 행동의 결과를 책임져야 합니다. 인내, 절약, 희생. 그 3가지의 공통점은 뭘까요? 바로 선택이라는 겁니다. 돈은 마음의 평화도 아니고 행복도 아닙니다. 돈이란 바로 한 인간의 선택을 측정하는 도구죠.” 이 대사가 시즌 전체를 관통한다.
여우주연상
<죄인>
‘어느 날 갑자기’ 평범한 여자가 생판 모르는 남자를 살해한다? 목격자는 수십 명이지만 동기가 없다. 게다가 하루아침에 살인자로 돌변한 여자는 재판까지 포기하면서 입을 꾹 다문다. 도대체 왜…? 초반의 흥미로운 긴장이 8부작 끝까지 간다. 독일의 범죄소설가 페트라 함메스파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속도감 있는 전개가 압권이다.(하루 안에 완주가 가능하다는 얘기다.) 여기에 살인자 ‘코라’로 분한 제시카 비엘의 강렬한 연기가 설득력을 더한다. 실제 8월 2일 미국에서 첫 방영된 이후 아직까지 로튼 토마토에서 신선도 94%를 유지하며 호평받고 있다. “앉은 자리에서 점점 스크린 쪽으로 몸을 움직이게 될 것이다. 책장을 넘기기 바쁠 정도로 흥미진진한 소설의 TV 버전이다.”(영화평론가 로저 이버트) “제시카 비엘은 엄마 혹은 살인자 이상의 연기를 해냈다.”(<인디와이어>) 그동안 작품 고르는 눈을 의심받던 제시카 비엘이 이번엔 제대로 한 방 터트렸다. 시즌 2에 대한 소문만 무성한 상황.
After
<죄인>이 마음에 들었다면 또 다른 여성 살인자를 주제로 한 콘텐츠 <그레이스>를 ‘정주행’해 볼 것. 공통 질문은 이거다. ‘그녀들이 죽인 것은 과연 무엇인가.’
다큐멘터리상
<도쿄 아이돌스>
“세상이 지옥임을 다시 깨닫고 싶다면 <도쿄 아이돌스>를 보자.” <도쿄 아이돌스>에 관한 한 트위터리안의 평이다. 눈치 챘겠지만, <도쿄 아이돌스>는 일본의 아이돌, 그중에서도 언더그라운드 아이돌과 그녀들을 추앙하는 오타쿠의 일상을 다룬다. “17살이면 아이돌로서는 좀 많은 나이죠..”라는 뻔뻔한 대사, 일본 아이돌 특유의 문화인 ‘악수회’(아이돌은 청순함을 잃지 않고 팬에게는 성적 접촉을 할 수 있는 ‘윈윈’ 전략이라고.) 같은 장면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이 징그러운 다큐멘터리를 만든 감독 미아케 교코는 이런 인터뷰를 남겼다. “일본에서 여자아이로 성장한다는 것은 내게 혼란스러운 경험이었다. 귀엽거나 귀여운 척하지 않으면 반항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때문에 일본을 떠난 후 다시는 돌아가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아이돌 문화를 통해 일본의 기형적인 여성 문제를 들여다보는 이야기. <도쿄 아이돌스>가 소름 끼치는 가장 큰 이유다.
Moment
아이돌 문화를 무조건 경제 불황 탓으로 돌리는 몇몇 전문가 사이에서 저널리스트 기타하라 미노리가 내면의 원인을 시원하게 꼬집을 때. “실제 여성과 만나기보다는 자신이 우위에 설 수 있는 여성을 고릅니다. 자신에게 도전하거나 상처 주지 않을 사람을요. 남성의 환상을 지키고 위안을 주는 일이라면 이 사회는 필사적으로 계속할 겁니다.”
베스트 커플상
<리버데일>
1941년 첫 발매돼 아직까지 계속되고 있는 만화 <아치 시리즈>를 토대로 했다. 2017년이 되도록 베티와 베로니카 사이에서 결정을 못 하고 있는 아치, 무수한 2차 창작물을 낳은 그 전설적인 삼각관계 이야기 말이다. 넷플릭스에서 쉽게 찾을 수 없는 하이틴 로맨스에 인기 공식 중 하나인 범죄 미스터리를 끼얹었다. 아슬아슬 ‘막장’ 냄새가 솔솔 풍기는 만큼 꽤나 중독적이다. 베티든 베로니카든 마음 가는 쪽을 응원하면서 빠져들게 된다. 주의할 점을 미리 말해두자면, 아치에게서 마성의 매력을 찾기 어렵다는 거다. 우유부단한 건 둘째치고 좁은 어깨와 다소 평범한 외모에 실망하겠지만 그냥 납득하고 보는 수밖에 없다. 현재 시즌 2 방영 중.
Moment
베티가 오랜 소꿉친구인 아치에게 고백하려는 순간, 베로니카가 등장한다. 묘한 긴장감의 흐르는 세 사람의 첫 만남. 70년이 넘도록 이 삼각관계가 계속되리라는 건 그들도 몰랐을 것이다.
인기상
<기묘한 이야기 2>
말해 무엇하랴. <하우스 오브 카드> <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 등과 함께 넷플릭스의 빅 3인 <기묘한 이야기>가 돌아왔다. 1970~80년대 작품들을 오마주하는 특성은 여전하고(에피소드 1의 제목은 아예 ‘매드 맥스’다.), 새로운 초능력자를 비롯해 몇몇 매력적인 등장인물이 더해졌으며, 빌런은 더욱 강력해졌다. 시즌 1의 ‘데모고르곤’도 충분히 공포였는데, 시즌 2의 ‘마인드 플레이어’는 아예 뒤집힌 세계를 통째로 관리하는 ‘데모고르곤’의 상사 격이다. 그리고 이번에도 역시나, 무수한 ‘떡밥’들을 남겼다. 시즌 2가 공개된 지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시즌 3에 대한 추측이 난무하고 있으니 말이다. 조급함이 느껴진다면 시즌 1을 복습하시길. 다시 봐도 쫄깃하다. 2018년 하반기 혹은 2019년 상반기 시즌 3 예정.
Question
뒤집힌 세계로 인해 두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겼음에도 왜 아무도 이사를 가지 않는가? 그들의 의리와 애향심에 경의를 표한다.
특별상: 심정지 부문
<루머의 루머의 루머>
카일리 제너와 셀레나 고메즈의 추전작. 자살을 선택한 주인공 해나는 자신을 죽음에 이르게 한 일들을 7개 테이프에 녹음해 13명의 가해자들에게 릴레이 식으로 전달한다. 그런데 그 이유라는 것이 불편하지만 꽤 흔한 일들이다. 친구와의 절교, 잘못된 소문, 어쩌면 우리에게도 일어났던 일들이라 절로 공감을 자아낸다. 누군가가 무심코 던진 말이 얼마나 큰 스크래치를 남기는지, 가끔은 그런 순간들이 모여 회복 불가능한 상처를 만든다는 걸 너무 잘 알고 있으니까. 이 시리즈가 심정지 부문에 이름을 올린 것도 다 엄청난 몰입감 탓이다. 해나를 도울 수 있었던 무수한 순간들과 지나치게 순진한 해나, 수동적이기 그지없는 주인공 클레이 등 답답한 요소가 산재하지만 가장 심장을 부여잡게 하는 순간은 클레이가 테이프를 듣다가 자꾸 꺼버릴 때다. 궁금해 미치겠는데, 왜 이렇게 천천히 듣는 거야? 2018년 시즌 2 예정.
Tip
그래도 ‘스킵’하지 말고 완주할 것. 일단 시작했다면 그럴 수밖엔 없겠지만.